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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수필]
새 학교 아이들은 스티로폼으로 유리창을 닦았다. 창틀에 걸터앉아 양 손에 그 하얀 스티로폼을 들고 유리창을 문지르면 삐까삐까 소리가 나면서 유리창의 때가 말끔히 벗겨졌다.
[ 13 ] 한탄강 오물장
2019. 10. 29 by 김홍성 시인
ⓒ김홍성 

 

새 동네는 전에 살던 동네와 무척 달랐다. 전에 살던 동네는 삼팔선 이남이었기에 농촌 토박이 삶이 남아 있었지만 삼팔선 이북의 수복 지구인 새 동네는 대규모의 미군이 주둔하면서 생긴 기지촌 문화가 번창하고 있었다.  


새 학교 아이들은 스티로폼으로 유리창을 닦았다. 창틀에 걸터앉아 양 손에 그 하얀 스티로폼을 들고 유리창을 문지르면 삐까삐까 소리가 나면서 유리창의 때가 말끔히 벗겨졌다. 지금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스티로폼 쓰레기가 넘쳐나지만 나는 새학교에서 그런 물건을 처음 보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그 스티로폼이 미군부대 오물장에 지천으로 널려 있을 뿐만 아니라 색다른 장난감도 많이 주워 올 수 있으며, 운이 좋으면 미군들만 먹는 맛난 것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반에는 전쟁고아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 아이들은 해방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고아원에 살았다. 어느 날 방과 후 그 아이들을 따라서 미군부대 오물장(쓰레기 처리장)에 갔었다. 나는 그 때 단순히 그 신기한 스티로폼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미군부대 오물장은 학교에서 북서쪽으로 십리 쯤 떨어진 한탄강 지류의 벼랑 위에 있었는데, 과연 스티로폼 덩어리들이 물 위에 하얗게 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스티로폼들은 미군부대 피엑스에서 파는 각종 전자제품의 포장 속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쓰레기 처리 대행 업자는 미군 기지에서 나온 스티로폼을 비롯한 각종 폐기물들과 오물들을 트럭에 싣고 와서 그 벼랑 위의 공터에다가 쏟아놓았다. 업자들은 쓸 만한 것을 건져 낸 후, 태울 것은 태우고 나머지는 불도저로 벼랑 아래 한탄강 골짜기에 밀어 넣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다른 아이들과 함께 오물장 벼랑 아래로 쏟아져 내려온 진짜 쓰레기(쓸 만한 것은 위에서 다 골라냈으므로) 중에서 다시 쓸 만한 것을 골랐다. 나는 가져가기 좋은 큼직한 스티로폼 한 덩어리와 카지노에서 돈으로 쓴다는 플라스틱 칩 몇 개를 주웠다.

 

고아원 아이들은 미군 부대 식당의 잔반통에서 나온 햄이나 쏘시지 혹은 베이컨 같은 음식물들을 주워들고 과연 먹을 만한지를 살폈다. 가끔 상하지 않은 것들이 통째로 굴러 있기도 하여 배불리 먹어봤다는 이 아이들이 그날 찾아낸 것들은 모조리 상한 것들이었다. 돌아올 때 아이들은 ‘뱃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난다’고 말하며 들깨밭 밭두렁에서 들깻잎을 따서 씹었다. 

 

서서히 어두워질 무렵에야 아이들과 함께 동네로 돌아와 헤어졌는데 병원 앞에 서서 그 모습을 본 외삼촌이 저만치 멀어져 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쟤들은 누구냐?’고 물었다. 아이들 중에는 학교가 늦어 나보다 훨씬 큰 아이들도 몇 있었기에 좀 이상하게 생각되었나 보았다. 내가 ‘우리 반 아이들인데요, 고아원에서 다녀요.’했더니 삼촌이 나를 꾸짖었다.

 

- 그러면 그냥 저렇게 보내는 법이 아니다. 저녁을 같이 먹으면 쟤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니.

그 때만 해도 나는 고아원 아이들이 굶주리는 날이 많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나도 뱃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난 일은 있지만 그것은 어쩌다 한 끼니 놓쳤을 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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