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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수필]

[ 2 ] 똥자랑

2019. 09. 15 by 김홍성 시인

 

 

내 또래의 고만고만한 아이들은 길가에 나와 똥을 누면서 자랐다. 늘 굶주리는 동네 개들은 아이들 똥으로 속살이 토실토실 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도 부지런해야 더운 똥을 먹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아이들이 국도변에 나와 앉아 똥을 누고 있노라면 부지런한 개들이 슬그머니 다가와 아이들이 누는 싱싱한 똥 냄새를 음미하는 것이었다.

 

똥을 다 누고 나면, 좀 큰 아이들은 들고 나온 신문지 같은 것을 찢어 스스로 밑을 닦지만, 아주 어린 아이들은 노래하듯 멜로디를 실어 제 엄마를 불러댔다.

 

- 엄마, 나 똥 다 눴어. 밑 닦아 줘. 엄마, 나 똥 다 눴어. 밑 씻겨 줘.

 

그러면 가게 문을 열거나 앞마당을 비질하던 엄마들이 종이 쪼가리를 구겨 쥐고 나와서 몽고반점이 시퍼런 제 새끼 궁둥이를 쳐들게 한 후 밑을 닦아 주었다. 깔끔한 엄마들은 뻣뻣하고 두꺼운 종이를 오래 비벼서 부드럽게 만든 후 닦아 주었고, 대범한 엄마들은 그냥 길가에 구르는 조약돌을 주워 아들 똥구멍에 대고 한 번 쓰윽 훔쳐 내면 그만이었다.

 

아이들 밑 씻기 좋은 조약돌은 흔했다. 국도변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이 놈 저 놈 동네 아이들 밑 씻기는 운명을 타고 난 조약돌은 대개 매끈한 차돌이었다. 동네 개들은 그런 조약돌들 앞에 두 발을 모으고 납작 엎드려서 조약돌에 묻은 똥을 오래 오래 핥았다. 그것은 마치 조약돌의 거룩한 노고를 치하하는 것처럼 보였다.

 

깔끔한 엄마들 중에는 개들이 제 새끼 궁둥이 가까이 오는 걸 싫어하는 엄마도 있었다. 그런 엄마가 그런 개를 멀리 쫒기 위해 주워 드는 돌멩이도 대개 그런 조약돌이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아주 대범한 엄마는 개가 아들 궁둥이 밑에서 더운 똥을 먹고 있는 것은 물론 아들 똥구멍에 묻은 똥까지 핥아 먹게 내버려 두었다. 먼지 묻은 조약돌로 한번 쓱 훑어주는 것보다는 살아 있는 개의 혓바닥이 훨씬 깨끗하게 처리해 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수세식 좌변기와 비데를 사용하며 애완견과 함께 자라난 세대들은 변태적인 인간의 악의에 찬 거짓말이라고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사실이다. 앞으로 차차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지나간 시대를 산 사람들을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휴전 후에 태어난 내가 전쟁 중에 일어난 일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개는 부지런해야 더운 똥을 먹지만 아이들은 부지런해야 상쾌한 똥을 눌 수 있었다. 이른 아침 국도에는 차가 거의 안 다녔고, 콩고물 같은 먼지는 밤이슬에 촉촉이 젖어 분홍색 고운 살결처럼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동네에 공중변소가 하나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른들에게도 모자라 아침마다 긴 줄을 서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일찌감치 국도변으로 나가 앉아야 했던 것이다.

 

그 시절 아이들은 눈만 뜨면 동무들을 찾아 나섰으니 똥이 안 마려워도 동무들이 모여 똥 누는 길가에 나가 같이 쭈그리고 앉는 게 무슨 놀이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놀이를 하다보면 안 마려웠던 똥이 저절로 마렵기도 했다.

 

늘 질투하고 시기하고 반목하는 두 엄마가 제 새끼 밑 닦아 주러 나왔다가 조우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제 새끼들 똥을 두고 식전부터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다.

 

- 우리 애 똥 좀 봐요. 어쩌면 이렇게 굵지요.

- 굵긴 굵네요. 그런데 색깔이 너무 까맣지 않나요? 우리 애 꺼 좀 보세요. 애 꺼라서 굵지는 않지만 색깔이 황금색이네요. 건강한 똥은 원래 이렇게 황금색이래요.

- 정말 누렇군요. 그런데 애 얼굴도 누런 건 건강하지 못한 거 아닌가요? 보세요. 버짐도 피잖아요?

- 어머머, 별 소릴 다 하시네. 댁에 아이 머리에 기계총은 안 보이고 남의 아이 얼굴에 버짐만 보이세요?

 

엄마들이 이러하니 아이들도 어른 같은 똥을 누면 은근히 자랑스러워했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이란 걸핏하면 설사나 곱똥을 누는 것이고, 아이들 항문에서 염소 똥 같은 똥을 젓가락으로 파내야 하는 엄마들도 없지 않으니 굵든 가늘든 꺼멓든 누렇든 제대로 된 똥을 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으며, 다행스런 일들은 자랑스러운 법인가 보다.

 

훗날, 큰 아이들 사이에는 '그래, 네 똥 굵다'라든지, '그래, 네 똥은 총천연색이다'라는 우스개가 유행한 적도 있었는데, 이는 잘 먹고 잘 산다는 자랑이 심한 아이들을 비꼬는 말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설사가 잦았다. 한 번은 큰 아이들을 따라 똥통 바위 아래 개울에 놀러 갔다가 바지를 입은 채 설사를 했다. 방구가 마려운 것이라 생각하고 힘을 줬더니 설사가 터져 나온 것이었다. 설사는 내 가느다란 다리를 타고 흘러 고무신까지 적셨다. 고무신도 바지도 벗고, 고무신은 개울물에 넣고 흔들어서 씻는 중에 한 짝이 개울물에 떠내려갔다. 눈앞이 캄캄했다.

 

그 날, 큰 아이들이 앞서가는 맨 꽁무니에서 맨 발로 돌아오던 기억이 어슴푸레하다. 기우는 해가 키 큰 옥수수 잎사귀들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긴 옥수수 밭고랑을 빠져나오자 갑자기 동네 어귀가 보였고, 동네 어귀가 보이자 야단맞을 생각이 다시 났던 것 같다. 한 짝만 남은 고무신은 손에 들고, 똥 싼 바지는 막대기에 꿰어 들고, 아주 서럽게 울면서 동네에 들어서던 기억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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