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명’이라는 타이틀로 글을 쓰면서 언급했던 “금빛 폭군 오르페브르”가 오늘의 주인공임을 밝히며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10월 첫째 주 일요일에 프랑스 파리 롱샹(Longchamp) 경마장에서는 개선문상 레이스가 있었다. 100회를 맞이한 이번 대회는 행복하게도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이었던 지난해와 다르게 팬들이 가득한 곳에서 말(馬)들이 달릴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현역 최강 마로 불리는 5세 암마 쿠로노제네시스(Chrono Genesis)와 딥인펙트(Deep Impact) 그리고 키즈나(Kizuna)에 이어 3대에 걸친 출조의 역사를 기록한 4세 수마 딥본드(Deep Bond)의 두 마리가 팬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참가를 했었다.

결과를 먼저 얘기하면 참패였다. 최강 마는 7착, 엘리트 혈통 자마는 14착이라는 성적을 내면서 다시 한번 세계의 벽이 높다는 것을 실감한 일본 경마였다. 우승의 주인공은 경마 강국 영국도 프랑스도 아닌 독일의 4세 수마 토르카타타소(Torquator Tasso)가 인기 13번째라는 낮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파란을 일으키며 독일에 3번째 우승을 선사하는 애국심을 발휘했다.

필자는 이번 개선문상을 보면서 2착이라는 기록을 두 번이나 세웠던 일본이 나은 금빛 아이돌 호스 “오르페브르”가 얼마나 위대한 명마인지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리워졌다. 그래서 아낌없이 팬심을 발휘하여 이 멋진 레전드 호스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르페브르”의 탄생에는 매우 극적인 비하인드스토리가 있다. 모마인 오리엔탈아트(Oriental Art)가 종빈마 데뷔를 한 첫해에 스테이골드(Stay Gold)와의 사이에서 2009년 최우수 연도마였던 드림저니(Dream Journey)라는 빅히트 자마를 탄생시키면서 그녀의 가치는 치솟아 오르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 상대로 당시 세기의 호스로 불렸던 딥인펙트와의 교배가 성사되었는데, 3번에 걸쳐 진행된 교배는 안타깝게도 모두 성공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당황한 관리자들은 계획을 급변시켜 스테이골드와 교배를 실시하였고, 한 번에 성공을 거두면서 오리엔탈아트의 스테이골드를 향한 애절했던 사랑의 결실이 이루어졌다는 평을 듣게 되었다. 만약, 그때 딥인펙트와 성공했다면 전설의 명마 “오르페브르”를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MY 추억의 레전드 馬 오르페브르(Orfevre) (사진=Wikipedia)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2008년 경주마로서는 조금 늦은 5월에 태어난 “오르페브르”는 스태프들이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랐다고 한다. 검정빛 털색의 부마인 스테이골드가 항상 자신의 특징이 잘 나타난 자마를 산출하고 있어서 부마나 형인 드림저니와 닮았을 거라고만 생각했었던 것과는 달리 뽀송뽀송한 밤색 털에 극히 평균적인 크기의 마체(馬体)로 모마인 오리엔탈아트와 너무 닮아서 조금 놀라고 당황했었다고 한다. 그래도 드림저니의 동생이라는 타이틀에 조금의 기대감은 있었지만, 특별히 뛰어나다는 인상도 없었고, 모마를 닮았다는 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좋을지 몰랐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반신반의의 기대감으로 성장한 후 데뷔 첫 레이스에서 압승하며 엘리트 경주마의 존재감을 드러내나 싶었는데, 우승선을 밟은 후 그만 기수를 떨어뜨려 버리는 기질을 발휘하고 말았다. 그뿐만 아니라 위너즈서클에서는 너무 날뛰어서 기념 촬영을 하지 못하게 하는 해프닝을 만들어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였고 그로 인해 팬들에게 “금빛 폭군”이라는 사이다 같은 닉네임이 붙여지게 되는 화려한 경주마 신고식을 하게 되었다.

“오르페브르”의 미(美)친 존재감은 레이스를 거듭할수록 더욱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데뷔 첫 승 이후 우승이 없는 답답한 레이스를 거듭하는 2세 시절을 보내고 3세가 된 2011년에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클래식 3관을 차지하고 연도 마지막 경기인 아리마기념(有馬記念)에서도 고마(古馬)들을 상대로 압승을 하면서 차분하게 엘리트적인 레이스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4세가 되어 처음 출조한 경기에서는 진정한 폭군이 무엇인지를 각인시키는 엄청난 레이스를 펼치고 말았는데 그 결과는 우승도 아닌 2착이라는 기록이었다. 보통 레이스에서 우승마의 이름이나 기록이 거론되는 것이 상식인데, 이 경기만큼은 “오르페브르의 전설적 2착”이라는 기억이 팬들에게 더 많이 남았고 필자조차도 이를 계기로 엄청난 명마의 가치를 살피게 되었고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강한 말(馬)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던 그런 희대의 전설적인 레이스의 명칭은 “한신대상전(阪神大賞典)”이다. 3,000m의 장거리로 적절한 마간(馬間)의 간격 유지와 달리는 타협점을 잘 찾는 것이 관건으로써 기수와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한 레이스였다. 그래서 기승 파트너인 이케조에겐이치(池添謙一) 기수는 평소 유난히 앞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오르페브르”를 어떻게든 두세번째의 자리를 지키며 달리게끔 하기 위해 절제시키는데 온힘을 다했다고 한다. 그런데 전반 1,000m 통과가 슬로 페이스라는 것을 살핀 다른 말이 갑자기 빠르게 가동하였고, 기다렸다는 듯 “오르페브르”도 엄청난 가속을 시작하게 되었다. 결국, 선두에 나서게 되었고, 달리는 페이스 조절을 위해 이케조에 기수는 고삐를 급격히 잡아당겨야만 했는데 갑자기 제재를 당한 “오르페브르”는 실속을 하며 밖으로 뒤로 떨어지게 되었다. 이 정도면 경기가 끝난 셈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눈을 의심하게 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순간 안쪽에서 뛰는 다른 말을 발견한 “오르페브르”가 다시 엄청난 가속을 내기 시작했고 무리에 근접하면서 하나, 둘씩 제치면서 다른 말보다 무려 100m 정도의 손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코 차사의 2착으로 들어오면서 팬들을 경이롭게 만들어버렸다.

필자는 이 레이스를 보면서 타고난 서러브레드의 강점과 경주마로써는 좋지 않은 다소 과격한 성미를 들어낸 약점 그리고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스스로 자신의 매력을 보란 듯이 자랑한 “오르페브르 다운 레이스”를 펼쳤다고 생각을 하였고, 그런 그에게 매료되고 말았다.

이 전설적인 레이스 이후 필자와 같이 “오르페브르”에게 매료된 팬들은 폭군을 넘어 “금빛 괴물”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고, 그 칭호에 걸맞게 아시아 경마의 넘사벽인 개선문상을 2년 연속 2착을 하면서 팬들과 경마 관계자들에게 언젠가는 일본 경마가 개선문상을 제패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선사하였다.

“금빛 폭군”, “금빛 괴물” 듣기만 해도 전설이 느껴지는 명마라는 느낌이 들지만, 필자는 좋든 나쁘든 파괴적인 폭발력을 가진 유일한 능력마(馬) “오르페브르 답다”라는 것이 그 어떤 표현보다도 그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서 필자도 “나 답다”에 충실하며 부마가 된 “오르페브르”와 자마들의 팬으로서 응원을 지속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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