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8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문학포럼 모습. ‘동아시아 평화와 문학’을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는 국내 문인 60여명과 중국, 일본, 베트남 등 해외 문인들이 참석했다. ⓒ최희영
12월 8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문학포럼 모습. ‘동아시아 평화와 문학’을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는 국내 문인 60여명과 중국, 일본, 베트남 등 해외 문인들이 참석했다. ⓒ최희영

기억에 남을 날이었다. 2019년 12월 8일. 마침내 보다 구체적으로 한국문단이 통일됐다. 지난 11월 20일 서울 행사에 이어 곧바로 치러진 중국 상하이 국제문학포럼에서였다. ‘6.15’ 아래 모인 한국문단 5개 단체의 통합이라 의미가 컸다. 이는 ‘반도문단’ 통일의 암시였다. 또는 통일문학 시대의 복선이기도 했다.

이날 오후 5시. 중국 상하이 하이톤호텔(Highton Hotel)에는 행사 폐회를 알리는 박수소리가 요란했다. 아침 9시부터 시작된 이날 행사의 타이틀은 ‘2019 국제문학포럼 : 동아시아 평화와 문학’이었다.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대표회장 이광복)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종관)가 후원한 행사로, 포럼에는 한국문인 60여명과 중국, 일본, 베트남에서 온 외국작가들이 참석했다.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는 11월 20일 서울 종로구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결성(복원) 됐다. 이날 행사는 2008년 이후 멈춰 섰던 6.15민족문학인협회의 재가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시 결성식에는 (가나다 순으로 나열해서) 국제펜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시인협회, 한국작가회의 등 5개 문인단체가 참석했다.

6.15민족문학인협회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한 상하이 국제문학포럼에서 이광복 대표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5개 문인단체가 한 자리에 모여 통일문학 시대를 열게 된 것을 축하하며, 빠른 시일 내에 북한 문인들도 참석하는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겨레 문단통일 시대를 열자고 촉구했다. ⓒ최희영
6.15민족문학인협회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한 상하이 국제문학포럼에서 이광복 대표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5개 문인단체가 한 자리에 모여 통일문학 시대를 열게 된 것을 축하하며, 빠른 시일 내에 북한 문인들도 참석하는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겨레 문단통일 시대를 열자고 촉구했다. ⓒ최희영

이광복(문협), 손해일(한국펜), 김지연(소설가협), 윤석산(시인협), 이경자(작가회의) 등 문인단체 5개 단체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공식 협회를 만든 것은 이례적이었다. 그것도 단체명의 앞머리에 ‘6.15’가 들어찼다. 이 기호는 아주 오랫동안 진보 진영의 소유(?)였다. 한국작가회의 이외의 다른 단체는 보수 색체다. 따라서 6.15와 그들의 어울림은 왠지 편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점은 그릇된 오해였다.

“이번 포럼에 참석해 여러분들을 만나고 나니 2005년 백두산에 올랐던 기억이 생생하게 났습니다. 우리는 그때 북한문인들과 어울려 백두산 천지를 바라보며 통일문학의 시대를 열자고 다짐했습니다. 문학부터 통일하자고 뜻을 모았던 그때로부터 또 어느덧 15년가량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 만난 우리들의 상하이 모임에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는 최초로 5개 문인단체가 모여 만든 '통일문학'의 전초 기지다. 윗줄 왼쪽부터 손해일 이사장(공동대표)을 대신해 참석한 김경식 한국펜 사무총장, 김지연 소설가협회 이사장(공동대표), 윤석산 회장(공동대표)을 대신해 참석한 유자효 시인협회 부회장 모습이며, 사진 아랫줄 왼쪽부터는 이경자 작가회의 이사장(공동대표), 정도상 집행회장, 윤석정 사무국장 모습이다. ⓒ최희영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는 최초로 5개 문인단체가 모여 만든 '통일문학'의 전초 기지다. 윗줄 왼쪽부터 손해일 이사장(공동대표)을 대신해 참석한 김경식 한국펜 사무총장, 김지연 소설가협회 이사장(공동대표), 윤석산 회장(공동대표)을 대신해 참석한 유자효 시인협회 부회장 모습이며, 사진 아랫줄 왼쪽부터는 이경자 작가회의 이사장(공동대표), 정도상 집행회장, 윤석정 사무국장 모습이다. ⓒ최희영

포럼 전날 있었던 7일 만찬장에서 김지연 소설가협회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김 이사장도 그때 거기 있었구나,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을 소환했다. 그가 언급한 2005년은 ‘민족작가대회’였다. 분단 60년 만에 남북, 해외문인들이 평양과 묘향산, 백두산에서 함께 만났던 겨레 문단사적 사건이 바로 그 행사였다.

당시엔 신세훈 문인협회장도 진보문단의 아이콘인 고은, 백낙청, 신경림, 황석영 등과 어울리며 평양을 거쳐 백두산에 올랐었다. 또 비단체 문인들을 대표해 김훈 소설가와 이문재, 강태형 시인 등도 그 여정을 함께했다. 그러고 보면 6.15는 진보 문단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문단은 진즉부터 6.15 아래 통일돼 있었고, 함께 통일문학을 염원해 왔다.

이날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국내외 문인들. 사진 시계방향으로 1부 사회를 맡은 김재용 문학평론가, 일본의 오시로 사다토시 소설가, 김숨 소설가, 중국의 류사오리 화동사범대 교수, 둥시 소설가, 베트남의 판티히엔 호치민 인문사회과학대 교수, 쩐 반 또안 하노이사범대 교수 모습이다. ⓒ최희영
이날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국내외 문인들. 사진 시계방향으로 1부 사회를 맡은 김재용 문학평론가, 일본의 오시로 사다토시 소설가, 김숨 소설가, 중국의 류사오리 화동사범대 교수, 둥시 소설가, 베트남의 판티히엔 호치민 인문사회과학대 교수, 쩐 반 또안 하노이사범대 교수 모습이다. ⓒ최희영

이번 상하이 국제문학포럼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 주제는 ‘식민주의를 넘어서’였다. 이어 열린 2부는 ‘냉전을 넘어서’가 주제였다. 그리고 김경식 국제펜한국본부 사무총장이 사회를 맡아 진행한 종합토론에는 표중식 소설가(문협), 김호운 소설가(소설가협), 고명철 평론가(작가회의), 이형우 시인(시인협) 등이 참여했다. 이 역시 5개 문인단체의 합동토론 형식이라 행사 연출의 세심함이 돋보였다.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집행회장이자 이번 상하이 행사의 마당쇠 역할을 했던 정도상 소설가(작가회의)는 2부 발제를 통해 “분단체제에 대해 오랜 세월 학문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천착해온 백낙청은 분단체제를 괴물이라고 표현했다”면서 그의 글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분단체제가 괴물이란 말을 더러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분단체제가 괴물이라면 분단체제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괴물 하나씩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을 성찰하면서, 바깥의 괴물을 이겨내는 일과 내 마음 속 괴물의 퇴치를 어떻게 동시에 수행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훨씬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포럼의 마지막 순서인 종합토론은 5개 문인단체 관계자들이 고르게 참여하는 '문단 종합토론' 형식으로 진행됐다. 사진 왼쪽부터  이형우 시인(시인협), 표중식 소설가(문협), 김호운 소설가(소설가협), 고명철 평론가(작가회의) 모습이다. 이날 종합토론 사회는 김경식 한국펜 사무총장이 맡았다. ⓒ최희영
이날 포럼의 마지막 순서인 종합토론은 5개 문인단체 관계자들이 고르게 참여하는 '문단 종합토론' 형식으로 진행됐다. 사진 왼쪽부터 이형우 시인(시인협), 표중식 소설가(문협), 김호운 소설가(소설가협), 고명철 평론가(작가회의) 모습이다. 이날 종합토론 사회는 김경식 한국펜 사무총장이 맡았다. ⓒ최희영

종합토론을 지켜보며 일단 ‘문단의 괴물’이 퇴치되는 순간이라고 단정했다. 남녘 문단의 통일부터 이루고자 작심한 단체장들의 결기가 흐뭇했고, 이를 대륙 한복판에서 드러낸 공간적 상징성도 괜찮았다. 상하이는 1932년과 1937년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던 ‘상하이사변’의 비극적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이날 포럼의 1부 주제인 ‘식민지를 넘기’에도, 2부 주제인 ‘냉전을 넘어’ 북녘의 문인들을 초대하기에도 적당한 장소였다.

“초청장을 보내놓고 북측 문인들이 참석하기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성사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남측 문인들만 이 자리에 모여 포럼을 열게 된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들과 함께 다시 좋은 자리를 만들 날이 조만간 반드시 오고 말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날 여러분들과 다시 좋은 주제를 갖고 북측 문인들과 함께 토론하는 장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날 1부 시작에 앞서 이광복 대표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에 참석자들 모두가 공감했다. ‘국제문학포럼’이란 형식을 갖고 반도 밖으로 나온 이유가 바로 그들의 운신 폭을 넓혀주려는 문인들의 지혜였다. 따라서 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이날 참석자들도 잘 이해했다. 이 같은 기획은 2005년 민족작가대회 이후 치른 2008년 ‘아시아-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 때도 시도됐다. 남북이 직접 만나는 어려움을 다른 그릇에 담아 해결하려는 의도였다.(그때도 정도상 작가가 마당쇠 역할을 했다.)

포럼에 앞서 7일 만찬장에서 만난 5개 문인단체 회원들은 북측 작가들이 끝내 불참한 현실을 안타까워 하며 조속한 시일 내에 그들까지 참석하는 또 다른 자리가 만들어지길 소망했다. ⓒ최희영
포럼에 앞서 7일 만찬장에서 만난 5개 문인단체 회원들은 북측 작가들이 끝내 불참한 현실을 안타까워 하며 조속한 시일 내에 그들까지 참석하는 또 다른 자리가 만들어지길 소망했다. ⓒ최희영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입니다. 분단은 우리 삶의 전반에 걸쳐서 왜곡과 모순을 만들어내는 근본 원인이 되어 왔습니다. 이것을 어디로부터 풀어내야 할지 우리 문학인들이 만나서 고민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내는 자리를 만들고자 했는데, 매우 큰 성과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번과 같은 행사가 계속 추진돼 나갈 것입니다.”

이경자 작가회의 이사장의 눈가가 촉촉했다. ‘작가 개인적 삶뿐만 아니라 문단 전반에 걸쳐 깊이 패어 있던 왜곡과 모순의 굴곡’이 상당 부분 해소됐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이경자 이사장의 노고가 컸다. 이광복 문인협회장의 넓은 품도 한몫했다. 그밖에도 여타 문인단체장들의 양보와 배려가 이번과 같은 화합의 대장정을 가능하게 했다. 이를 바라보는 문인들과 이번 행사 기획에 참여한 현대아산 직원들의 표정이 밝았다. 따라서 ‘머지않아 문인들의 금강산 단체관광도 가능하리라’ 상상됐다.

한편, 김재용 문학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포럼 1부에서는 일본의 오시로 사다토시 소설가가 <오키나와 전투에서의 ‘집단자결’>이란 주제 발제를, 김숨 소설가는 <군인이 천사가 될 때까지 - 일본군 ‘위안부’ 길원옥의 노래>를, 그리고 중국의 류사오리 화동사범대 교수는 <대학살 서사 :기억의 지침을 잡고, 타자의 모습을 소환하다>란 제목의 주제 발제를 했다.

이어 김경식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포럼 2부에서는 중국의 둥시 소설가가 <글쓰기는,소통을 위한 것>이란 주제 발제를, 정도상 소설가는 <분단체제와 문학>을, 베트남의 판티히엔 호치민 인문사회과학대 교수와 쩐 반 또안 하노이 사범대교수는 각각 <타이완 문학을 통해서 본 베트남 전쟁>과 <이동순의 미스 사이공과 동아시아 전망의 창조>란 제목의 주제 발제를 했다.

상하이 국제문학포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1월 20일 서울에서 있었던 6.15민족문학인 남측협회 결성(복원)에 이어 곧바로 치러진 12월 8일 상하이 행사를 통해 한국문단은 완전 통합됐다. ⓒ최희영
상하이 국제문학포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1월 20일 서울에서 있었던 6.15민족문학인 남측협회 결성(복원)에 이어 곧바로 치러진 12월 8일 상하이 행사를 통해 한국문단은 완전 통합됐다. ⓒ최희영

사족 하나 달고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이번 상하이 방문은 개인적으로도 여러 묵직한 기억들을 소환했다. 2000년대 초 베이징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2005년 평양 ‘민족작가대회’ 취재와 2006년부터 2008년까지의 ‘6.15민족문학인협회’ 발족 과정을 취재한 뒤 10년 가까이 멈춰 섰던 문단 기록의 재가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멀리 돌아 다시 여기로 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한 2년 동안의 라오스 여정을 거쳐, 한민족 160년 디아스포라 기록에 빠져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을 찾아 헤맨 2년 동안의 우즈베키스탄 여행 뒤 다시 만난 6.15다. 상하이에서 돌아오는 길 새로운 시리즈를 생각했다.

<기록만리>란 꼭지명을 구상하며, 2020년 상반기 중으로 예정돼 있다는 제3차 국제문학포럼이 벌써부터 기대됐다. 또 타슈켄트 고려인 1세들의 요양시설인 ‘아리랑요양원’의 지난 10년 기록을 책으로 묶고자 새해 초 다시 찾을 우즈베키스탄 여정 또한 벌써부터 흥분됐다. 이 모든 기록들이 새로 시작하는 그릇에 담길 것이다. 때론 통일 이야기로, 때론 문단 속살로, 때론 중앙아시아 기록으로 다시 만날, 그 첫 걸음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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