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은 요즘 자리에만 누우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제 연봉 억만 달러가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이맘때 만 해도 류현진은 큰 고민을 했었다. 2013년 LA 다저스와 계약을 했고, 6년이 지난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다저스는 어깨, 팔꿈치 수술 경력이 있는 류현진을 믿지 못해서 다년간 계약하는 대신 퀄리파잉 오퍼를 제시했었다.

퀄리파잉 오퍼는 메이저리그 원소속구단이 FA 선수에게 ‘빅 리그 고액 연봉자 상위 125명의 평균 연봉으로 1년 계약을 제시하는 제도’다.

(원소속구단의 퀄리파잉 오퍼를 받은 FA를 영입하는 구단은 이듬해 신인 지명권을 넘겨줘야 한다. 2019시즌을 앞두고 FA가 된 선수의 퀄리파잉 오퍼 금액은 1천790만 달러(한화 약 200억 원)였었다. 퀄리파잉 오퍼는 특급 FA의 상징이기도 하다)

구단으로부터 퀄리파잉 오퍼를 받은 류현진은 규정(10일 안에 수락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일 동안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나 도박하기로 했다.

만약 부상만 따르지 않으면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쿼리파잉 오퍼를 받아들이고, 1년 동안 부상 없이 14승 5패 방어율 2.32로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최고 성적을 올렸다. 그 가운데 방어율 2.32는 난다 긴다 하는 메이저리그 투수 전체 투수 가운데 1위였다.

류현진이 나름대로 최고 성적을 올렸지만, 스토브리그 초기, 메이저리그에서의 평가는 나이(88년생)와 부상 경력 때문에 연봉 기준 2,000만 달러를 넘지 못했다. 3년간 6,000만 달러, 4년 8,000만 달러 5년이 넘어야 억만 달러 대열에 오르는 정도였다.

그러나 스토브리그 최대어인 케릿 콜이 뉴욕 양키즈와 9년간 3억2400만 달러의 초대박을 터트렸고, 류현진급 정도로 평가를 받던 스태픈 스트라스버그 투수가 원소속팀(워싱턴 내셔널스)과 7년간 2억 4,500만 달러에 계약을 함으로써 이제 류현진의 연봉도 억만 달러(4년 기준)가 확실시되고 있다.

물론 매디슨 범가너가 5년간 8,500만 달러의 헐값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팀과 계약을 한 것이 마이너스 요인이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어 왔다. 후배 김광현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2년간 800만 달러(옵션 300만 달러 포함하면 1,100만 달러)에 계약을 한 것이다.

김광현은 KBO리그에서 포스팅시스템을 거쳐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역대 4번째 선수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했다(사진 제공= 세인트루이스 구단 SNS 갈무리).
김광현은 KBO리그에서 포스팅시스템을 거쳐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역대 4번째 선수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했다(사진 제공= 세인트루이스 구단 SNS 갈무리).

김광현 명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2년간 800만(보장) 계약

김광현은 지난 2014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팀이 연봉 100만 달러를 제시하자 가차 없이 거절하고 한국 프로야구로 유턴한 바 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주전급 투수들(잭 플래허티, 마일스 마이콜라스, 다코타 허드슨, 아담 웨인라이트, 카를로스 마르티네스) 등이 모두 우완 투수이기 때문에 150km 이상의 강속구에 수준급 슬라이더 그리고 체인지업까지 커브를 장착한 김광현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자유계약 제도 즉 FA가 도입된 것은 불과 43년 전인 1976년 이었다.

1876년에 시작되어 153년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 그 전까지 선수는 철저하게 구단의 소유물(所有物)에 지나지 않았었다. 구단에서 트레이드하면 그대로 따라야 하고, 내쫒으면 은퇴를 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 팀 입단해서 6년이 지나면 FA자격을 얻고, 그 팀에서 계약기간이 지나면 또 FA 자격을 얻는다.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 출범, 17년만인 1999년부터 FA 제도가 도입되었다.

먹튀 대명사 박찬호, 윤석민

메이저리그 역대 먹튀(높은 연봉만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선수를 꼽으면 LA 다저스에서 텍사스 레인저스팀으로 간 박찬호 선수가 빠지지 않고 있고, 국내에서는 올해 기아 타이거즈에서 은퇴를 선언한 윤석민 투수가 역대급 먹튀 선수가 될 것 같다.

박찬호는 1994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해서,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동안 해마다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리며 정상급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박찬호는 158km를 넘나드는 강속구에 폭포처럼 떨어지는 슬러브로 연평균 15승, 200이닝, 200탈삼진, 3점대 방어율이라는 성적을 올려,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00년에는 18승(10패)으로 커리어 하이를 달성하기도 했다. 더구나 한국 선수들의 발목을 잡곤 했던 병역문제도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로 해소 시켰다.

마침 에이스급 투수를 찾던 텍사스 레인저스가 박찬호를 5년간 6,500만 달러를 주고 데려갔다.

그러나 박찬호는 텍사스 레인저스 이적 첫 해(2002년)에 허리부상 등에 시달리며 25게임만 마운드에 오르며 9승 8패(방어율 5.75), 2003년은 7경기(1승 3패 방어율 7.58)만을 마운드에 오르면서 서서히 먹 튀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200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먹튀 소리를 들으며 16게임에 선발로 나와 4승 7패(방어율 5.46)으로 5선발급 투수로 전락했다. 그리고 2005년 20게임(8승 5패 방어율 5.66)을 기록하다가 시즌 도중 샌디에이고 파드리스팀으로 전력 트레이드되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박찬호에게 5년간 6,500만 달러를 안겨 줄 때만 해도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75승 정도 기대를 했었지만 겨우 22승에 그치고 말았다. 그래서 해마다 ‘메이저리그 역대급 먹튀’ 얘기가 나올 때마다 1~3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기아 타이거즈 윤석민 KBO리그 대표 먹튀

기아 타이거즈 윤석민 투수는 최고 155km를 넘나드는 강속구에 다양한 슬라이더 그리고 가끔 서클 체인지업을 곁들였다.

그러니까 선동열 투수처럼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투 피치 투수인데 슬라이더의 위력이 워낙 뛰어나서 기아 타이거즈 에이스 역할을 했었다.

윤석민은 2011년 17승(5패) 방어율 2.45로 정점을 찍은 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하다가 2013년 시즌 직후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 마이너리그(트리플 A 노포 타이즈) 팀과 계약을 했다. 그러나 끝내 메이저리그 진출에는 실패했다. 마이너리그에서 홈런 공장(23이닝 15홈런) 노릇만 한 셈이다.

윤석민은 2014년 친정팀 기아 타이거즈와 4년간 90억 원에 계약했지만 어깨 부상에 시달리며 4년 동안 141이닝을 던지며 4승 16패(42세이브, 방어율 4.08)에 그쳤다.

윤석민은 기아와 계약 첫해인 2015년에만 반짝(70이닝 2승 6패 30세이브 ERA 2.96)했었을 뿐 지난 3년간 고액의 연봉만 축냈다.

KIA 구단은 윤석민이 은퇴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사진= 연합뉴스).
KIA 구단은 윤석민이 은퇴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사진= 연합뉴스).

기아 타이거즈 당당 기자가 은퇴를 발표한 윤석민 선수와 만났다.

기자 ; 은퇴를 결심한 이유는?

윤석민 ; 오른쪽 어깨 부상이 나을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았다.

기자 ; 4년간 90억 원을 받았는데 팀 기여도가 겨우 4승에 방어율이 42세이브밖에 안 된다.

윤석민 ; 먹튀 얘기를 하려고 그러는 것 같은데… 박찬호 선배는 텍사스팀과 4년간 6,500만 달러 지금 돈으로 700억 원을 받고 22승밖에 올리지 못했으니까 1승에 30억 원이 들었고, 나는 4승에 42세이브를 올려서 2세이브 당 1승으로 치면 25승 그러니까 3억 6,000만원에 1승… ‘투 머치 토커(박찬호 별명)’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기자 ; 메이저리거와 비교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국내 프로야구에 국한한다면.

윤석민 ; 내가 말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1995년 LG 트윈스팀에 4억(연봉 2,000만 원 포함)을 받고 입단한 이정길 선수가 올린 통산 성적은 5경기에 나와서 10과 3분의 2이닝 만 던져서 1승 1패 방어율 12.66이었다. 당시 4억 원이면 강남 아파트 두 채를 살 수 있었다.

역대급 트레이드, 최동원 대 김시진

만약 2019~2020 스토브리그에서 기아 타이거즈 양현종과 SK 와이번스 김광현 투수를 맞바꾼 다면 초대박 트레이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31년 전인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황리에 끝낸 직후 프로야구에서 초대형 트레이드가 있었다. 1988년 말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팀이 역사적인 트레이드를 감행했다.

11월 22일 롯데가 최동원, 오명록, 김성현을 삼성으로 보내고, 삼성이 김시진, 전용권, 오대석, 허규옥을 내주는 3대4 트레이드를 했다. 외형적으로는 3대4 트레이드지만 사실 두 팀의 프렌차이즈 플레이어 이자 롯데의 간판(최동원)과 삼성의 간판(김시진)이 서로 팀을 맞바꾼 셈이다.

롯데와 삼성 팬들의 엄청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두 팀은 12월 20일 또다시 초대형 트레이드를 감행했다.

롯데는 내야수 김용철과 투수 이문한, 삼성은 외야수 장효조와 투수 장태수를 보내는 2대2 트레이드를 한 것이다. 그 트레이드 역시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장효조와 김용철의 맞트레이드라고 볼 수 있었다.

불과 1개월 간격으로 두 팀은 총 11명의 선수를 맞바꾼 것이다.

당시 선수노조 결성과 연봉협상 과정에서 팀과 마찰을 빚은 선수들을 정리하기 위해 두 팀은 그 같은 초 메가톤급 트레이드를 한 것이다.

2019 KBO리그 골든글러브 시상식 수상자 기념촬영 모습(사진= 연합뉴스).
2019 KBO리그 골든글러브 시상식 수상자 기념촬영 모습(사진= 연합뉴스).

1986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의 이보희와 김재전

스토브리그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시상식이다.

서울 아시안게임이 있었던 1986년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

당대 최고 인기 여배우 이보희 씨가 단아하고 우아한 복장으로 10개 포지션 가운데 유격수 부문 시상을 하기 위해서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이보희 씨는 수상자 이름을 잠깐 살펴보더니 이내 결심한듯, “유격수 부문, MBC 청룡 김재전!”이라고 호명을 했다.

당시는 신문이나 일반 문서에 한자로 이름을 주로 썼던 수상자 명단에는 ‘金在博’(김재박)이 라고 쓰여 있었다. 이보희 씨는 박(博)자를 전(傳)자로 착각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설사 한문을 헷갈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당시 선동열 최동원과 함께 프로야구 3대 스타플레이어 가운데 한 명이었던 김재박 선수를 몰랐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보희 씨가 야구에 철저한 문외한(門外漢)이었던 것이다.

골든글러브 10개 포지션 후보는 발표되기 전까지 KBO 담당자만 알 수 있게 철저하게 비밀로 되어 있고, 또한 전국적으로 생중계되고 있었기에 시상식장은 그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날 이후 수상자 명단은 철저히 한글로 표기되어 오고 있다.

P.S 스토브리그

스토브리그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프로야구의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비시즌 기간, 겨울에 스토브(난로)를 둘러싸고 팬들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선수 계약, 트레이드 등과 다음 시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뜻이 있다.

또 하나는 비시즌 기간, 팀이 선수와 계약을 하고, 선수를 사고팔고, 논공행상을 하고, 은퇴를 하고, 다음 시즌에 대비해서 훈련을 하는 등의 일이 난로같이 뜨겁게 전개된다고 해서 스토브리그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지난 12월13일부터 SBS에서 16부작(금, 토 드라마)으로 ‘스토브리그’를 방송하기 시작, 두 자릿수, 10%대의 시청률로 출발하면서 스토브리그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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