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 아우라지 다리 위에서 조우한 두 명의 장승 같은 사내들은 누구였을까? 자갈섬에 표류하여 도와달라고 소리지를 때 건너편 기슭에 잠시 나타나 우두커니 서 있다가 휭하니 사라진 그림자는 또 누구였을까? 나의 이 오랜 의문에 대한 결론은 그들이 도깨비였다는 데로 모아진다.

 

당시 공병대대 정문 위병은 1 중대 상병이었다. 상병은 저 먼데서 누가 악을 쓰면서 부대를 향해 달려오는 소리를 듣고 위병조장인 하사에게 보고를 했다. 하사는 위병 장교인 소위에게 보고했다. 그들은 악을 쓰면서 달려온 자가 본부 중대 병장임을 확인하고 정문을 통과하도록 그냥 내버려 뒀다. 위병 장교였던 1중대 신임 소위가 누구냐고 묻기는 했지만 '본부중대 말년 병장'이라고 했더니 문제 삼지 않았다고 했다.

내무반 불침번에 의하면 내무반에 들어서자마자 젖은 옷을 활활 벗어던지면서 뻬치카 옆 침상으로 가서 걸터앉더니 덜덜덜 떨면서 군화를 벗고 바지를 벗었다. 알몸으로 모포를 여러 장 뒤집어쓰고는 덜덜덜 떨면서도 궁시렁 궁시렁 시발 조팔 욕을 했다. 불침번이 팔 다리를 주물러 줬다. 자다가 깬 몇몇이 교대로 주물렀다. 그렇게 주물러서 재웠다는데 나의 기억은 쌍욕을 구령 삼아 기계적으로 달리던 데서 끊어져 있다.

한탄강 아우라지 다리 위에서 조우한 두 명의 장승 같은 사내들은 누구였을까? 자갈섬에 표류하여 도와달라고 소리지를 때 건너편 기슭에 잠시 나타나 우두커니 서 있다가 휭하니 사라진 그림자는 또 누구였을까?

그날 밤 아우라지 인근에서 대간첩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매복했던 군이나 경찰이나 예비군 병력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서해안으로 침투하여 북으로 도주하던 간첩들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과연 누구였을까? 나의 이 오랜 의문에 대한 결론은 그들이 도깨비였다는 데로 모아진다.

70년대 중반에 경북 춘양에서 동네 예비군 중대장을 했던 분이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대포 한 잔 걸친 후에 오토바이를 몰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집으로 오는 길에 한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보여 줄 게 있다며 따라 오라고 했고 중대장은 일단 오토바이에서 내려 여자를 따라갔다. 여자가 ' 앞에 새냇물이니까 바지단을 걷어 올리라'고 해서 바지단을 걷어 올렸고, '앞에 가시덤불이니 바지단을 다 내리라'고 하여 바지단을 다 내리고 따라다녔다.

그런데 가시덤불이라는 데는 시냇물이었고, 시냇물이라는 데는 가시덤불이었다. 오랜 시간을 그렇게 가시덤불과 시냇물을 드나들며 시달리다 다시 오토바이를 세워둔 자리로 돌아왔다. 중대장은 얼른 오토바이에 올랐는데 여자가 뒤에 타겠다고 붙드는 바람에 여자를 태우고 혹시 떨어질까 봐 끈으로 여자의 허리를 오토바이에 묶었다.

중대장은 오토바이를 타고도 뒤에 탄 여자가 가자는 대로 이리 저리 한없이 끌려 다니다가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그대로 쓰러져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온몸이 가시에 찔리고 긁혀 피투성이였다. 마당에 세워둔 오토바이 뒷자리에는 헌 빗자루가 끈에 묶여 있었다.

중대장은 크게 놀라 앓아누웠다. 동네 노인들이 찾아와 사연을 듣고는 도깨비에게 홀렸던 거라며 굿을 권했다. 굿을 하고도 사흘을 더 앓고 닷새 만에 병을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당시 50 대였으며 2010년경에 88세로 타계했다는 그 중대장은 평소 말수가 적고 점잖았으며 헛말은 결코 하지 않는 분이었다고 나의 지인인 K씨는 회상한다.

K 씨는 그 예비군 중대장의 처남이다. 그는 '도깨비들은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며 심술과 잔꾀가 많아서 사람 골탕 먹이는 짓을 곧잘 한다는 얘기를 고향에서 종종 들었다'고 덧붙였다. K 씨가 해 준 얘기를 잊지 않기 위해서 엉성한 운문 몇 줄을 남긴다.

남자를 홀린 여자는 헌 빗자루였네

밤새도록 물에 빠지고 가시에 긁혔네

그러고도 모자라 오토바이 뒤에 태워서

허리를 질끈 묶고 어둠 속을 달렸네

도깨비장난에 속아 앓아누운 중대장은

신에게 빌고 나서 닷새 만에 병을 털었네

씩씩하고 술 잘 먹는 이 세상 남정네들아

귀가길 길목에서 여자의 모습으로 손짓하는

심술 많고 질투 많은 도깨비를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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