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일본에서는 새로운 부류의 젊은 경마팬들이 등장하면서 팬 폭이 확대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우마무스메(馬娘) 프리티더비라는 게임이 히트하면서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의 레전드 말(馬)들이 재조명 되었고 궁금증과 함께 흥미를 일으키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팬층이 늘어난 것이었다.

우마무스메를 직역하면 말딸, 말아가씨로 부를 수 있는데 카카오게임이 우마무스메 게임을 런칭하면서 우리나라 게임머들 사이에서도 일본 레전드 말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영상=0822mitsu(바로가기)

 

게임의 얘기를 하자면 길어지는 관계로 오늘 필자는 이 우마무스메 게임의 메인 캐릭터인 “사이런스스즈카”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당대 최고의 도주마 ” “침묵의 일요일의 주인공” “비운의 죽음”, 이 문장들은 스즈카를 대표하는 표현이다.

표현 그대로 당대 최고의 도주마가 일요일 가을 천황상(秋天皇賞)에서 최고속으로 질주하다가 다리가 분쇄 골절되어 예후 불량이라는 선고를 받고 안락사라는 비운의 죽음으로 이어진 지금도 팬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안타까운 사연의 스토리이다.

부마는 선데이사일런스(Sunday Silence), 모마는 와키아(Waki) 로 미국의 그 유명한 씨수마 미스와키(Miswaki)의 딸로 혈통이 전통적으로 단거리에 강한 빠른 스프린터의 가계(家系) 출신이다. 스즈카의 고향인 홋카이도 이나하라(稲原)목장의 오너와 하시다미쯔르(橋田満) 조교사가 스프린터계의 빠른 말 생산을 목적으로 와키아를 일본으로 유입해 계획적으로 탄생시킨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마명의 유래는 마주인 나가이케이지(永井啓弍)의 관명인 스즈카(鈴鹿)와 부마 선데이사이런스에서 침묵의 뜻을 가진 사이런스를 각각 따와 지었고 스즈카는 마주의 고향인 미에현(三重県)의 유명한 스즈카산맥을 뜻한다. 마명을 직역하면 침묵의 스즈카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왠지 이름이 비운의 운명을 더 슬프게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이런스즈카(사진=stringfixer 갈무리)

 

“사이런스스즈카”는 데뷔전부터 무수한 풍문을 일으켰다. 이유는 단 하나, 빠르다! 라는 거였다. 육성 시절부터 다른 말들에 비해 굉장히 빨랐고 특히 어렵다고 하는 말과 말 사이를 가로질러 앞지르는 훈련을 단번에 클리어하고 심지어 겨울에 눈(雪)이 배 높이까지 쌓인 곳에서의 훈련에서도 앞으로 쉽게 질주하는 등 차원이 다른 실력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소문이 꼬리를 물며 퍼져나갔고 단번에 3세 클래식 1순위의 우승 후보로 기대감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스즈카가 가진 천재적 소질에도 불구하고 레이스는 매번 참패라는 매우 힘든 결과였다. 주전 기수였던 우에무라히로유키(上村 洋行)와 스즈카와의 레이스 접점의 절충점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였다. 뛰어난 경주마의 소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력 발휘가 안되는 안타까운 현실 가운데 새로운 기수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바로 천재 기수 다케유타카(武豊)였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이 명 기수가 스즈카의 주전 기수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가 기승을 원하는 러브콜을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천재 기수가 최고속의 천재 말(馬)을 알아본 것이다.

이렇게 콤비가 되어 출주하는 레이스마다 압도적으로 선행하며 도주를 해서 그대로 우승하는 패턴으로 6연승이라는 기록으로 질주하였다. 매번 도주에서의 기록도 팬들의 굉장한 관심사였는데 무려 전반 1000M를 57초대로 달리면서 과연 오늘은 얼마만큼 벌리며 우승할 수 있을까에 초점이 집중되었다. 필자도 당시 레이스를 볼 때마다 믿어지지 않는 스즈카의 질주에 그저 놀랄 수 밖에 없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1998년 11월1일, 바로 침묵의 일요일이다. 6연승을 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스즈카의 마지막 레이스가 된 날이다.

이날의 레이스를 설명하자면 단승 지지율이 무려 68%가 넘는 인기로 레이스가 시작되었고 전반 1000M를 57초4라는 엄청난 도주 기록으로 통과하면서 관객들의 함성은 더욱 커졌다. 스즈카가 얼마만큼 거리를 벌릴 수 있을까에 초점이 주어지는 가운데 4코너를 향해 달리는 순간 갑자기 스즈카가 실속을 하면서 경마장 전체가 무거운 분위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스즈카는 왼쪽 앞다리를 절기 시작했고 아픔을 참으며 바깥쪽으로 절룩절룩하며 기어갔다. 다케유타카 기수도 등에서 내려와 스즈카를 움직이지 못하게 잡았고 경마장은 물론이고 레이스 중계에서도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앰블런스까지 출동되어 진찰한 결과 수근분쇄골절에 예후불량이라는 참혹한 진단 결과를 발표했다. 살아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결과로 선택은 하나 “안락사”였다. 이렇게 해서 4세의 짧은 위대한 천재 말의 마생이 끝나버렸다.

“사이런스스즈카” 가 세상을 떠난 후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빠졌고 마주에게는 팬들이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유타카 기수는 악몽을 꾼것 같다는 인터뷰를 남기며 그날 일생일대의 제일 많은 술을 마셨다고 한다.

보통 말들이 레이스 도중 트러블이 일어나면 기수들이 낙마를 해 다치는 경향이 일반적인데 그날 스즈카는 끝까지 떨어트리지 않고 기수를 지키려고 했다. 그렇게 빠른 스피드에 낙마했다면 거의 죽음에 가까운 수준이었을 거라고 유타카 기수는 지금도 인터뷰에서 얘기를 하고 있다. 사실 필자도 그날의 레이스 영상을 볼 때마다 뭔가 찡하고 해서 다리를 저는 장면은 제대로 쳐다보지를 못하고 있다.

“사이런스스즈카”는 떠났지만 지금도 일본에서 역사상 최강마는 어떤 말(馬)일까? 라는 화제가 대두되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다는 심보리루돌프(Symboli Rudolf), 나리타브라이언(Narita Brian), 티엠오페라오(T.M. Opera O), 딥임펙트(Deep Impact) 등과 비교해도 제일 강한 말이었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평을 하고 있다.

주전 기수를 자처했던 다케유타카도 본인에게 가장 이상적인 서러브레이드는 “사이런스스즈카” 라고 얘기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스즈카 대한 평은 계속되고 있는데 “상식을 넘겨버린 말”, “팬을 매료시킨 말”,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말”, “ 그 어떤 말보다 월등한 말”, “한발로 달려도 1등할 말” 등등 만약 살아있었다면 이라는 If의 얘깃거리를 남겼다. 돌아오는 6월26일 일요일은 스즈카가 1998년 우승을 했던 다카라즈카 기념 그랑프리 레이스가 있는 날이다. 경마장에는 많은 경마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올해도 팬 투표에서 선발된 18마리의 일본 최고의 말들이 우승을 향해 질주를 한다.

필자는 그날의 사이런스스즈카의 달리는 모습을 생각하며 올해도 관람을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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