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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 스마트 소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남을 어찌 알겠는가. 만나는 이마다 하늘의 숨은 뜻을 아는 듯한 먹물들이다. 오, 나는 누구인가? 이 모든 인간의 합인가?
[박인 스마트 소설] 너 자신을 알라
2019. 12. 06 by 박인 작가

겨울의 한 가운데로 봄이 멀리서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한다. 의문에 휩싸여 나는 겨우 내내 방구석에 처박혀 지냈다. 머리에 든 먹빛처럼 검은 물이 가라앉아 희뿌옇게 느낄 무렵이었다. 사십 년 동안 장복한 술이 사물과 사람에 관한 판단을 흐린 안개 속처럼 만들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남을 어찌 알겠는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게으른 나는 나에 대한 진단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에 대한 진단이라니. 아픈 질병이라면 병원에라도 가 보겠지만 이건 사지가 멀쩡하니 드러누워 망상에 빠지기 일쑤였다. 사람을 멀리하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심히 염려되었다.

사실인즉 사람들 모인 곳에 가서 뭘 좀 아는 척하기도 멋쩍었다. 이미 내재한 밑천이 드러난 자신의 속을 뒤집어 보일 수는 없는 일. 부끄러운 말만 뻔지르르 뱉어놓고 실천하지 않는 자들을 많이 보았다. 그간 머리에 돈이나 똥만 든 사람도 만났다. 까만 머리에서 푸른 시가 일렁거리는 시인이나 흰 머리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설가 친구를 만나야겠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지나가는 겨울이라도 붙들어야겠다.

저간의 안부를 묻고 만나서 겨우내 녹슨 이빨을 열어 보일 예정이다. 소주로 굳은 혀를 풀고 안주로 입안 기름칠을 한 다음, 정말 아는 게 힘인지 진정 모르는 게 약인지 한번 물어볼 생각이다. 나이가 지천명을 넘으니 만나는 이마다 하늘의 숨은 뜻을 아는 듯한 먹물들이다. 이름깨나 팔고 다니는 사람은 바쁘고, 경지가 높은 사람은 서가에 숨어 지내니 만나기 어려운 실정. 그러니 고만고만한 무지렁이들끼리 치고받기 일쑤다. 포장마차에서 친구를 만나 그동안 만나본 이들을 술안주 삼아 순위를 매겨보았다. 도미노처럼 그냥 줄을 세운 것이니 재미로 읽어주길 바란다. 지어낸 이야기에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지 마시길 바란다.

『Wrinkless in time』 1200×800㎜, Acrylic. 박인作
『Wrinkless in time』 1200×800㎜, Acrylic. 박인作

제1위 세상에 모르는 게 없는 사람.

정치면 정치 외교면 외교 예술이면 예술, 정말 모르는 게 없다. 술술 풀어낸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그게 아니고' 또는 '그건 틀렸고'로 말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잡다하고 해박한 지식에 주눅이 들지만 5분 이상 듣고 있기가 보통 고역이 아니다. 모르는 게 없는 이분들은 술 한 잔 먹고 귀가하는 와중에도 지름길을 안다고 택시기사와 싸우는 일이 종종 있다.

제2위 자기가 아는 게 곧 진리인 사람.

특정한 분야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 중에 많다. 석박사학위도 그걸로 받았고 책도 여러 권 집필했다. 어젯밤 꿈에 예수님을 만난 목사처럼 자신이 최고 존엄이란다. 권위가 충만한 그 앞에서 다른 의견을 냈다간 둘 중 하나로 경을 친다. 세상 듣도 보도 못한 외국인 이름과 이론 앞에서 망신을 당하거나 대화 상대에서 따돌리고 은근히 무시당한다. 임팩트 점수가 높은 외국논문을 근거로 반론을 펼치고 증명할 수 있느냐고 상대를 당황하게 만든다. 때로 이분들이 겸손한 표정으로 얘기를 들어주지만 조심해야 한다. 한 방 제대로 치려고 뒤로 한발 물러서는 중이니까.

제3위 새끼손톱만치 아는 거로 우주를 해석하는 사람.

읽고 사유한 시간이 적어 처음에는 주로 듣는다. 이 사람 얘기 저 사람 얘기 듣고 나서는 슬그머니 그걸 섞어 방언처럼 말한다. 처음부터 한자리에서 계속 들은 이들은 그럴듯하게 느낀다. 좌중은 우주에 가 본 적이 없으므로 신도들처럼 열심히 듣는다. 물론 오래가지 못한다. 그중에 한 명은 꼭 ‘그거 아까 나온 말이잖아’ 확인하는 송곳이 있으니까. 그때마다 이분들은 깊은 한숨을 쉰다. 가소롭다는 듯이 고개를 들고 눈을 껌벅인다. 이것들아, 너희가 우주의 섭리를 알기나 하냐?

제4위 알긴 알지만, 이상하게 아는 사람.

공통분모 주제로 대화하는 데 항상 엉뚱한 얘기를 한다. 예를 들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소크라테스가 한 것은 맞지만, 독주를 마시고 죽은 건 결국 플라톤이란다. 이런 사람들은 꼭 끝까지 우긴다. 세계 3대 악처인 크산티페, 콘스탄체와 소피아 얘기를 하다가 크산티페가 플라톤의 악처라고 내기까지 건다. 내기라고 해봤자 겨우 담배 한 갑이나 소주 한 병일 뿐이다. 이분들은 원래 심성이 착해서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다.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제5위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

이런 솔직한 사람 만나기 정말 쉽지 않다.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 정말 완벽하게 하나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부러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사람은 많다. 아는 게 힘이 될지 독약이 될지 모르는 세상에 오래 살다 보면 몰라도 아는 척 알아도 모르는 척 지내기 마련 아닐까. 이분들은 대화의 많은 시간을 질문으로 채운다. 어떤 책을 읽어야 알 수 있나요? 그때 말한 그 이론을 한 번 더 설명해 줄래? 모르는 척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 모를지도 모른다는 진심이 느껴진다. 무식하다고 면박을 주다간 그렇게 말한 사람이 치사한 인간이 된다. 이런 분들은 어쩐지 조금 무섭다. 마치 지식을 천천히 흡수하는 해면체 같다. 만날 때마다 조금씩 높아지고 넓어져 있다. 모르는 게 약인 사람들이다.

 

이후에도 6위, 7위, 8위 등등 계속 이어진다. 이런 순위 앞에서 꼭 나는 몇 번이지?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지 마시라. 그러려니 지나가시라. 따듯한 사람이 그리운 겨울이 아닌가. 그런데 겨울이 가고 봄이 와도 여전히 나는 궁금할 것이다. 진실로 나는 나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일까. 오, 나는 누구인가? 이 모든 인간의 합인가? <끝>

스마트 소설은 짧은 시간에 대중 영상 매체인 스마트폰으로 읽는 소설입니다. 눈으로 빠르게 읽고 머리와 가슴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박인 스마트 소설』을 연재합니다. 박인 작가는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스마트 소설집 『네 여자 세 남자』(공저)를 펴냈습니다. 또 다수의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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