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의 이름은 각 국가의 엄격한 룰의 적용하에 마명(馬名)이 붙여지고 있다.(사진=netkeiba)

“왜 경마를 좋아해”라고 물으면 단순하게 말이 좋아서라던가 경마장 분위기가 좋아서 등 각자의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필자의 경우는 일본 유학 당시 경마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이끌려 경마장을 방문하게 되면서 잔디밭과 삼삼오오 경마를 보러온 고객을 반겨주는 귀여운 포니의 접객행위 그리고 목 끝까지 터질듯하게 만드는 시원한 매점의 생맥주 등 다양한 원인으로 경마장의 분위기에 빠지게 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경마 즐기기는 그 후 멋진 경주마와 백마 탄 왕자, 아니! 경주마를 탄 기수님에게 관심이 쏠리게 되었고 경주마들에게 붙여진 예쁘고 멋진 이름으로 인해 경주마에 대한 응원이 시작되었다.

경주마의 이름은 각 국가의 엄격한 룰의 적용하에 마명(馬名)이 붙여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한자를 쓰는 나라이지만 1928년 이후부터 말(馬) 이름에는 한자표기가 금지되어 외국어 표기를 할 때 사용하는 카타가나(KATAGANA) 등록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 외 국제조약에 의해 공백을 포함해 알파벳 표기는 18자 이내, 카타가나 표기는 장음을 포함해 2자에서 9자 이내, 이미 등록되어있는 마명이나 약간 혼동되고 헷갈리기 쉬운 마명, 유명인의 이름, 미풍양속에 반하는 마명 또는 모욕적이라고 볼 수 있는 마명, 말의 의미와 성별이 다른 말 이름, 말 및 경마 등에 관한 용어, 알파벳 또는 숫자를 카타가나로 표기했을 뿐인 말 이름, 국제 보호 마명 등은 쓸 수 없다는 규칙이 정해져 있다. 이전에 등록되었던 말이 죽고 일정의 연수가 지나면 다시 쓸 수는 있다는 예외도 있지만, 대상 등 주요 큰 경기에서 우승한 말의 이름은 절대로 쓸 수 없는 엄격한 규칙도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마명에는 영어를 시작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산스크리트어 등 공존하는 각양각색의 언어가 마명에 사용되고 있는데, 우픈 얘기로 너무 많아서 엄격하다는 규칙보다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에어그루브(Air Groove)”, 필자에게 경마를 좋아하게 만들어 준 아름다운 암마(牝馬)의 이름이다. “에어”는 일본 마주들이 흔히 쓰는 관명(冠名), “그루브”는 음악의 리듬을 뜻하는데 리듬처럼 설레게 한다는 뜻으로 그 의미를 전달하는 이름이었다. 일본 경마 전반의 우승을 이끌어 가던 수마(牡馬)들 속에서 몸 중심의 밤 갈색에서 갈기와 꼬리, 말굽으로 갈수록 검은 그라데이션이 빛나는 마체, 특히 잔디 위를 날아가는 듯한 모습으로 우승을 잡아낸 1997년 가을 천황상 레이스는 이름의 유래와도 같이 경마팬들을 두근두근 설레게 하였고 그 이후 필자는 홀리듯 그녀에게 빠져버리게 되었고 지금은 하늘로 떠나버렸지만, 그녀가 남긴 “에어그루브” 일족을 따라다니는 아주 찐한 광팬이 되어버렸다.

“오르페브르(Orfevre)”, 경마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스 개선문상에서 2착을 두 번이나 했던 아시아의 “금빛 폭군”이라 불리던 수마의 이름이다. 프랑스어의 “금 세공사”라는 뜻으로 생김새가 아름다운 밤색 털의 예쁜 마체와 부마인 스테이골드(Stay Gold)의 골드를 프랑스어로 가져와 지은 마명이었다. 기가 센 말로 유명했었던 그는 데뷔전에서 코스 레코드로 우승선을 밟고 날카로워진 나머지 그만 기수를 떨어뜨려 버려 위너즈 서클에서의 기념 촬영이 중지되는 헤프닝을 만들어 버린 일도 있었다. 그 후로 잔디 위의 폭군이라는 별칭이 붙게 되었고 많은 기록과 기억을 만들면서 은퇴 레이스에서도 우승하면서 역시나 변하지 않는 자세로 자신의 파트너 기수를 거침없이 방마(放馬) 시키면서 건장함과 함께 금빛 폭군다운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한마디로 “오르페브르”는 사이다 같은 시원한 존재였다. 엘리트 경주마라기보다 반항아 같은 마이페이스형으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그런 금빛 폭군의 기질로 팬들을 매료시켰다. 아니 적어도 필자에게는 경마장의 금빛 아이돌이었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다시(Sodashi)”,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백모를 가진 “순백의 여왕”으로 불리고 있는 현역 3세 암마의 이름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순수, 빛남”의 뜻으로 이름이 명명하듯 백색모(白色毛)가 잔디를 뚫고 나올듯해서 그녀의 달리는 모습은 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실 정도다. 흰색의 마체 만으로도 인기와 관심의 대상인 그녀는 세계 최초 백마 GⅠ우승을 거머쥐며 이제는 “순백의 괴물”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고 GⅠ우승 기념품인 “소다시 호스인형”은 온라인 판매 시작 6분 만에 완판되는 최단기록을 세우면서 명실상부 일본 경마계의 BTS급 아이돌 호스로 자리매김하였다. 사실 필자가 “소다시”를 좋아하게 된 데는 백마일족의 마명을 참으로 좋아했기 때문이다. “소다시”의 모마 부치코(Buchiko)는 약간 검은 얼룩이 있는 백마여서 얼룩무늬 여자아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고, 외조모인 시라유키희메(Shirayukihime)는 동화 백설공주의 주인공에서 이름의 유래를 가져왔다. 그리고 외삼촌 시로니(Shiray ni)는 하얀 형, 이모 유키짱(Yukityan)은 눈(雪)언니, 이모 마블케이크(marble cake)는 밤색의 얼룩이 조금 섞여 있어서 아~예뻐하며 즐겨 먹는 케이크의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유니크한 이름과 백마라는 희귀성 때문인지 성적이 우수한 가계는 아니지만, 필자를 비롯한 일본의 경마팬들에게 압도적인 인기의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는 일족이라 할 수 있다.

“레이파파레(Lei Papale)”, 제트기 구름이라는 마명의 삼관마 컨트레일(Contrail)도! 대환성이라는 마명의 쾌속마 그란아레그리아(Gran Alegria)도! 그녀 보다 먼저 골을 밟을 수는 없었다. 경마 아나운서에게 “끝없는 매력의 무패마”로 불렸던 현역 4세 암마의 이름이다. 하와이어로 “모자 테두리에 장식하는 화환”이라는 뜻으로 여행객을 맞이할 때 머리나 목에 걸어주는 아름다운 히비스커스 꽃의 연상이 밤 갈색의 마체와 잘 어울리는 너무나도 예쁜 마명이다. 그런데 예쁜 이름과는 달리 레이스에서의 그녀는 선행을 좋아하고 항상 선두로 리드 유지를 하면서 그대로 우승선에 들어오는 매우 저돌적인 선행마 스타일로 매번 꽃의 왕관이 다른 말(馬)을 위한 것이 아닌 그녀 자신의 것임을 강조하는 레이스를 펼치곤 한다.

필자는 경주마로서는 비교적 작은 마체를 가진 “레이파파레”가 큰 상대들과 경합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훅! 하고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할 때가 많다. 아마도 키가 작고 왜소한 필자와 같은 입장에서 근거 없는 동족의식 같은 것이 느껴져서 일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생각 또한 그녀를 좋아하고 경마를 좋아하는 이유임에는 틀림이 없기에 그냥 즐기고 있는 중이다.

6월 마지막 주 일요일, 일본 경마 상반기 빅 타이틀인 제62회 다카라즈카기념(宝塚記念) 레이스가 있었다. “레이파파레”는 3착을 하였고 데뷔 후 연승이라는 기록이 안타깝게도 6에서 멈추고 말았다. 개선문 챔피언 바고(Bago)의 딸 다운 창세기라는 뜻의 마명의 주인공 5세 현역 최강마 쿠로노제네시스(Chrono Genesis)의 벽이 만만치 않았던 레이스였다. 그렇지만 4세 “레이파파레”의 전성기는 지금부터 시작이기에 그녀가 출전할 레이스가 하염없이 기대되고 그런 만큼 필자는 늘 그랬던 것처럼 응원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이름의 말(馬)이 나타나서 필자를 두근두근하게 만들지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한국 경주마의 이름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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