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는 마칠인삼(馬七人三, 말의 능력 70%. 기수의 기승술 30%)의 스포츠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을 거꾸로 정의하며 경주로를 질주하는 기수가 딱 한명 있었다. ‘국민기수’ 박태종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박태종 기수를 뛰어넘는 또 한명의 기수가 탄생했다. 우리나라 경마 역사가 새롭게 창조되는 순간이었다. ‘어린왕자’ 문세영 기수가 그 주인공이다. 문세영 기수는 지난 6일(토) 11경주에서 ‘머신건’(마주 이종원, 조교사 최혜식)에 기승해 우승을 차지하면서 연간 최다승 기록을 경신했다. 문세영 기수는 이전까지 박태종 기수가 2006년 수립했던 연간 최다승인 120승에 3승만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2,7,9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타이기록을 세운데 이어 11경주에서 드디어 121승으로 한국경마사에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다. 물론 문 기수는 이에 그치지 않고 7일(일) 계속되는 새역사 창조에 도전해 2승을 추가하면서 연간 최다승을 123승으로 늘려 놓았다. 올해 6일의 경마일이 남아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문 기수의 최다승 기록은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불과 1주전까지만해도 연간 최다기승·연간 최다승까지 박태종 기수가 세워놓은 금자탑은 다른 기수들이 쉽사리 근접하지 못할 성역(?)으로까지 여겨졌다. 하지만 문세영 기수가 한국경마의 특성상 앞으로 누구도 깨뜨리기 어렵다는 연간 120승을 넘어서면서 경마팬의 관심은 새기록이 몇 승까지 이어질까에 집중되고 있다. 2001년 20기로 경주로에 데뷔 한 문세영 기수는 데뷔 당시부터 ‘될성부른 나무’로 평가되며 주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케이스였다.

사실 문세영 기수는 후보생시절부터 주목을 받았다. 당시 10조의 김정진 조교사가 그의 우수한 자질을 보고 주위사람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새벽훈련을 관찰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는데, 후보생으로 10조 마필을 훈련했던 것이 입상으로 이어지며 높은 배당을 선사했고, 그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경마공원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지금은 기승만해도 인기를 모으는 유명세를 타지만 문기수의 데뷔 첫 날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화장실을 너무 들락거려 전검량시 체중이 모자라 패드의 무게를 200g이나 더 올리고 기승해야했던 아픈 기억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문세영 기수를 보는 경마팬은 그 어떤 노련한 고참 기수에 못지 않은 경주에서의 노련미와 패기 넘치는 경주전개에 매료되고 만다. 사실 문세영 기수는 운동선수로는 어려운 시기를 겪어야 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태권도를 했지만, 막상 기수로서 필요로한 운동근육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면서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을 해야 했다. 또한 어려운 신인시절을 지내고 최단기간 수습기수 해제, 최단기간 100승 돌파 등 각종 기록을 깨며 막강한(?) 신인으로 거듭났지만, 운동기수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군입대로 인해 공백을 가져야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문기수는 군제대후 얼마안돼 낙마부상으로 인해 6개월여의 기나긴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그러나 크나큰 시련도 문세영 기수의 경마에 대한 열정은 꺾지 못했다. 지옥과 같다고 회상하는 재활의 기간을 넘긴 문기수는 2007년 68승을 거두면서 자신의 연간 최다승 기록과 함께 연간 다승 2위를 기록하며 경마팬 성원에 십분 응답을 하였고, 올해에는 드디어 존경해 마지않는 박태종 선배의 연간 최다승 기록을 경신하기에 이른 것이다.

문세영 기수의 거침없는 질주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서슬퍼런 규제로 인해 위기에 처한 한국경마 희망의 빛이다. 박태종 기수를 넘어 한국경마 새역사 창조의 거침없는 질주를 하고 있는 문세영 기수에게 모든 경마팬, 아니 모든 국민과 함께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작 성 자 : 김문영 kmyoung@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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