하루는 옛날 집터의 샘가에서 점심을 먹고 쉬다가 오래된 놋숟갈을 주웠다. 감자를 하도 깎아서 그런지, 누룽지를 하도 긁어서 그런지 왼쪽만 많이 닳아버린 그 놋숟갈은 내 밥숟갈이 되었다.

ⓒ김홍성

 

1972년 봄부터 가을까지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장암3리의 덕재 목장에서 일했다. 2백 마리 쯤 되는 한우를 방목하는 일이었다. 대부분 암소였고, 송아지들이 더러 있었으며, 암소와의 교미를 위해 묶어 놓고 기르는 종우가 두 마리 있었다.

종우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이중섭이 그린 소를 연상하게 했는데, US 마크가 찍혀 있는 미군 탄띠로 목둘레를 해 놔서 미욱해 보이기도 했다.

목장은 덕재 고개 남쪽 비탈에 인공으로 조성한 목초지에 있었으며 고개 북쪽의 안덕재는 미군 비행기 사격장이었다.

고개 위에서 안덕재를 바라보면 우음산에서 뻗어내린 능선들 사이의 움푹한 골짜기에 풀도 나무도 없는 하얀 민둥산들이 보이는데, 이 민둥산들은 미군 비행기들의 타격 목표물이었다. 워낙 폭격을 해대니 풀이나 나무가 자랄 사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곳을 제외한 나머지 들판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미군들의 비행기 사격은 한 달 중에 1주일 정도만 했다. 1주일 동안은 사격장 출입을 통제했으므로 우리 소들은 목장 주변에 마련한 목초 밭에서 풀을 뜯었다.

소들은 학교 운동장만한 인공 초지보다는 사격장의 광활한 풀밭에 나가기를 좋아하였다. 목초 밭에서는 시무룩하던 놈들이 사격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고개를 넘을라치면 흥분해서 앞을 다투느라 말처럼 뛰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거겠지만, 사격장 출입을 통제하는 바람에 목초 밭에서 풀을 뜯던 소들이 커다란 눈을 치뜨고 하늘의 비행기들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소들은 동트기 전부터 배고프다고 아우성쳤다. 우리 목동들은 그 소리를 들으며 둥그런 밥상에 둘러앉아 김나는 새벽밥을 먹었다. 목책 위로 턱을 쳐들고 음머어 음머어 배고프다고 보채는 암소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침을 먹고 덕재 고개를 넘어서면 소들의 잔등에 아침 햇살이 비껴 소털이 더욱 붉었다. 호미 날보다 더 긴 혀로 풀을 훑는 소리는 참한 농부가 낫으로 꼴을 베는 소리처럼 들렸다.

가끔 뜸부기가 날아올랐다. 한 달에 한번 씩 일주일 동안 미군 비행기들이 날아와 천둥벼락 같은 불질을 해대는 사격장이건만 산 밑에도 없는 뜸부기가 살았다.

사격장이 되기 이전의 그곳 안덕재는 한적한 산촌이었다. 논이나 밭이 은근히 넓어서 옛적 주민들은 제법 포실하게 살았을 것 같다.

하루는 옛날 집터의 샘가에서 점심을 먹고 쉬다가 오래된 놋숟갈을 주웠다. 감자를 하도 깎아서 그런지, 누룽지를 하도 긁어서 그런지 수저 왼쪽만 많이 닳아버린 그 놋숟갈은 내 밥숟갈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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