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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 스마트 소설]

내 눈에 박히듯 들어온 것은 죽은 갓난아이의 두개골이었다. “지난주 실습 시간 후 시신의 일부가 없어졌다.” “십분 시간을 줄 테니 자수해라.”

[박인 스마트 소설] 해부학 교실

2019. 09. 06 by 박인 작가

냉동고에서 죽은 맥도날드 할아버지 알몸을 꺼내 시상면에서 절반으로 잘랐을 것이다. 실습용 시신은 머리에서 성기까지 정확하게 반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쪽 뇌와 척추가 절단면을 보이고 누워 있다. 나머지 절반은 부위별로 해체되었다. 피부와 지방층이 벗겨지고 드러난 뼈와 해부된 근육과 분리된 장기들이 은빛 침상 위에 놓여있었다. 약물중독으로 죽은 메릴린 먼로를 닮은 여자의 의학연구용 사체가 똑같은 방법으로 해부되었다. 작은 깃발 번호표들이 뼈와 근육과 신경계 부위별로 여러 개 붙어있다. 해부학 실습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나는 노트와 족보를 뒤적이며 낯선 용어들을 외우기 시작했다. 교실에는 폐, 심장, 신장과 소화 기관들이 방부제 용액 유리병들에 담긴 채 햇살이 내리는 창가에 진열되어 있었다.

▲크샤트리아 가문 출신 교수는 저승사자처럼 교실 출입문을 막고 서있었다. ⓒ박인
▲크샤트리아 가문 출신 교수는 저승사자처럼 교실 출입문을 막고 서있었다. ⓒ박인

한순간 내 눈에 박히듯 들어온 것은 죽은 갓난아이의 두개골이었다. 피지도 못하고 사라져버린 어린 생명의 머리뼈가 선반 위에 놓여있다. 아직 단단히 여물지 않아 가볍고 부서질 것 같은 머리뼈를 나는 자세히 바라보았다. 이마뼈와 마루뼈 사이에 부드럽게 열린 숫구멍이 생명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메릴린의 생식기를 바라보았는데 그곳의 자궁은 텅 비어있다. 그때였다.

“모두 동작 그만.”

육중한 문이 열리고 들어온 해부학 여교수는 학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인도인 특유의 엑센트로 화를 억누르는 목소리였다. 대형 스테인리스 침상에 담긴 포르말린 용액에 누워 있는 좌우로 절단된 시체들을 보고 만지던 실습생들은 모두 제자리에 멈췄다. 두 눈을 부릅뜬 교수는 어정쩡하게 서 있는 실습생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인체구조에 대한 학습을 통해 의학의 근본인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생명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데 해부학 교실 교육 목표가 있다. 여기 이분들이 커대버로 누워 있지만, 한때는 아름답게 살았던 인간이었다. 누군가의 아버지였으며 누군가의 딸이었다. 예절을 갖추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루어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교수는 잠깐 입술에 침을 바르고 말의 톤을 높였다.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해부학 교실 역사에 이런 치욕적인 일은 처음이다. 모두 커대버에서 물러나서 의자에 앉아라. 그리고 눈을 감아라.”

그렇지 않아도 실습생들은 긴장과 공포에 신경과 근육이 뭉쳐있는데, 눈 밑에 처진 주름이 검게 변한 크샤트리아 가문 출신 교수는 저승사자처럼 교실 출입문을 막고 서있었다.

“프란시스, 눈 감으라니까.”

실눈을 뜨고 주위를 살피던 나를 향해 여교수는 큰소리로 주의를 환기하였다. 나는 눈과 어금니를 동시에 질끈 닫았다. 교수는 욱한 성질을 누르는 듯 말을 이었다.

“지난주 실습 시간 후 시신의 일부가 없어졌다. 나는 더는 이런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

사체의 일부를 누가 가져갔을까,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너희들은 오늘 집에 갈 수 없다. 분명히 말하는데 범인은 이 안에 있다. 눈을 감은 채 내게 조용히 정직하게 손을 들면 없었던 일로 하겠다. 만약 범인이 안 나타나면 너희들 모두 해부학 시험 낙제를 면하지 못할 것이고 알다시피 유급될 것이다.”

해부학 교수가 문을 세게 닫고 나가고 조교가 팔짱을 낀 채 거들었다.

“내 경험상 교수님은 반드시 너희를 유급시킬 것이다. 저기 아이 두개골 옆에 놓여있던 태아의 머리뼈가 지난주 이 시간에 없어졌다. 누가 가져갔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십분 시간을 줄 테니 자수해라.”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누가 머리를 가져갔을까. 빨리 자수하고 도로 갖다 놔라. 조교마저 나가자 실습생들은 서로를 둘러보며 웅성거렸다. 이십 분이 지나고 삼십 분이 흐르자 교수가 다시 들어왔다.

“모두 눈 감아. 눈을 뜬 사람이 범인으로 알겠다. 태아 머리뼈 가져간 사람 좋은 말할 때 조용히 손을 들어라. 경찰이 오고 있다. 다른 친구들이 이유 없이 시험도 못 보고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하겠니?”

십 분이 다시 흘렀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겨드랑이가 간지러웠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단지 손을 들고 이 상황을 종료하고 싶었다. 내가 땀에 젖은 손을 들려고 할 때 목소리가 들렸다.

“눈 떠라. 오늘 실습시험은 다음 주에 치르겠다. 모두 수고했다.”

내면이 해부되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무표정한 얼굴로 교수가 실습생을 바라보았다. 긴장이 풀린 실습생 모두 선뜻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십년감수한 얼굴들이 삭아 보였다. 포르말린과 소독약 냄새가 폐부를 찔렀다. 어지러웠다.

그날 밤부터 내 꿈속에서는 맥도날드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으며 양로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살아생전 마지막 식사인 햄버거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어린 여자아이 머리가 어두운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다. 목 놓아 울고 있다.

그날 그 시간 이후 음독한 메릴린의 목숨이 계속 끊어지고 있었다. 숨을 가쁘게 쉬며 떠나간 사랑을 부른다. 부러진 손톱이 카펫에 박혀 있고 검붉은 피가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끝>

스마트 소설은 짧은 시간에 대중 영상 매체인 스마트폰으로 읽는 소설입니다. 눈으로 빠르게 읽고 머리와 가슴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박인 스마트 소설』을 연재합니다. 박인 작가는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스마트 소설집 『네 여자 세 남자』(공저)를 펴냈습니다. 또 다수의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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