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창녕사무소장

이재호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창녕사무소장
이재호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창녕사무소장

우리나라는 1995년부터 세계무역기구(WTO) 농업 분야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오면서 그간 관세 및 보조금 감축률과 이행 기간 등에서 선진국에 비해 혜택을 향유해 오다 지난해 12월 말 정부에서는 “우리 경제의 위상, 대내외 여건, 경제적 영향”을 두루 고려해 24년 만에 개발도상국 특혜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

농민단체들은 농업·농촌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처사를 비판하며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요구하였고, 이에 정부에서는 농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농업 대책중 하나로 공익직불제를 도입하기로 밝혔다.

그 동안 농업인들에게 지급되었던 농업보조금인 쌀·밭·조건불리직불제를 2020년부터 새롭게 공익직불제로 통합하여 시행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공익직불제는 아직 생소하지만, 이미 EU(유럽연합)와 스위스는 ‘녹색직불제’로, 일본에서는 ‘농지유지직불제’라는 명칭으로 공익직불제를 시행해왔다. 국민들이 농업인의 농업 활동으로 창출되는 환경 보전, 생물 다양성 유지, 경관 및 문화 보전 등 농업의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인정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농업활동지원도 ‘녹색직불제’, ‘농지유지직불제’라는 명목으로 지급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농업이 발휘하는 다양한 공익적 기능과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급속한 산업 발전과 도시화로 인해 농업인의 농업 활동을 단지 먹고사는 기초적 생존 문제 해결을 위한 식량 공급의 도구로만 생각해 왔던 것이다. 이에 올해부터 도입되는 공익직불제는 우리나라의 농업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생각된다. 공익직불제 시행을 통해 농업이 단순히 국민에게 생존을 위한 식량 공급이라는 일차적인 기능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토양·수자원 유지 등으로 인한 환경 및 생태계 보전, 농촌 사회 유지를 통한 경관 보전, 도시인들에게 휴양 및 체험 활동 제공 등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우리의 농촌은 WTO, FTA 등 개방 무역 체제 하에서 미국·중국·EU 등 규모의 경제를 강점으로 하는 국가들과의 무한 경쟁 속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농가 소득 안정화에 대한 대책 마련도 없이 개방 무역이 가속화되어 농촌 사회가 붕괴된다면 앞서 언급한 농촌 사회의 유지로 인해 창출되는 많은 사회적 순기능들이 없어질 것이고, 향후 이러한 농촌의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올해부터 도입되는 공익직불제는 농가 소득 안정화 대책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

공익직불제로의 개편으로 세계무역기구의 농업 관련 예산 규제(AMS: 1조4,900억 원 이하로 농업보조금 지급)에서 벗어나, 농업 관련 예산을 국가 형편에 맞게 탄력적으로 늘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연초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와 같이 직불 예산이 전년 대비 70%가량 증가(2조4천억 원)한 것도 공익직불제의 도입으로 인한 것이다.

공익직불제 도입으로 이전의 쌀·밭·조건 불리 직불제(2005~2019년)보다 증액된 직불금을 지급하는 대신에 농업인이 지켜야 할 의무도 또한 강조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건강한 먹거리 제공을 위한 농약 허용 기준 및 비료 사용 기준 준수, 아름다운 농촌을 만들기 위한 영농 폐기물 수거 등 마을 공동체 활동 참여, 생태계 보존을 위한 농지 형상 및 기능 유지, 생태 교란 생물 반입 금지, 농업·농촌 공익 증진을 위한 교육 이수 의무화 등 농업인이 지켜야할 의무를 준수해야 직불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농업인의 영농 활동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공익직불제 도입을 통해 국민들에게는 농업이 창출하는 다양한 공익적 기능과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나아가 농가에는 안정적 수입을 보장시켜 농촌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면, 공익직불제가 우리의 농업 환경을 선진화 시키는데 큰 견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이재호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창녕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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