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3
    
윤한로

백치 청년 므이쉬낀이 사랑한
백치보다 훨씬 더 어리석고
더 가난하고 더 못난
훨씬 더 백치인 마리
들창 두 개 난 오막살이에
늙은 어머니와 단 둘
맨발에 너덜너덜한 옷
남에 집 빨래하고 소 치고
겨우겨우 밥 빌어먹지만
어느 날 사기꾼 놈팡이한테 엮여 따라갔다간
바로 채였지만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다
라고 생각하는
그것으로도 큰 은혜라 생각하는
백치보다 훨씬 더 고결한 아가씨 마리
니까짓 것들이 뭐냐, 니까짓 것들이 뭐냐
애시당초 이런 마음은 손톱만큼도 먹질 않아
마침내 애들이 좋아하고
우리 주인공 백치 청년이 사랑했네
새들이 좋아하고
풀 나무 구름 같은 것들이 좋아했네
사람들만 빼놓고 누구나 다
여왕처럼 떠받들었네, 사랑했네
얼마나 아름다운가
마리네 오막살이에 뚫어놓은 들창 두 개
그건 순전히 도스토옙스키
마음

 


시작 메모
요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까라마조프네 형제들, 백치를 다시 읽었다. 하여튼 읽는데 재미없고 지겨워서 죽을 뻔했다. 끈적끈적하고 불완전하고 복잡하고 장황하고. 그런데 이상하게 읽고 나면 자꾸만 더 읽고 싶다. 단번에 훅, 사로잡는 작가들이란 처음 읽을 때만 기똥차고 나중에는 전혀인데. 그게 문학의 실재 차이라고 보면 되겠다.

 

저작권자 © 말산업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