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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수필]

[ 3 ] 뜨물 할머니네 집

2019. 09. 17 by 김홍성 시인

 

 

어머니와 고모가 빨래하러 가는 개울가에는 해방촌이라는 동네가 있었다. 해방촌에는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판잣집을 짓고 살았는데, 우리 동네에서 뜨물 할머니라고 불렀던 할머니도 해방촌에 살았다.

 

뜨물 할머니는 반으로 자른 드럼통을 손수레에 싣고 돼지 먹일 뜨물을 거두러 다녔다. 해방촌에는 돼지 치는 집이 여럿 있어서 뜨물을 거두러 다니는 분들도 여럿이었지만 우리 집이나 고모네 집 같은 함경도 출신 집안의 뜨물은 그 할머니 몫이었다.

 

개나 돼지 먹이도 귀했던 그 시절에는 뜨물도 귀했기에 주부들은 뜨물을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집집마다 뜨물통을 마련해 놓고 거기다 뜨물을 모았다. 뜨물통에는 쌀 씻은 물이 들어가고, 무나 시금치나 호박 꽁다리 같은 푸성귀도 들어가고, 밥솥 헹군 물이나 쉰밥도 들어갔다. 꽁치나 갈치 대가리나 생선 내장 같은 것은 고무부가 기르는 개들의 몫이어서 다른 깡통으로 들어갔다.

 

뜨물 할머니의 남편은 동네에서 엿장수를 하셨다. 그 때는 엿을 돈으로 사 먹는 것이 아니라 고물을 주고 엿으로 바꿔 먹었다. 휴전 직후라 고물 종류가 많았다. 빈 병이나 깡통, 찌그러지고 구멍 난 양은 냄비, 전쟁 때 여기저기 흩어지거나 땅속에 묻혔던 탄피나 삐삐선(군용 통신선), 포탄의 파편 등도 엿 바꿔 먹을 수 있는 고물들이었다.

 

할아버지는 헌 중산모에 흰 바지저고리 차림이셨다. 거기다 굵은 뿔테 안경만 하나 척 걸치면 영락없는 김 구 선생이셨지만 안경은 없었다. 대신 절컹절컹 잘캉잘캉 쇳소리를 내는 엿가위를 손에 드셨다. 할아버지는 너그러운 분이셨으며 늘 허허 웃는 표정이셨다. 우리 조무래기들이 몽당연필만 한 쇳조각 한 개만 들고 가도 엿을 큼직하게 떼어내어 하나 씩 손에 들려주시곤 했다.

 

좀 더 커서 어른들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뜨물 할머니 내외는 고등 교육을 받은 분들이셨다.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고, 할머니는 함흥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분이라고 했다. 휴전 직후였던 그 시절에는 교육을 받았거나 못 받았거나, 피난민이거나 정착민이거나 먹고 살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모는 뜨물 할머니가 들르면 잠시라도 붙들어 앉혀 놓고 우물물이라도 한 바가지 퍼다 드렸다. 같은 함경도 피난민이기에 두 분의 사이는 각별했던 것 같다. 당시 처녀 총각이었던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의 혼인도 뜨물 할머니의 중매로 이루어졌다.

 

뜨물 할머니의 따님은 일찍 출가한 탓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고등학교에 다녔던 아드님은 기억이 난다. 고모의 아들, 그러니까 사촌 형님인 준환 형 또래로 기억되는 그 형님의 교복 바지는 염색한 군복 바지였다. 잔뜩 구부린 교모 챙의 가장자리는 너덜너덜했지만 멋진 형이었다. 늘 씩씩하게 걸었기에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머니와 고모는 뜨물 할머니네 집이 있는 개울가에 큰 솥을 걸고 이불 호청 같은 흰 빨래를 양잿물로 삶기도 했다. 그럴 때 나는 어른들을 돕는답시고 땔 나무를 주우러 다녔는데, 어느 날 우연히 뜨물 할머니 네가 살던 집 앞에 이르렀다.

 

그 집은 허물어지고 있었다. 돼지우리 주변은 물론이고 마당 가운데도 풀이 무성하였다. 문짝이 떨어져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시커먼 방안에서는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다. 눈부신 대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나는 갑작스러운 공포에 질려 식은땀을 흘리다가 간신히 돌아섰다. 그리고는 어머니와 고모 쪽을 향해 황급히 내달렸다.

 

머리에 흰 수건을 쓴 어머니와 고모가 저 멀리 아주 조그맣게 보였다. 고모는 빨래 방망이로 빨래 삶는 솥을 저으며 서 있었고 어머니는 솥 앞에 엉거주춤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자갈밭에 넘어졌다. 무릎이 까져 피가 났다. 나는 큰 소리로 울었다.

 

뜨물 할머니에 관한 내 기억의 누더기는 여기서 그친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뜨물 할머니 내외는 개울가 해방촌에서 멀지 않은 동네로 이사했으며, 아들 딸 다 시집 장가 잘 보내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셨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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