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마가 태동했던 군산경마장 터... 경마 100주년 기념 군산 경마장의 발자취를 찾아

1912년 개통된 군산선 철도의 역사와 그 일대 모습(사진=한국마사회 제공)

내년 2022년은 우리 땅에서 경마가 시행된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마사회 말박물관은 100주년을 기념해, 고난과 발전의 태동을 겪어온 한국 경마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나라 경마 태동의 현장, 군산경마장 터를 직접 찾아가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가보자.

 

1922년, 우리나라 최초 근대경마 경마구락부에서 출발... 이후  전국 9개 경마장에서 순회 경마 개최

1922년 서울에 사단법인 경마구락부(클럽)이 발족하며 본격적으로 근대 경마가 등장했다. 우리나라 경마의 시작은 학생 체육대회 수준인 나귀 경주, 기병 경주가 시작이었다. 이어 평양, 대구, 신의주, 부산, 군산 등에서 차례로 법인이 인가됐고, 193년 조선경마령 시행과 함께 전국 경마구락부를 총괄하는 사단법인 조선경마협회가 발족했다. 이후 전국에 난립했던 경마 단체들이 정리가 됐고, 그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경마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함흥, 청진, 웅기 세 곳에 경마장이 추가로 증설, 전국 9개 경마장 순회경마 시대가 1941년까지 이어졌다.당시 봄과 가을 시즌에 맞춰 기수들과 참가 말들이 전국을 순회하며 경기에 참여했다.

 

‘경마교’, ‘경마경로당’ 등 이름 남아 있어.. 옛 군산경마장은 군산 동부시장을 중심으로 한 경암동

일제강점기라는 시기를 겪어야 했지만, 당시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던 경마의 기원을 찾기 위해 한반도 최초로 공인 경주로가 설치됐던 전북 군산경마장을 직접 찾았다.

과거 군산경마장의 흔적은 구불구불 흐르던 경포천을 일직선으로 정리하면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함께 조사에 동행한 원봉연 문화해설사는 '1935년 제작된 군산시가지도와 현재의 도로명 지도를 맞춰보면 조금 더 구체적인 위치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여러 장소를 안내했다.

옛 군산경마장은 지금의 군산 동부시장을 중심으로 한 경암동 징역에 취했다. 타원형 주로가 경포천을 따라 금강 방향으로 길게 놓여있었다는 것이 기록에 남아 있다. 현재 경마장 부지에서 경포천 건너편에 고층 아파트가 있는 자리 뒤쪽이 바로 순회경마에 참가하는 말들이 기차를 타고 이동했을 옛 군산역 터다.

현재는 역사도 철거되고 철로만 남아있지만 백여 년 전 수십 두의 경주마들이 기차에서 내려 군산시가로 퍼레이드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옛 군산과 경주마들이 거니는 그날의 모습이 흑백영화처럼 스쳐 지나간다.

지금도 볼 수 있는 '경마교'는 1987년 팔마광장 근처에서 경마장 터로 다리를 놓으면서 관청에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경암동 내 '경마경로당'도 마찬가지다. 아쉽게도 유형(有形)의 자취는 남아있지 않지만 이름으로나마 우리나라 경마의 옛 추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성가의원에서 바라본 옛 군산경마장 터(사진=한국마사회 제공)

 

일제 강점기 때 경주로 폭파, 이후 미군 화재로 건물도 불타.. 하루 5,000장 정도의 마권이 팔렸던 군산 경마장

군산은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에서 수확한 쌀을 내보내는 주요 수출항구로 일본인 거주자들이 많았다. 사람이 많으니 유희를 즐기는 사람들 역시 부지기수였다. 본래 1923년 해안매립지에서 경마가 시행되다가 당시 경장리(지금의 경암동)에 2만 1천 평, 즉 7만㎡ 면적의 경마장을 조성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과 군산에서 공인 규격의 고정 경마장이 가장 먼저 설치됐는데, 군산이 1927년 10월 준공기념 대회를 5일 동안 개최했고, 서울 신설동경마장이 1928년 9월에 첫 대회를 열었다. 서울보다도 군산이 무려 1년이나 앞서 대회를 개최했으며, 이로써 한반도 최초 공인 규격 경주로에서 열린 경마대회 타이틀은 군산경마장에게 돌아갔다.

이후 군산 경마장은 1928년 첫 해에 87두를 시작으로 1929년 147두, 1930년 161두가 경기에 출전, 1930년도 마권 발매는 총 49,557매로 매출은 99,354원(円)으로 이는 현재 원화가치로 12억 2천만원 수준이다. 1년 기준으로 봄과 가을 기간동안 약 10일 간 경주가 열렸으므로 하루 평균 5,000장 정도의 마권이 팔릴 정도로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군산시 인구가 10만 명이 안됐다는 것을 감안해도 엄청난 수치다.

아쉽지만 화려했던 군산경마장의 결말은 씁쓸하다. 1941년 일제가 미국 항공기의 착륙을 저지하기 위해 주로를 폭파하며 경마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1945년 11월 미군이 점령하고 주둔하던 중 모닥불에 탄약이 폭발하며 건물도 사라졌다. 이때 사고로 의용소방대원 등 숨진 사람만 40명이 넘고 1천여 명의 부상자를 냈다고 한다. 경마장은 군산 주민들에게 아픈 기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후로 80년의 세월이 흘렀고 과거 군산경마장에 대한 기억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인 규격 경주로 경마장임에도 자료가 많지가 않다. 아쉽지만 경마 시행 100주년을 앞두고 모두가 다시 추억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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