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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수필]

운동회 때 5~ 6학년 아이들은 기마전을 했다. 기수는 가면에 종이로 만든 뾰족하고 긴 코를 달았다. 그리고 짚으로 만든 계란 포장 꾸러미에 마분지를 감아서 만든 칼을 들었다. 그 칼로 상대 기수의 기다란 코를 먼저 꺾는 쪽이 승리자였다.

[ 6 ] 일동국민학교

2019. 10. 03 by 김홍성 시인

 

ⓒ김홍성 

 

우리 교실이 떠오른다.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창 너머로 넓은 운동장과 미류 나무들이 보인다. 운동장 밖은 들이고, 들 가운데 큰 개울이 있다. 개울 건너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장마 때면 학교에 오지 못했다.

 

농번기에는 두세 살 된 동생을 업고 등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수업 중에는 동생을 책상 밑에 앉혀 놓았다.

 

어떤 아이들은 새끼 때까치를 가져와서 교실 유리창에 붙어있는 파리를 잡아 먹이기도 했다. 입술을 교묘하게 오므려 빨면서 새소리 내면 어미가 먹이를 주는 줄 안 새끼 때까치가 노란 주둥이를 벌렸다.

 

운동장 조회 때 만세를 불렀던 기억도 난다.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운동장 단상에 오른 교장 이 연설을 하고 나서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만세를 세 번 선창했다. 단상 아래 도열한 교사들과 우리 학생들도 교장을 따라 만세를 불렀다. 19604월 학생 혁명 직후였을 것이다. 우리도 학생이라는 자부심이 자못 대단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516 쿠데타 때는 2학년이었다. 미인이었다고 기억되는 여 선생이 담임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인근 군부대의 대대장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 들어온 군용 지프차에서 그 대대장이 내렸다.

 

그 후에는 운전병 혼자 지프를 몰고 들어와 담임에게 쪽지를 전하자 담임은 나를 불렀다. 지프를 타고 자기 집에 가서 어디 어디에 있는 지휘봉을 찾아서 운전병에게 주라고 했다.

 

지프를 타고 가서 지휘봉을 찾아 손에 쥔 기억은 남아 있는 데 그 집이 어디에 있었고 집안은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잊었다. 나는 그 집을 여러 번 드나들어서 내부 구조나 살림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저녁에 문화선전대 군인들이 학교에 와서 영화를 상영한 날도 있었다. 군인들이 운동장 나무들 사이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있을 때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흰피톨들이 창을 들고 병원균을 무찌르는 영상이 기억난다.

 

학교 오는 길목의 서낭당 앞에 큰 밤나무가 있었다. 등교하면서 밤을 주웠다. 어떤 아이들은 아람이 굵고 한 쪽 면이 납작한 밤 두 개를 골라서 납작한 면에 송진을 묻혀서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찌즉째즉 하는 소리를 내는 장난을 했다. 그러다가 박자를 맞춰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실컷 가지고 놀다가 배고프면 까먹었다.

 

운동회 때 5~ 6학년 아이들은 기마전을 했다. 기수는 가면에 종이로 만든 뾰족하고 긴 코를 달았다. 그리고 짚으로 만든 계란 포장 꾸러미에 신문지를 감아서 만든 칼을 들었다. 그 칼로 상대 기수의 기다란 코를 먼저 꺾는 쪽이 승리자였다.

 

하학 길에 돼지 산소에 가서 놀기도 했다. 돼지 산소라는 곳은 능처럼 커다란 무덤이다. 무덤 앞에 도열한 석상들 중에 돼지 같이 생긴 석물들이 있어서 아이들이 그런 이름을 붙였다. 돼지산소에서 할미꽃이라는 꽃 이름을 처음 알았다. 우리는 산소의 비탈진 잔디밭에서 미끄럼을 타며 놀았다.

 

미끄럼타기가 지루해지면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다. 누구였는지 모르겠다. 나하고 둘이 부둥켜안고 같이 뒹굴곤 했던 검불투성이의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이 떠오를 듯 떠오를 듯 안 떠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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