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도핑보다 57년이나 앞선 경주마 도핑의 세계. 경주 전후 소변·혈액으로 도핑검사
25년 연속 국제경마화학자협회 주관 국제숙련도시험 연속 합격하며 도핑기술 공신력 증명한 한국마사회

한국마사회 도핑검사소(사진=한국마사회 제공)

최근 진짜와 가짜를 판별하는 예능프로그램에 '하루 종일 말 소변만 받는 직업'이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직업은 진짜 휘파람 소리로 말이 소변을 누도록 유도하며 시청자들의 의구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름도 생소한 직업인 '시료채취사'는 금지약물 검사인 도핑테스트를 위해 경주마의 소변샘플을 채취하는 직업이다.

시료채취사는 한국마사회 도핑검사소 소속으로 하루 평균 약 17두의 경주마 소변 샘플을 채취한다. 경주에서 1,2,3위를 차지한 경주마들은 의무적으로 경기 직후 도핑검사소에서 시료채취에 응해야 한다. 도핑검사소는 경주 전후로 채취한 소변과 혈액 색플로 약 700여 종의 금지약물을 검사한다. 검출된 약물의 종류와 고의성, 검출 횟수에 따라 경주마 관계자는 한국마사회로부터 과태료는 물론이며 면허취소 처분과 함께 더 나아가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경주마뿐만 아니라 승용마, 소(청도소싸움)도 도핑검사소의 검사 대상이다.

남아프리카 원주민들이 흥분제로 사용한 술인 '돕(dop)'이 '도핑(Dopping)의 어원이다. 흥분제를 포함한 각종 약물을 통해 신체 능력을 부당하게 향상시키는 도핑은 흔히 올림픽 등 대회에 출전하는 운동선수의 약물검사를 떠오르게 한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도쿄 올림픽에서도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과 4강을 앞둔 브라질 선수가 도핑 위반으로 적발돼 출전이 제외됐다. 20세기 초 올림픽에서도 도핑이 발견됐다. 당시 도핑에 대한 제제가 없었기에 공공연히 사용되었지만,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한 선수가 흥분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하며 문제가 야기됐고 1968년부터 올림픽 도핑검사가 시작됐다.

경주마 도핑은 운동선수의 도핑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녔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말의 능력 향상을 위해 인육을 먹였다'라는 기록도 전해진다. 로마시대에는 '경주마에게 벌꿀주를 먹인 사람은 십자가형에 처한다'는 기록도 발견됐다. 1900년대 초 까지는 경주마에게 암암리에 마약을 투여했다고 한다. 경주마 마약투여는 경주 결과에 다분히 영향을 주었기에 공정성 문제로 불거졌다. 1911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에서 최초의 경주마 도핑검사가 시작됐다. 이는 올림픽 도핑검사보다 57년이나 앞선 것이다.

화학자들은 경주마의 타액을 분석해 마약과 흥분제 등의 약물을 검출했고, 이는 곧 전 유럽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검출을 피하기 위해 도핑방법 역시 계속 진화했고, 이에 대응하고자 1947년 미국에서 '국제경마화학자협회(AORC)'가 결성됐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26개국이 소속된 이 협회는 매년 100여명의 회원들이 모여 새로운 경주마 도핑약물과 수법들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6년 경주마 도핑검사를 시작했다. 1997년 한국마사회는 국제경마화학자협회(AORC) 주관 국제순련도시험에 합격한 이후 올해까지 25년 연속 합격하며 도핑검사 기술의 공신력을 이어가고 있다.

훈각마사회 도핑검사소는 연간 1만 건 이상의 경주마 약물검사를 수행해왔으며, 2015년부터 코로나 팬대믹 이전인 2020년까지 마카오 경마장의 도핑검사 역시 대행해왔다. 마카오 경마장은 경주마의 시료를 채취해 한국에 보내 마사회에서 이를 분석해 결과를 통보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실제 한국에서도 경주마 금지약물이 종종 검출된다. 하지만 대부분 양성 판정은 고의적이지 않은 원인으로 발생한다. 말관리사가 복용하던 탈모약의 호르몬성분이 소변을 통해 경주마에게 전달된 경우, 검사받지 않은 새로운 사료에서 이상성분이 검출된 경우, 사람이 붙인 파스가 경주마에 묻어 검출되는 등 다양한 경로로 검출되곤 한다. 이렇게 미미하고 간접적인 영향에도 도핑 검사에 노출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고의적 도핑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우디컵 우승 후 도핑검사로 우승 취소된 맥시멈시큐리티(사진=한국마사회 제공)

 

그렇지만 여전히 경주마 도핑은 계속 발전하며 공정성을 위협하고 있다. 작년 2월, 2천만 달러(한화 약 240억원)의 세계 최고상금이 걸린 '사우디컵'에서 경마계를 충격에 빠트린 도핑사건이 발생했다. 경주 우승으로 천만 달러의 주인공이 된 미국의 챔피언 경주마 '맥시멈 시큐리티'가 경주 후 신종 도핑약물 투유가 발견되며 우승이 취소된 것이다. 이로인해 경주마의 조교사는 징역 5년 선고, 범행과 연루된 27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한국마사회 이용덕 도핑검사소장은 "경마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점점 더 교묘해지는 도핑기법을 추격하고자 한국마사회는 국제협력을 통한 기술향상에 매진하고 있다."며 "전통적인 약물군, 금속, 호르몬, 대사조절제, 유전자요법 등 새로운 도핑 기법에 대한 대응방안도 선제적으로 구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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