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에는 아우라지 다리 주변의 강물이 꽁꽁 언다. 그러나 물살이 센 교각 부근에는 소용돌이가 일어서 얼음이 얼지 않았다. 거기만 얼지 않아서 큼직한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나를 거꾸로 들어서 그 구멍에다 우겨 넣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병장이 되자 간이 커져서 일석점호를 마치면 혼자 궁평리 마을 가게에 나가서 전화도 하고 호빵도 사먹고 소주를 마시면서 부대로 돌아온 일이 몇 번 있었다. 신통한 안주도 없이, 걸으면서 병째 들고 급히 마신 술이어서 아우라지 다리가 저 밑에 보일 때쯤이면 취기가 올랐다.

고요한 밤에 혼자 아우라지 다리를 건너자면 다리 바로 밑으로 큰물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저승으로 데려가려는 듯한 느낌이 들어 무섭기도 했다. 나는 동행이 있기나 한 듯이 큰 소리로 이 새끼 저 새끼 욕도 하고 군가를 부르기도 했다. 아우라지 다리 중간에 하류 쪽을 보고 걸터앉아 멀리 있는 여울에서 섬세하게 부서지는 달빛을 오래 바라보기도 했다.

달빛이 부서지는 여울의 물소리는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처럼 들렸다. 여울 아래 딴 세상이 있고, 그 세상 아이들이 철없이 놀고 있다는 상상도 했었다. 그러다 아이들 엄마다 싶은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리면 등골이 오싹하기도 했다.

사고가 난 날은 혹한기 야영 훈련을 마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이 날은 낮에 나갔다가 돌아오는데 저녁이 되면서 찬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입이 얼고 귀가 떨어져 나갈 듯 아팠다. 그래도 소주 생각이 간절한 참에 구멍가게 앞에서 소주병들을 잔뜩 안고 나오는 사람을 만났다. 우리 부대에서 방위 근무를 한 사람이었다. 그는 낮에 한탄강에서 동면 중인 개구리를 한 양동이나 잡아다가 튀김을 하고 있으니 몸보신 할 겸 한 잔 하자고 붙들었다.

그를 따라 어떤 허름한 집에 들어갔다. 들어갈 때만 해도 딱 한 마리에 딱 한 잔 만 마실 각오였다. 그러나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가. 불룩한 배가 툭 툭 터진 개구리 튀김 앞에 둘러 앉은 동네 사람들이 너도 나도 한 잔 씩 권하는 대로 받아 마시다 보니 여러 잔 마셨고, 얻어 먹고 그냥 나오기 미안하여 나도 가게에 가서 술병을 안아다 놓았다.

그러고 그냥 나왔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또 앉아서 마셨다. 점호는 이미 끝났을 테고, 주번 사관에게는 병영 외곽에 보초 서러 나간 것으로 보고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얼큰해질 때까지 마시고 일어섰다.

앉아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일어서서 걷자니 잠시 휘청했다. 그러나 밖에 나와 찬바람에 휩싸이자 정신이 또렷해졌다. 하늘에 총총 박혀 있는 별들이 아우라지 가는 길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장갑을 꼈는데도 손이 시려워서 손을 겨드랑이에 끼고 걸었다.

북두칠성 아래 한탄강 건너편 공제선이 보이고 그 밑으로 뚝 떨어진 강물이 허옇게 드러났다. 어느 가을에 벼락에 감전되어 쓰러졌던 비탈길을 내려가서 아우라지 다리로 접어드는 사이에 다시 취기가 올라왔다. 노래를 부르고 싶을 정도로 기분 좋은 취기였다.

다리 가운데쯤에서 갑자기 나타난 두 명의 사내들 때문에 아연 긴장했다키가 나보다 한 뼘씩은 더 커 보이는 그들은 다리 가운데 장승처럼 딱 버티고 서 있었다. 군인 복장이었는데 모자부터 허리까지 위장망 같은 것을 얼기설기 걸치고 있었다. 서해안에 침투한 간첩들이 북쪽으로 도주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지 얼마 안 된 때여서 도피로를 차단하기 위해 매복 나왔다가 돌아가는 다른 부대 병사들이라고 생각했다.

'수고하십니다' 하고 지나가려는 순간 그들은 나를 잡아챘다. 한 놈은 내 목을 감고 다른 한 놈은 내 다리를 잡아서 번쩍 들었는데 동작이 어찌나 빠르고 힘은 얼마나 완강한지 꼼짝달싹 할 수 없이 제압되었다. 너무 놀라서 악 소리도 못 질렀다.

혹한기에는 아우라지 다리 주변의 강물이 꽁꽁 언다. 그러나 물살이 센 교각 부근에는 소용돌이가 일어서 얼음이 얼지 않았다. 거기만 얼지 않아서 큼직한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나를 거꾸로 들어서 그 구멍에다 우겨 넣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일찌감치 머저리가 되고 대머리가 된 이유는 얼음 짱 밑으로 휩쓸리면서 머리 위의 얼음 판을 깨겠다고 박치기를 해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얼결에 당하기는 했지만 이제 죽는다 싶으니 물속에서 얼음판에다가 박치기를, 숨도 못 쉬면서 혼신의 힘을 다한 박치기를 연거퍼 해댔으니 대갈통이 어찌 온전했겠는가?

얼음판이 워낙 두꺼워서 박치기는 허사가 되고 말았다. 나는 지쳤고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얼음판 밑을 흐르는 강물을 따라 얼마간 떠내려간 듯하다. 그러다가 얼음판이 얇아지는 여울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들어서 단말마의 힘으로 뿌드득 일어섰을 것이다. 내 기억은 박치기 중에 끊어졌다가 갑자기 숨을 몰아 쉬면서 자갈밭으로 기어 오르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나는 자갈밭에 기어 올라가 털썩 주저앉아서 한참 동안 숨을 몰아쉬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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