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마르 프란츠 리스트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귀국 후 오페라 <케르베로스 이야기>, <1953>, <그 소녀의 이야기>를 비롯 음악극 <이클립스>, <145년만의 위로>, 영화 <마지막 밥상>, <허수아비들의 땅> 등을 포함 다수의 가곡과 실내악곡을 작곡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 이재신이 최근 출간한 <가곡과 오페라 작곡론> (해드림 출판사)은 젊은 작곡가의 음악적 이상과 고뇌, 목표 그리고 작가정신을 알 수 있는 방편이자 가곡과 오페라라는 인성음악 작곡을 위한 귀중한 지침서로서 앞으로 이 분야 창작에 진로를 정한 사람들에겐 유익한 교재다.

해드림 출판사에서 출판된 작곡가 이재신의 '가곡과 오페라 작곡론' 표지
해드림 출판사에서 출판된 작곡가 이재신의 '가곡과 오페라 작곡론' 표지

오페라든 가곡이든 언어에 입각해있다. 음과 말(Ton und Wort), 음악과 시(Musik und Gedicht)는 독립된 세계지만 근원과 흐름은 같다. 상호 협력하고 사랑한다. 같은 물질이지만 발원지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미세하면서도 미묘한 차이와 경지를 파악하는 자야만이 둘을 하나로 결합하여 훌륭한 예술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 그 차이를 파악하는 게 작곡가의 능력이자 위대함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와 같이 두 개의 큰 골짜기(Chapter)는 '글의 지배를 받는 성악곡'과 '극의 지배를 받는 성악곡'이다. 글과 극의 뉘앙스를 찾아가는 여정이지만 그게 말로 전달되고 깨달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작가인 이재신의 여러 경험들과 노하우가 묻어 있다.

작곡가 이재신의 작업 현장, 사진 제공: 작곡가 이재신
작곡가 이재신의 작업 현장, 사진 제공: 작곡가 이재신

먼저 이재신은 무의식의 언어, 작곡 과정에서의 법칙을 논한다. 당연한 수순이다. 이재신은 언어로 시나 소설을 쓰는 작가가 아닌 글에 음을 붙여 소리를 내서 불려 들리는 예술인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논리적 서술인 언어를 담을 도구가 필요하다. 그러고 나서 '시의 지배를 받는 성악곡' 즉 가곡 작곡으로 넘어간다. 무엇보다 이재신은 한국어 특유의 성질, 띄어쓰기와 장단, 음절, 호흡 등을 치열하게 연구하면서 선율을 우선에 두는 게 아닌 언어의 의미 전달에 주목한다. 그건 아마 그의 작곡가로서의 경험에 기반한 것일 테다. 왜 우리 가곡은 가사 전달이 안될까? 왜 한국 사람이 한국말로 노래를 부르는데 듣는 사람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까? 그 원인을 파헤치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이재신뿐만 아니라 서구 클래식 음악이 유입된 후 서양 음악작법을 하는 작곡가들의 공통된 과제였다. 여러 방법과 분석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이재신은 자신만의 해법으로 부딪히고 나름의 학문적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이건 2장의 오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피아노로 반주하는 가곡이 언어적 제약에 빠져 들리지 않는다면 오케스트라로 반주하고 가곡보다 훨씬 큰 공간에서 여러 사람에 의해 불리는 오페라가 언어적 소통이 쉬 이루어지겠는가? 성악가라면 발성에 대해 다룰 것이지만 이재신은 작곡가니 말이 잘 들리게 하는 언어적인 해답을 내놓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작곡가만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다. 이 문제를 영구히 확고하게 해결하려면 국문학자, 언어학자 그리고 직접 소리를 내서 부르는 성악가과 음운학자 들이 같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이 책은 작곡가만의 책이 아니라 성악가라면 꼭 읽어야 되는 책이다.

이재신 저, '가곡과 오페라 작곡론' 표지와 속지
이재신 저, '가곡과 오페라 작곡론' 표지와 속지

가곡의 시와 같이 불리고 행동하고 지시를 받은 종합무대예술인 오페라에서 언어의 집합체는? 당연 대본이다. 연기를 목적으로 쓴 글인 희곡, 대본과는 달리 노래를 목적으로 한 대본이기 때문에 아무리 한국에서의 전문작가군이 없어 정착하지 못했더라도 정확한 용어인 리브레토(Libretto)를 쓰라고 주장한다. 대사가 노래로 불리기 위해서는 희곡을 리브레토로 각색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오페라를 위한 대본은 '노래를 위한 글'이라는 것을 특정한 '리브레토'로 칭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더불어 이재신은 이 책을 통해 '메아리'와 느리고 서정적인 카바티나(Cavatina)와 빠르고 격정적인 카발레타(Cabeletta)가 연속적으로 나오는 '겹아리아 형식'이라는 용어를 제창한다. 그 자신이 여러 무대음악, 영화음악, 공연예술을 위한 작곡을 직접 하고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터득한 용어들이기 때문에 탄탄하고 설득력 있다. 필자도 앞으로 이런 적합한 용어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겠다.

이재신 저, '가곡과 오페라 작곡론' 목차
이재신 저, '가곡과 오페라 작곡론' 목차

가곡과 오페라의 종류, 형식, 반주와 노래의 분류 등 이론적인 내용도 풍성하다. 악식론이 첨부되어 있어 유용하다. 오페라 가수를 분야별로 나누는데 그치는 게 아닌 오페라에서의 배역을 일일이 지정해 주어 오페라 작곡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이드라인과 감상의 자료들을 제공한다. 오페라 가수의 캐틱터가 단지 음역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닌 각 성부가 갖는 고정된 특징과 개별적 색채가 더해져 인물이 만들어지듯이 인물의 개별적 성격은 음색으로 구분된다. 이런 막연한 느낌을 타파하고 습득하기 위한 가장 최상의 방법은 고금의 오페라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의 노래를 듣고 공부하는 건데 가수뿐 아니라 오페라의 성격까지 구분해 놓았으니 더 이상 친절할 수가 없구나.

궁극적으로 이재신은 작곡가로서의 자아와 주체를 표방한다. 시의 정서는 시인으로부터 받아 작곡가가 느끼는 정서다. 오페라의 리브레토 역시 작곡가의 넘치는 상상력과 예술성이 만났을 때에야 만이 활자에서 벗어나 생생한 음의 울림으로 귀에 들려진다. 21세기 대중문화, 복제 시대에 천편일률적으로 생산되는 소비성 공산품에서 벗어나 시는 시답게, 극은 글답게 되는 음악을 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이재신, 과연 그게 이재신만의 소망일까? 그러려면 다시 반복하지만 이 책을 작곡가만 읽어선 안된다. 시대를 초월한 복제가 아닌 독창성이 넘치는 불세출의 작품 탄생과 정립을 위해선 작곡가, 성악가, 연주자, 매니지먼트 모두가 함께 읽고 만들어가야 하는 과업이기 때문이다.

4월 4일 토요일 오후 3시, 우리는 작곡가 이재신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4월 4일 토요일 오후 3시, 우리는 작곡가 이재신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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