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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평론가 기영노의 콩트]

[스포츠 평론가 기영노 콩트 66] 손흥민, 펠레, 마라도나, 차범근 그리고 베켄 바우어와 요한 크루이프

2019. 12. 09 by 기영노 전문기자

지난 12월 8일 토트넘 홋스퍼 홈구장에서 벌어진 토트넘 대 번리 전, 전반 32분경, 손흥민의 70여m 단독 질주 ‘역대급 골’은 그의 주가를 한 층 높인 경기가 되었다.

손흥민은 이적료 1000억 원, 연봉 107억 원이었으나 그 역대 급 골로 이적료는 최소한 1500억 원, 2020시즌 이후 연봉은 200억 원 이상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그러면 단 한 경기로 ‘축구 영웅’이 된 축구 스타플레이어들의 인생경기는 어떤 경기들일까?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전까지는 슈퍼스타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잉글랜드와의 8강전, 후반 9분경 하프라인에서부터 볼을 몰아 5명의 수비수와 잉글랜드의 쉴튼 골키퍼까지 제치고 골을 성공시키면서 ‘펠레급’ 선수로 떠올랐다.

더구나 그 경기는 4년 전,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포틀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가 패해 포틀랜드섬을 빼앗긴 복수의 성격까지 띤 경기였었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 브라질 대 프랑스의 준결승전, 펠레는 팀이 2대1로 앞서던 후반 8분, 19분, 31분 잇따라 골을 터트려 진정한 의미의 해트트릭(원래 해트트릭은 그 선수가 3골을 넣는 동안 다른 선수의 골이 없어야 한다)을 기록했다. 세 골 모두 ‘한발로 볼을 차서 수비수 머리를 넘긴 후 땅에 떨어지기 전에 슈팅을 성공시키는 등’ 예술에 가까운 골들이었다.

그 준결승전은 브라질이 5대2로 이겼는데, 프랑스에서 2골을 넣은 선수는 그 대회에서 13골로(월드컵 한 대회 최다 골) 득점왕을 차지한 프랑스의 퐁테느 선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펠레의 나이는 월드컵 역사상 최연소인 17세였었다.

차범근은 1976년 5월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말레이시아와의 개막전에서 한국이 말레이시아에 1대4로 뒤지던 후반 종료 7분을 남겨놓고 혼자서 세 골을 내리 터트리는 완벽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차범근은 한국이 말레이시아에 4대4로 비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독일로 가는 지름길을 스스로 열어 놓았다.

독일의 베켄바우어와 네덜란드의 고(故) 요한 크루이프는 각각 리베로, 토탈 풋볼을 상징하는 유럽축구사상 최고의 선수들이다.

남미 축구의 상징이 펠레 마라도나라면 유럽 축구는 베켄바우어와 크루이프가 양대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베켄바워와 크루이프는 1974년 서독월드컵 결승전에서 각각 서독과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선수로 정면으로 맞붙었고, 수준 높은 결승전 한판으로 두 선수는 완벽하게 세계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결과적으로 서독이 네덜란드에 2대1로 역전 우승을 차지했지만 개인상은 크루이프가 차지했다. 1974 서독월드컵 최우수상과 1974 발롱도르상을 크루이프가 가져간 것이다.

그해에 베켄바워는 서독국가대표로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고, 바이에른 뮌헨 팀의 주장으로 분데스리가와 UEFA 유럽축구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해 ‘완벽한 트레블’을 달성했는데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개인상 2개(월드컵 최우수선수, 발롱도르)를 크루이프에 빼앗겼다.

2005년 차범근 축구교실을 방문한 베켄바우어(왼쪽)과 차범근의 모습(사진= 연합뉴스).
2005년 5월 차범근 축구교실을 방문한 베켄바우어(왼쪽)과 차범근의 모습(사진= 연합뉴스).

 

2019년부터 아르헨티나의 힘나시아 데 라플라타 팀 감독을 맡고 있는 디에고 마라도나에게 ‘풋 볼’지가 인터뷰를 했다.

 

풋 볼 ; 요즘은 (마약, 탈세, 도핑 등으로 부터) 뜸하다.

마라도나 ; 내가 60년생이다. 이제 환갑이다.

풋볼 ; 지난번 토트넘의 (손)골 보았나?

마라도나 ; 엄청 빨랐고, 대단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수비가 약한 번리(프리미어리그에서 18번째로 많은 29골 허용)팀을 상대했다는 점이다. 리버풀이나 맨체스터 시티 같은 강팀과의 경기에서도 (또 그런 골을 넣어주기를) 기대한다.

풋 볼 ; 그래도 (손)은 70여m를 질주해서 당신의 멕시코 월드컵 잉글랜드전 50m가량 질주를 20m나 초과한 대기록이다.

마라도나 ; 내가 기록한 것은 영국 국내리그(프리미어리그)가 아니라 월드컵에서다. 비교 자체가 안 된다.

풋 볼 ; (!?!......)

마라도나 ; 그리고 나를 종종 메시와 비교하곤 하는데, 메시는 월드컵 우승은커녕 월드컵 조 예선에서나 골을 넣었었지 16강 토너먼트에서도 골이 없다. 나를 메시와 비교하면 안 된다.

 

(마라도나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 우승의 주역으로 월드컵 결승전 골은 없지만 벨기에와 준결승전에서 2대0으로 이길 때 혼자 2골을 모두 넣었다. 그 대회에서 5골을 넣어 득점 공동 2위에 올랐었다)

P.S

축구는 상대적으로 공격수에 비해 수비수가 불리하다. 수비수는 웬만해서는 스타가 되기 어렵다.

앞서 서독의 베켄바워는 리베로라는 새로운 포지션 때문에 수비수로서 축구황제로 불렸었다. 이탈리아의 프랑코 바레시, 브라질의 시속 130km의 강한 볼을 찼었던 카를로스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팀 잉글랜드의 스토퍼 바비 무어와 아르헨티나가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두 번 우승을 차지할 때 모두 수비를 탄탄히 책임졌었던 다니엘 파사레야 선수도 1m73cm의 작은 키를 상쇄시키는 강력한 왼발 킥과 공격력과 점프력, 위치선정, 파이팅 등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었던 수비수라고 할 수 있다.

2010 남아공월드컵 스페인 우승의 일등공신 카를레스 푸욜도 스페인축구 전성기(2010년 전후)를 구가했던 수비수다. 푸욜은 2008 유럽 컵(스위스 오스트리아 공동개최)에서 스페인이 우승을 차지할 때도 남아공월드컵과 마찬가지로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한국의 홍명보도 걸출한 수비수였지만, 가장 돋보이는 순간은 1994 미국월드컵 스페인과의 C조별 예선 스페인과의 첫 경기에서 0대2로 뒤지던 후반 40분 통렬한 프리킥으로 만회골을 터트린 것과 독일과의 C조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0대3을 뒤졌을 때 중거리 슛으로 1골을 만회했을 때였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리버풀에서 뛰고 있는 버질 판 다이크는 1m93cm 90km의 육중한 체격으로 판단력이 뛰어나고 공중볼과 땅볼 모두 강하다. 상대팀으로는 ‘통곡의 벽’이라는 별명이 실감 날 정도로 뚫기 어렵다.

세계축구 역사상 수비수로서 연봉(주급 3억7000만 원)이 가장 많다.

그러나 지난 10월 3일 오스트리아 RB 잘츠부르크와 리버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리그 E조 2차전 경기에서 황희찬이 왼발 슈팅 모션으로 판 다이크를 제친 후 오른발 슈팅으로 골을 성공시켜 세계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었다. 판 다이크는 메시나 호날두에게도 뚫리지 않았었다.

2017년 스위스에서 열린 FIFA 레전드 축구경기 당시 모습(사진= 연합뉴스).
2017년 스위스에서 열린 FIFA 레전드 축구경기 당시 모습(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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