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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협군의 책과 여행 이야기]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승, 도산 안창호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만나다
2019. 03. 28 by 권용 전문기자

2019년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신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만나고 왔다. 진작 다녀오자 생각했었는데, 미루고 미루다 이제서야 겨우 찾아뵙게 되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필자 역시 안창호 선생님에 대해 많은 걸 알지 못했다. 역사에 관심이 많고 나름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이고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 늦게나마 이곳을 찾아올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하고, 이번 기회에 더 공부하고 많은 분들께 알려드리고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도산공원, 안창호 선생님 내외분의 묘소, 그리고 안창호 기념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강남 한복판에 선생님의 묘소와 기념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도산공원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애국정신, 민중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정신을 살리고자 지금의 모습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도산공원 내부에는 선생님 내외분의 묘소, 동상, 말씀이 적힌 비석, 조형물, 기념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선생님의 뜻과 정신을 기리는 한편, 도시 한복판에서 많은 시민들이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원으로서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공원에 들어서고 기념관 벽에 적혀 있는 글귀가 시작부터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마치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선생님께서 엄하게 꾸짖어주는 기분이 든다.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그대가 먼저 훌륭한 인격이 되라.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이 될 생각을 아니하는가?"

도산공원에 들어가면 바로 우측에 기념관이 있고, 멀리 정면으로 선생님 내외분의 묘소가 보인다. 기념관에 들어가기 전 가볍게 공원을 돌아보기로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은 선생님의 정신을 기리는 한편, 서울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일상의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다. 많은 민중들을 깨우치고 가르치고자 하셨던 선생님의 마음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선생님 역시 살아생전에 가까운 곳에서 많은 민중들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하셨을 것이다.

도산 기상, 우리 민족을 세계사 무대에 우뚝 솟은 민주국가로 만들기 위해 국민들에게 이야기하신 5대 정신이 있다. 자주 정신, 진리 정신, 협동 정신, 개조 정신, 애국 정신.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나 스스로 선생님이 말씀하신 정신들을 충실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 보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온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조금씩 올라왔다. 이제는 독립을 넘어서 세계 속 강대국으로 살아가는 후손들을 보고,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하실까?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도산공원을 거니는 모습, 선생님의 묘소 주변 빌딩 숲을 보시며 조금이나마 뿌듯한 마음을 가지시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도산공원 자체가 그리 크지는 않다. 가족, 친구, 때로는 연인끼리 거닐기 매우 좋은 곳이다. 날이 풀리고 봄, 가을에는 소박하지만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보일 듯싶다. 공원을 돌아보고 기념관으로 들어가 본다. 나라의 근대화와 독립을 위해 60평생을 바친 민족의 지도자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기념관. 선생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무실, 역행, 충의, 용감의 정신을 본받고자 안창호 기념관을 설립했다고 한다.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해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기념관에 들어서는 순간 보이는 김구, 이탁 선생님과 찍은 사진 그리고 안창호 선생님의 글귀가 보인다. 늦었지만 이곳에 잘 왔다고 반겨주시는 듯한 기분도 든다. 한편으로는 너는 지금 너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되물어주시는 느낌이다. 조국의 독립과 후손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이룩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너 자신이 할 일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시는 듯싶었다.

1978년부터 1938년 서거하실 때까지 선생님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조선에서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미국, 러시아, 중국, 필리핀, 멕시코 등을 쉴 새 없이 돌아다니셨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는 도산 안창호의 날을 결의하였고, 미국 서부에는 도산 안창호 우체국이 있다. 강남구와 자매도시를 맺고 있는 리버사이드에도 한인들이 직접 세운 선생님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봄을 맞이하는 4월, 많은 분들이 이곳을 찾아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흔적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것들을 한 번쯤 가슴에 새겨보기를 바란다.

맑은 햇살이 비치는 대한민국의 하늘, 도산 안창호 선생님뿐만 아니라 많은 독립운동가들 역시 똑같은 햇빛과 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하늘과 햇빛마저 빼앗긴 나라의 유산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서울을 비추는 맑은 햇빛과 하늘은 그대로다. 그렇지만 많은 것이 변하였다. 한반도를 휩쓸던 일본의 광기는 사라졌고, 이 땅에는 그토록 바라던 민주국가가 수립되었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더없이 건강하고 발전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날 안창호 선생님의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느끼며, 이 모든 행복들이 어디서 찾아온 것인가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사랑하는 국가 대한민국을 위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많은 분들이 지금의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고통받으며 헌신하셨다. 지금 나의 삶은 그분들의 피와 살로 이루어졌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나는 지금까지 너무 안일한 삶을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채찍질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정답은 찾을 수 없으리라. 정답은 각자에게 달려있다. 지금 우리가 총칼을 들고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싸울 수는 없다. 다만 안창호 선생님이 사소한 농장일마저 최선을 다하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스스로와 대한민국을 위해 할 수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원하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역할일 것이다.

도산공원 입구의 모습.
도산의 말씀이 적혀 있는 비석.
1973년 11월 10일. 서울시는 마우리 공동묘지에 모셔졌던 도산 선생님의 묘소를 이곳에 이장해왔다. 이때 미국 LA에 있던 부인 이혜련 여사의 유해도 함께 옮겨와 합장했다. 뿐만 아니라 청담동에서 논현동에 이르는 도산대로도 태어났다. 선생님이 대한민국을 위해 보여준 희생, 가치가 크기에 합당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도산공원 내부에 자리잡은 선생님의 동상. 너무 늦게 찾아오게 되었다. 그저 선생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동상인데, 전하고자 하시는 정신들이 가슴 구석구석 스며들어오는 것 같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주인공인 뮤지컬 공연
도산 안창호 글짓기 공모전도 열리고 있다.
기념관 전시실로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모습. 사진 왼쪽부터 김구 선생님, 안창호 선생님, 이탁 선생님이 나란히 앉아계신다.
안창호 기념관 내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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