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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 스마트 소설]

“그래 써라. 써야 낫는다.” 예수가 자신의 행적에 주석을 달았던가. 부처가 가는 길을 설명하며 갔던가.

[박인 스마트 소설] 호모 스크리벤스

2019. 07. 05 by 박인 작가

그는 쓰는 인간이다. 쓰는 인간이지만, 부르는 대로 받아쓰거나 남의 것을 베껴 쓰는 인간이 절대 아니다. 그는 소설을 쓴다. 그는 어려운 소설을 쉽게 쓰는 인간이 아니다. 작가에게 쉬운 소설은 없다. 누가 단편 하나를 하룻밤에 썼다는 거짓말을 풀면 갑자기 감자를 먹이고 싶어진다. 소설은 삶을 통찰하는 창이라고 믿는 그는 소설을 기록한다. 쉬운 소설은 애초에 없다고 믿기에 어렵게 쓴다.

▲쓰는 인간에게 쓰는 일은 곧 숨을 쉬는 일이며 길을 걷는 일이다. ⓒ박인
▲쓰는 인간에게 쓰는 일은 곧 숨을 쉬는 일이며 길을 걷는 일이다. ⓒ박인

그의 두터운 뿔테 안경에는 사실주의자의 시선이 삶의 창을 넘어 꿈틀거린다. 구도자적인 자세로 쓴 소설에는 철학적 사고와 끈질긴 집념이 있다. 그는 소설을 쓰기 전에 철학책을 읽는다. 이 땅에 사는 보통 인간들에게 결핍된 부분이다. 그는 소설과 사투를 벌인다. 쓰고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쓰기를 밥 먹듯이 해치운다. 쓰는 일을 위해 먹고 자고 마신다. 소설 쓰는 일을 최우선에 두기에 먹고 사는 일이 거추장스러운 경지에 이른 것이다.

초점을 소설에만 둘 수 없는 나는 지금도 입에 풀칠하며 먹고사는 일이 중한 일이다. 나는 일 중독증에 빠져있었다. 어느 날, 심신이 탈진 상태인 나는 서울 어느 창작촌에 머무는 그를 찾았다. 돈벌이 때문에 내 몸의 정기는 고갈되었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다. 폐병이 찾아오고 밤마다 몸은 불덩이가 되었다. 상처투성이 마음을 달래려고 술을 마셨다. 술이 술을 부르고 목마름은 이어졌다. 나는 드디어 불치병에 걸린 것이다. 나의 증세를 살피니 돈도 사랑도 치유할 수 없어 보였다. 신내림을 받아야 낫는 무병처럼 소설병에 걸린 것이었다. 한 줄기 빛을 따라 나는 쓰는 인간에게 갔다.

“나야 나, 인이야.”
“오, 그래. 잘 지냈어?”
“이게 이십 년 만이냐?”
“별일 없었지?”
“별 볼 일 없었어.”
“술이나 한잔할까?”

술을 마시며 내 증상을 이야기하니 그가 처방을 내린다.
“그래 써라. 써야 낫는다.”

그가 충주 강변 거의 폐가에 가까운 오두막에 살 때 방문한 적이 있다. 무덤가 빈집이었다. 묵은쌀 몇 킬로와 플라스틱 통에 담긴 곰팡이 핀 된장이 그가 먹는 전부였다. 그나마 바닥이 보였다. 집은 대문도 없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마른 잡초가 수북한 작은 마당에는 뿌리를 드러낸 나무둥치들이 쌓여있었다. 그는 산과 마을에 버려진 나무를 주어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방에서 겨울 냉기를 밀어냈다. 전기와 수도마저 끊긴 그 집에서 겨울을 보낸 그는 피골이 맞닿은 상태였다. 글을 쓰는 귀신처럼 보였다.

"아이고 여기서 어떻게 살았어?"
"그냥 살았어. 소설만 쓸 수 있다면야."

죽음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순간 나는 지조 높은 선비의 귀양살이를 떠올렸다. 그중 가장 가혹하다는 위리안치. 궁벽한 전라도 산골 유배지나 섬의 귀양지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탱자나무로 높은 울타리를 만들고 가두는 형벌과 다름이 없다. 다른 점은 누가 가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독방으로 걸어서 들어갔다는 점이다.

침낭과 이불로 만든 동굴이 썰렁한 방 한가운데 놓여있다. 그 동굴 앞 머리맡에 작은 책상이 있고 불빛을 주고 남은 양초가 책상 위에 붙어있다. 봄이 오면 그나마 씀바귀 쑥부쟁이 야생미나리를 캐서 된장국을 끓일 수 있었다. 입에 풀칠하면서 버티지만, 한겨울엔 머리맡에 놓은 자리끼가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이불을 쓰고 앉아서 언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그는 한기가 느껴지면 한밤중이라도 일어나 불씨를 살렸다.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추위와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소설을 쓰는 그는 곧 성인의 반열에 오를 것처럼 보였다. 친구들은 그가 그 쥐꼬리만도 못한 작가들 평균소득을 더욱 낮추는 인간이라고 농담한 반 걱정한 반 거들기도 한다. 천만에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소설만 잘 써진다면 지옥에라도 기거할 인간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의 모든 삶은 쓰는 일에 맞춰져 있다. 그는 소설과 결혼했으며 소설 쓰는 장소가 어디든 그곳이 직장이다.

껍데기 몸을 벗고 내 영혼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떠난 후에도 소설은 유언처럼 남아있을 것이기에 그처럼 나도 쓰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 후로 몇 편의 단편 소설을 쓰니 내 병세는 한결 좋아졌다. 다시 거짓말처럼 사랑하고 죽음처럼 술을 마시니 병이 재발하곤 한다. 고질병이란 대체로 생활습관이 만든다. 그가 써준 처방전을 기억하고 운기 조신 책상에 앉아 무엇인가 긁적이면 증상이 완화되고 잠깐 기분이 좋아진다.

쓰는 인간에게 쓰는 일은 곧 숨을 쉬는 일이며 길을 걷는 일이다. 사상이 소설을 못 쓰게 한다면 그는 이데올로기를 버릴 것이다. 버리지 못하면 붙잡고 설득할 것이다. 사랑이 소설에 장애가 되는 시점에 그는 사랑을 피해 어느 산골로 들어갈 것이다. 혼자 소설과 씨름판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그는 술이 얼큰해지면 줄리 런던이 부르는 ‘fly me to the moon’을 따라 부른다.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반달로 보내고 오지 않을 미래도 만월로 보낸다.

예수가 자신의 행적에 주석을 달았던가. 부처가 가는 길을 설명하며 갔던가. 주석과 설명과 변명은 쓰는 사람의 일이 아니라고 본다. 기록하듯 각인하듯 한 문장씩 써나가는 길이 내 앞에 놓여있다. 소설가! 나는 그의 뒤를 따른다. 아아, 호모 스크리벤스(homo scribens)여! <끝>

스마트 소설은 짧은 시간에 대중 영상 매체인 스마트폰으로 읽는 소설입니다. 눈으로 빠르게 읽고 머리와 가슴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박인 스마트 소설』을 연재합니다. 박인 작가는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스마트 소설집 『네 여자 세 남자』(공저)를 펴냈습니다. 또 다수의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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