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챔프`의 한장면
그동안 특집을 통해 수차례 이야기해왔던 부분이 문화 콘텐츠 쪽으로서의 경마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해외의 사례를 들 수밖에 없었다. 좀처럼 제대로 된 국내의 사례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경마”라는 아이템은 우리나라 문화 산업 분야에서 그야말로 블루오션이라는 셈이다. 최근 들어 ‘더비임팩트’라는 모바일 게임을 비롯해 네이버 웹툰 ‘곽백수의 신 트라우馬’ 등 새로운 시도들이 보이긴 하나 아직까지는 극히 미진한 수준이다. 이는 아직도 편협한 선입견의 탓도 있지만, 무조건 대중을 탓할 수도 없는 문제다. 다가서는 방법부터가 거부감이 든다면 받아들이는 입장 역시 부정적인 게 당연한 일이 아닐까.
몇 가지 예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경마가 문화산업 방면에서 걸어 나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보도록 하자.

-문학작품
소설가에게 경마는 실로 군침 도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긴박한 경주전개와 다양한 인간군상의 끊임없는 신경전은 소설이 원하는 캐릭터와 재미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를 가장 잘 살린 이가 영국의 기수 출신 소설가 딕 프랜시스다. 딕 프랜시스는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살려 무려 40여 편에 달하는 경마 소설을 남겼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흥분》,《경마장 살인사건》,《언더 오더스》등으로 경마장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범죄 등을 파헤치는 스릴러, 추리 장르가 주를 이룬다. 외부인은 알기 어려운 경마 전문지식이 대중적 범죄 스릴러 장르와 맞물리며 해외는 물론 국내에도 마니아 층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경마 전문 작가가 있다. 《마방여자》와 《경마장의 말꼬리는 잡히지 않는다》외 다수의 경마 소설을 쓴 윤용호 작가. 경마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경마소설의 흥행 성적이 저조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놀랍게도 《마방여자》의 경우 2012년 E-book 종합 판매순위 1위를 달성한 바 있다. 경마장 내부의 생활상을 섬세하게 다루어내면서도 우리네 정서에 맞는 사랑과 암투 등을 적절히 엮어낸 점이 성공의 요인으로 꼽힌다.
활자의 시대는 갔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선이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을 뿐 텍스트는 꾸준히 유통되고 쓰고 읽히고 있다. 어찌보면 마니아 층이 존속 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럴때일 수록 경마를 다룬 소설이 출시 됐을 때의 리스크는 훨씬 줄어든다. 독서를 즐기는 독자층이 원하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삶, 새로운 정보,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다. 다시 말해 소재의 참신함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어떠한 소재와 장소에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아니 오히려 그것을 원하고 있다. 《마방여자》의 성공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재밌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작정 “경마를 알려줘야지”,“경마 이미지를 환기시켜야지”라는 생각을 갖고 쓰는 것은 안 쓰는 것만 못하다. 딕 프랜시스의 소설이 밝고 명랑해서 잘 팔린 것이 아니다. 윤용호 작가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뒤에 언급할 영화 파트에서 또한번 이야기하겠지만 어두운 소재를 갖고도 재밌게 쓰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물론,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만화, 웹툰
만화와 관련된 일본 사례는 지난 특집 때 이미 언급한 바가 있기에 국내에 출시된 경마 만화를 몇 개 소개하며 이야기 하겠다. 사실, 국내에서는 경마 만화를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정부가 앞장서 만화·게임 산업 죽이기에 나서고 있는 터라 경마 만화는 고사하고 만화 시장 자체가 발붙일 틈이 이제는 남아있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 만화가 호황하던 시절 만화계의 거장 허영만 만화가가 그린 《오늘은 마요일》과 배금택 만화가의 《종마부인》,《0시의 굽 소리》가 국내 대표적인 경마 만화로 꼽힌다. 특히 배금택 만화가는 본인 스스로 경마를 매우 좋아해서 위에서 언급한 만화 외에도 경마 베팅 지침서를 만화로 연재하기도 했다.
좁아지는 만화 시장의 대안책은 바로 웹툰이다. 만화책과 소설책을 읽던 대부분의 계층이 대부분 웹툰 계로 옮겨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벼운 일상 웹툰이 인기를 끄는 추세이나 심오한 세계관과 괄목할만한 그림체를 앞세운 그야말로 작품성 있는 웹툰들이 대거 출현하며 점차적으로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웹툰이 쏟아지고 있지만 경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웹툰은 몇 없다. 09년도에 마사회에서 기획한 “열 가지 묻지馬 이야기”라는 웹툰이 이벤트 형식으로 연재된 바 있고 최근에도 홍보 웹툰 형식으로 렛츠런 파크를 홍보하는 “곽백수의 신 트라우馬”가 연재 중이다. 하지만 초반 홍보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거 도박판 홍보하는 웹툰이다”는 악의성 리플이 대거 달렸고, 다음 회부터 이 웹툰은 길을 잃은 듯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지 못하고 방황 중이다.
우리나라와 외국의 경마 만화에서 경마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방향은 매우 판이하다. 이는 소재 선정 미스와 여건에 반응하는 태도의 차이다. 가령 일본이 경주와 말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인간은 화자의 역할에 충실한 반면, 우리나라는 철저히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되 배경만 경마를 끌고 들어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배금택 작품의 경우 경주를 매우 상세하게 다루고 있으나 지나치게 베팅에 치중된 점과 독자층을 넓게 아우르지 못하는 성인만화로서의 한계가 있다. 아직 도입단계인 웹툰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경마가 가진 이미지의 역동성은 시각적으로 충분히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 또한 그동안 쌓인 경마계의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다. 소설과 영화에 비해 어린 고객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선입견에서도 일정 부분 자유로울 수 있으나, 이번 트라우馬 사건처럼 비난이 폭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대처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여기에서 “욕 먹기 싫어”하고 이야기를 빙빙 돌려버리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을 뿐이다. 때문에 지금과 같은 에피소드 형 웹툰 보다는 스토리를 지닌 웹툰 방식으로 밀고 나가되, 이야기가 마무리 될 때까지는 눈과 귀를 닫고 그야말로 독불장군식 밀어붙이기가 필요하다. 당당함, 속된 말로 작가로서의 곤조가 필요하다. 사실 리스크만큼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가 웹툰이라고 본다. 최근 옥외 광고를 비롯한 홍보에서 웹툰을 0순위 수단으로 생각할 만큼 대한민국 문화 분야에서 입지를 다진 장르다.

-영화
최근 《명량》이 우리나라 최단기간 1000만 관객 돌파의 신기록을 세웠다. 허술한 스토리와 허접스러운 인물관계 등 허점이 너무나 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순신(과 최민식)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이것이 영웅 영화의 힘이다. 너무나 힘이 들 때 우리는 영웅의 출현을 기대한다. 희망의 신호탄이 되어주는 존재에게 열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명량 열풍과 맞먹는 미국의 영화가 바로 《씨비스킷》이다. 경제 대공황으로 하루하루가 힘들던 시절 명마는 아니었지만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했던 경주마가 바로 ‘씨비스킷’이다. 이 경주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씨비스킷》은 미국 박스오피스 추산으로 1억 2천만 불 이상을 벌어들였다. 감동도 감동이거니와 자칫 뻔해질 수 있는 이야기에 정치와 인생, 경마라는 세 가지 테마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다양한 관객층과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렇다면 국내 경마 영화를 살펴보자. 사실 나오는 족족 실패를 거듭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이 《각설탕》이다. 말과 소녀의 끈끈한 우정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 내내 포커스를 말과 경주에 맞춰 세심하게 다룬 덕분에 여러 면으로 완급조절이 잘 이루어진 영화다. 더 큰 성공을 기대할 수도 있는 영화였지만 당시 천만 관객의 돌풍을 일으켰던 ‘괴물’과 맞붙으며 애석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뒤이은 야심작 《그랑프리》는 거물급 스타 김태희를 내세우며 설욕을 노렸으나 17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참패했고 마지막 도전장이 된 《챔프》는 국내 경주마 ‘루나’의 이야기를 다뤘으나 애석하게도 53만 명의 관객을 유치하는 데에 그치고 말았다. 전형적인 역경극복의 뻔한 스토리라인이 패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경마 영화가 이토록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결국 쌍방과실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제작자는 국내의 경마 인식을 환기하는 데에 지나치게 얽매여있다. 어떻게든 밝고 건전한 이미지로 보이고자 휴머니즘적 요소를 덕지덕지 칠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만 줄 뿐이다. 까다로운 요즘의 관객에게는 오히려 정공법이 필요한 시점일 수도 있다. 포장보다는 시선을 트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말이란 존재가 얼마나 순하고 깨끗한 존재인가. 우리가 《워낭소리》를 보며 노부부의 삶보다 소 자체에 감동을 받았듯, 화려한 요리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던 《식객》에서 결국 마지막에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소의 눈물에 함께 울었듯, 경마의 소중한 자산인 경주마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것으로도 그토록 원하던 순수한 이미지를 환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가장 많이 보였던 작품이 《챔프》였으나 그 보여주는 방식이 다소 과하게 작위적이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찬가지로 관객 역시 이제는 다양한 장르에 눈을 떠야 할 때다. 새로운 장르를 아무리 가져다 놓아도 잘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면 우선은 쳐다보려조차 않는 아집을 버려야 할 때이다. 좋은 영화를 두고도 ‘잘 모르는 거니까’하며 고개를 돌리고, 익숙하고 가벼워 보이는 영화를 선택하고서는 ‘아, 돈 버렸네.’ 하는 반복을 끊어야 하지 않을까. 초반엔 참신했지만 갈수록 억지와 자극적인 요소 채우기에 급급한 국내 조폭 영화들이 거듭해 속편을 내놓는 것도 결국 여기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작 성 자 : 조지영 llspongell@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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