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장외발매소
지금까지 알아본 장외 발매소는 대부분의 경마 시행국에서 이미 정착단계를 넘어 팬들과 함께 호흡하는 문화 창구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해외의 장외발매소를 살펴보기에 앞서 혹자는 너무나도 상이한 해외의 경마와 우리의 경마를 비교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백 년의 역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체계화된 외국의 경마시스템과 달리 우리나라는 수용에 있어 시간도 너무나 짧았거니와 방식에 있어서도 주체적이지 못했던 탓에 아직도 미숙하고 잘못 자리 잡은 부분이 너무나 많다.
이 글은 결코 ‘외국은 이정도인데 왜 우리나라는 받아들이지 못 하는가’를 지적하고자 함이 아니다. ‘선례’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몇 백 년에 걸쳐 이뤄낸 산업을 단 몇 년 만에 따라잡는다는 생각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고 우리 역시 몇 백 년이 걸려야할 필요는 없다. 먼저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좀 더 빠른 길 혹은 똑바로 걸어가는 방법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이 ‘선례’라는 것이다.
가령, 1970년 이전의 미국은 지금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불법 도박과 사설 경마가 판을 쳤다. 당시 경주로를 벗어난 베팅, 즉 장외 발매가 가능한 곳은 오직 네바다 주 뿐이었다. 1970년을 기점으로 뉴욕에서부터 허용된 장외발매소는 베팅에 대한 인식 재고와 함께 불법도박의 획기적인 감소를 가져오며 북미 전반으로 규모를 확대해 나가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됐다.
이러한 선례 제시는 장외발매소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도 새로운 시각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경마 시행국 중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장외발매소의 확대로 목숨을 건 한탕주의의 개념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문화로 탈바꿈했음은 물론, 사회로 환원되는 막대한 세수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혜택을 얻고 있다. 프랑스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마권을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장외 베팅이 보편화돼있고, 구매상한선 조차 주어져있지 않지만 베팅 중독자는 100명 중 1.3명에 불과하다. 100명 중 7.2명인 우리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물론 중독률은 국가 경제와 복지 여건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해 다가가야 할 부분이지만 무작정 덮어놓고 햇빛을 가리면 오히려 습해지고 부패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듯 다른 홍콩 경마와 장외발매소
홍콩 경마는 지리적인 요소나 수용과정에 있어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 아편전쟁에서 패한 중국으로부터 조차권을 획득한 영국은 1845년 영국령 홍콩에서 첫 경마를 시행하게 된다. 영국 경마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홍콩 경마는 ‘영국자키클럽’을 모방한 ‘홍콩자키클럽’을 설립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경마 시행 및 마권발행, 수익금 사회 환원 등 관련 업무를 모두 관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축구 복권과 마크식 스로터리(일종의 로또) 사업까지 하고 있다. 체계적인 시스템과 사회 환원을 기반으로 자리 잡은 홍콩의 경마는 베팅을 좋아하는 홍콩 국민의 특성과 맞물리며 빠른 성장을 이뤄냈다.
현재 홍콩의 장외 발매소는 총 126개로 우리나라의 4배에 달한다. 홍콩의 면적이 서울의 1.8배라는 점을 생각하면 장외발매소의 비중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총매출에서 장외발매소에서의 매출비중 역시 92%에 육박한다.
현재는 미국과 맞먹는 매출 수준을 기록하고 있으나 장외발매소가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경마가 시행된 후 오랫동안 마권을 살 수 있는 곳은 경마장 내의 발매창구 뿐이었다. 이러한 시스템은 베팅에 열광적인 홍콩 사람들의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었고, 사설 북메이커들이 이러한 상황을 포착해 불법 베팅을 도시 내에 퍼뜨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조직적인 범죄 집단으로 구성돼있어 매번 경찰의 수사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갔고 불법 베팅은 전염병처럼 홍콩을 잠식해갔다.
1958년 무렵,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홍콩자키클럽은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장외발매소가 처음으로 논의됐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립과 마찬가지로 찬반의 의견이 날카롭게 부딪혀 1970년대 초반까지 지리멸렬한 논쟁이 계속됐다.
결국 1973년 11월 29일, 합법적 장외 베팅이 법으로 제정되며 다음해인 1974년 4월 20일, 홍콩 사람들은 처음으로 장외에서 베팅을 하게 됐다. 당시 장외발매소는 단 6개에 불과했으나 그해 홍콩 경마 총매출 중 60%를 책임지며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다. 합법적이고 편리한 장외발매소의 베팅 서비스는 점차적으로 몸집을 불려가며 불법 베팅 업체들과 맞섰으며, 음지에 갇혀 잘못된 베팅에 빠져있던 사람들을 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홍콩의 장외발매소는 경마는 물론 축구 베팅 코너까지 갖춘 널찍한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경마가 없는 날에는 지역 사회 환원을 위해 세미나, 회의, 강의 혹은 자선 쇼 등이 진행돼 주민들을 위한 문화센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홍콩 완차이 지역에는 유치원과 한 건물을 쓰는 장외발매소도 있다. 테마파크를 이용하고,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시민’들이 곧 경마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회적 인정이다.
홍콩 사람들에게 경마는 생활의 일부다. 일하는 중에도 라디오 경마 중계를 들으며 마권을 맞춰보는 것이 평범한 홍콩 소시민의 일상이다. 바쁘게 사는 홍콩인들은 경마장에 가기보다는 가까운 가게에서 마권을 사서 짬이 날 때 마번을 맞춰보며 망중한을 즐긴다.

-일상 속, 신문 사듯 간편한 유럽의 마권 구매
경마의 종주국인 영국에서는 북메이커(bookmaker)라는 마권업자들이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이들은 패리뮤추얼 방식을 쓰는 토트(TOTE)사와 마권 발매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이들을 합친 영국 전역의 장외발매소는 무려 9,000여 개에 달한다. 장외매출 비중은 99%에 이른다.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프랑스는 전체 인구의 10% 가량인 약 600만 명이 경마를 즐기는 중이다. 북메이커가 금지돼있기 때문에 PMU(Pari mutuel urbain) 라는 마권발매 업체 즉 마권 장외발매공사가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외발매소의 규모는 프랑스 내에만 약 1만 2200개가 설치돼 있으며 2010년부터는 인터넷을 통해 온라인 마권을 발매함은 물론, 온라인 포커와 스포츠 베팅까지 함께하고 있다. 2013년 PMU의 총 매출액은 104억 유로(한화 14조 5천억 원)로 이중 96억 유로(13조 3천만 원)가 경마에서 온 매출이다.
프랑스 경마 전용 TV인 에퀴디아 채널은 매달 3천 4백만 명의 누적 시청자를 보유중이며, 시청자는 실시간으로 방송을 보며 베팅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다변화된 베팅 시스템을 마련하며 프랑스 역시 골머리를 앓던 불법 사설 경마가 극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공통점은 굳이 경마장을 찾아가지 않아도 신문이나 담배를 사는 것처럼 어디서나 마권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편의점이든 로또 판매점이든 손쉽게 로또를 구매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당첨 확률이 극히 낮음에도 매주 꼬박꼬박 로또를 사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절대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일확천금을 노린다고 ‘-꾼’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매도하지 않는다. 로또를 사는 사람들 역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작은 돈으로 한 주의 기대감을 얻는 것, 척박한 삶 속에서의 작은 두근거림, 그것이 베팅의 묘미다.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마권을 구매하는 것은 개인의 소소한 유희임을 인정한다. 이것에 대해 폄훼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상당히 무례한 행위로 여긴다. 무언가 지적을 하게 될 경우 손가락으로 잘못된 부분을 가리킬 뿐, 손바닥 전체로 싸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테다.

-미국의 효자, 장외발매소
미국의 경마는 주별로 시행체계가 다르고 장외발매소에 대한 공식 통계도 없다. 일반적으로 각주의 주 경주위원회에서 경마규정을 두고 경마를 시행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5000∼8000개의 장외발매소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장외발매소는 OTB(Off-Track Betting)로 대표되는데 경마 시행처가 소유 및 운영하는 OTB와 시행처가 아닌 개인 및 사업체가 운영하는 OTB로 구분할 수 있다. 애리조나 피닉스에 있는 Turf Paradise 경마장의 경우 2001년 이후 본장의 매출이 정체되자 장외발매소를 증설하여 매출을 보완하였고, 뉴욕시는 3개의 Teletheater(레스토랑식 발매소)를 보유하여 식사와 경마관람 및 베팅을 함께 제공한다. 특히 텔레씨에터는 이색 테마 음식점으로 가족단위와 단체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 각광받는 사업으로 꼽히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특히 장외발매소에서 납부하는 대규모의 세금에 대해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자치권을 가진 각 주는 살림을 끌어갈 세수확보가 정책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최근 경제 불황을 맞으며 대부분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나 경마를 포함한 카지노 등에서 납부하는 세금으로 위기를 넘겨가는 중이다. 재정 적자의 늪에 빠진 주에서는 장외발매소를 확대하는 방안 등을 이용해 세수를 확보, 공적인 사업비용으로 사용하곤 한다. 수익 대부분을 사회로 환원하는 장외발매소는 미국 사람들에게는 효자와 같은 기관인 것이다.


-도심지역에 자리 잡은 사교의 장(場) 호주 장외발매소
경주마 생산이 국가적 기간산업으로 자리잡은 호주는 영국식의 클럽제 경마시행 형태로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637개의 경마시행체(클럽)와 379개의 경마장이 전국에 산재하고 있으며, 주(洲)마다 주간(洲幹) 클럽이 있고, 이 주간클럽의 대표자 회의인 ARB(Australian Racing Board)가 있다.
호주에선 각 주정부가 설립·운영하는 TAB(Totalizator Agency Board) 장외발매소에서 마권발매를 총괄하여 담당하고 있다. TAB는 한 때 정부 소유의 산하기관이었으나, 민영화를 단행해 현재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으로 민영화 당시 계약에 의해 수익금의 일정부분을 경마 주간클럽에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호주의 경마상금 원천은 대부분이 TAB의 배당금이다. TAB는 도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주이용 고객도 젊은층에서 노년층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TAB는 일반적으로 클럽 내에 위치해 있으며, 클럽 내에 베팅시설과 다양한 문화 및 레저시설이 함께 있어 TAB는 지역 주민들의 문화 공간 및 사교 장소로 이용된다. 또한 스포츠 라운지에는 경기 관람시설, 포켓볼 및 TAB 등의 시설이 구비되어 있으며 주 수입원인 포커, 슬롯머신과 키노 및 빙고시설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호주의 TAB는 지역적으로 시드니 중심의 NSW(New South Wales) TAB와 멜버른 중심의 VIC(Visctoria) TAB로 구분되며, 경기종목으로는 경마, 경견 등 경주경기 중심의 레이싱 TAB와 축구, 골프, 테니스 등 일반 스포츠 중심의 TAB 스포츠벳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호주 장외발매소의 특징은 도심지역에 위치해 연중 무휴로 운영되고 있어 경마 및 스포츠 베팅 팬들의 접근이 용이하지만 베팅 계좌를 개설해야만 참가가 가능케 하고 있다.

작 성 자 : 조지영 llspongell@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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