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국내 처음으로 일괄 도입된 미국산마의 활약을 독자여러분은 기억할 것이다. 과거 국내 도입된 외산마는 호주와 뉴질랜드산 경주마들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해 왔지만 미국산마의 도입으로 인해 그 판도는 서서히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금에 와서는 외산 랭킹 1,2위를 지키고 있는 ‘밸리브리’, ‘섭서디’를 비롯해 외산 1군마의 절반이상이 미국산 경주마라는 점에서 남반구(호주, 뉴질랜드) 경주마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경주로가 모두 모래주로로 이루어져 있음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이나 호주 등의 경주로가 주로 잔디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미국의 경주로는 대부분 모래주로이기 때문에 모래주로에서 강점을 보이도록 진화해온 미국산 경주마들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미국산마 강세, 남반구마 약세”의 원인은 말의 모래 혹은 잔디주로 적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얘기로 귀결되며, 경주로특성에 맞는 좋은 말을 선별하는 것은 우승마를 선별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의 주로적성은 혈통과 관련된 부분이 적지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말의 외형을 보고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으며, 이번 강의를 통해 그 요령과 원리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말의 주로 적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의 ‘발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말의 다리를 보면, 앞다리와 뒷다리 모두에는 구절과 발굽을 연결하고 있는 ‘발목’이 있다. 이 부분은 어느 말이든 비스듬하게 기울어 있지만 예시장에서 걷고 있는 말의 경우 다리를 디뎌 체중이 실리는 경우 이 부분이 한층 더 기울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을 살펴보자. 사진은 말의 속보 장면으로 앞다리를 디뎌 체중을 지탱할 때, 발목 부분이 크게 굴절하면서 다리에 걸리는 충격을 완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때 발목 부분은 거의 지면과 평행을 이룰 정도다. 만약 말이 전력질주를 한다고 가정해본다면, 다리가 받는 하중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충격완화를 위해 발목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뒷다리 보다 앞다리 발목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미 지난 강의에서도 언급했지만 말의 체중이 많이 실리는 부분이 바로 앞다리라는 점에서 앞다리의 발목은 전체의 밸런스를 지탱하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의 발목을 살펴볼 때는 무엇보다 앞다리에 주목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말의 잔디 또는 모래주로 적성은 발목의 기울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말에 따라 발목의 기울기는 모두 미묘하게 다르다. 각도가 다소 급한(서있는) 경우가 있는 반면 각도가 누워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기울기는 발목의 길이와 연관성을 갖는다. 평균 정도의 길이를 가진 말은 그 각도가 45°를 이루는 것이 보통인 반면, 발목 길이가 짧은 말은 비교적 각도가 서있게 되며, 발목이 긴 말은 완만한 각도를 이루게 된다.

특히 발목 길이가 짧아 그 각도가 서있는 말의 경우를 모래주로의 적성을, 발목 길이가 길고 그 각도가 누워있는 말은 잔디주로 적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모래주로는 주로의 표면에 7,8센티미터 정도의 모래가 깔려있어 그만큼 말이 뛸 때 그 충격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와 비교해 잔디주로에는 잔디 아래의 모래가 있지만 모래주로만큼의 충격완화 효과는 없기 때문에 모래주로보다 훨씬 딱딱하다.

이렇게 딱딱한 주로 즉, 잔디주로를 뛰기 위해서는 말 스스로가 어느 정도 충격을 완화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발목의 각도가 서있는 말은 충격흡수가 쉽지 않아 다리에 받는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 밖에 없고 결국에는 그러한 충격이 누적되어 다리가 망가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따라서 발목의 각도가 서있는 말은 쿠션성이 떨어지는 잔디주로 보다는 쿠션성이 높은 모래주로의 적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발목의 길이가 짧은 말이 모래주로 적성을 갖게 되는 데에는 이것 뿐만 아니다. 바로 발목의 움직임 즉, 회전반경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는데, 에서와 같이 발목이 긴 말은 보다 큰 반경을 가지고 발목을 움직이게 된다. 반면 짧은 발목의 말은 작은 반경으로 발목을 움직인다.

모래 위를 달려보면 알겠지만, 발이 깊숙하게 빠질수록 모래에서는 달리기가 어려워진다. 모래 위에서 잘 달리기 위해서는 가급적 모래에 발이 머무는 시간이 짧아야 한다는 얘기다.

말의 경우도 발목의 움직임 반경이 커질수록 모래 속에 발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그만큼 체력과 스피드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어 잘 달릴 수가 없게 된다. 상대적으로 발목의 회전반경이 작은 말은 모래에 발을 디딤과 동시에 빠르게 모래로부터 발을 뽑을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저항이 줄어들게 되어 모래주로에서 잘 달릴 수 있는 이유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잔디와 모래주로 적성을 가진 말의 특징은 반드시 발목의 길이와 각도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잔디의 레이스는 스피드와 순발력, 모래의 레이스는 힘과 스피드를 갖춘 말이 유리하다는 기본적인 차이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북미 경주마는 힘이 있고 근육이 발달한 대형마들이 위주를 이루는 반면, 유럽이나 호주의 경주마는 부드러운 체형의 장거리마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현역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고 있는 북미의 대표마 ‘컬린’(Curlin, 미국, 4세)도 모래주로에서는 무패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잔디주로에서는 그다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을 보면, 잔디와 모래주로가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잔디, 모래주로 적성의 말을 선택하는 것은 비단 경마팬 뿐 아니라 말을 구입해야 하는 마주 입장에서는 더더욱 요구되는 안목일 것이다. 비싼 값을 주고 구입한 우수혈통의 말이 실전에서 맥을 못 추는 이유에는 무엇보다 주로적성과 관련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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