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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수필]

놈들의 성격과 얼굴을 나를 포함한 내 주변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눈에 익혔다. 그러면서 그 미운 놈들과 특별한 정이 들었다. 그 도깨비 같은 놈들을 찾는 일에 내가 자주 나섰던 것은 그런 이유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 24 ] 덕재 3 / 암소들의 집단 모성

2019. 12. 19 by 김홍성 시인

 

소들을 몰아넣고 나면 금방 밤이 되었다. 호롱불 밑에서 저녁을 먹고 화투를 치다가 오줌 누러 나가서 보면 우리 안의 소들은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갓난 송아지를 둘이 교대로 안고 온지 며칠 안 된 어느날, 그 송아지를 찾아봤더니 어미와 함께 무리 가운데 업드려 있었다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소들은 새끼 없는 암소들이었다. 약한 것들을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모여 있는 모습이었다. 방목하는 암소들은 위험으로부터 약한 것을 보호하는 공동체를 자연스럽게 이룬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사람들을 가둔 감옥 얘기를 들어보면 조금이라도 편한 자리는 사나운 자들이 차지하고, 약하고 순한 자들일수록 냄새 나는 변기통 쪽에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데, 짐승들을 가둔 이 노천 울타리 속에서는 약자들이 보호되고 있었다.

 

어째서 짐승들 세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새끼를 가진 어미 소들의 새끼 보호 본능이 어미 소들을 사납게 만들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어미 없는 송아지들은 구석으로 몰려 있어야 마땅한데 그 놈들도 안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암소들끼리 모여 살면서 본능적으로 발휘되는 집단 모성의 발로가 아닌가 싶었다.

 

날마다 소들을 몰고 사격장으로 방목을 다니면서 알게 된 또 다른 사실은 전체 무리에 속하지 않고 따로 노는 소수의 무리가 있다는 점이다. 그 놈들은 사격장으로 나갈 때는 대충 섞여서 나가지만 일단 사격장에 나가서 자유로운 몸이 되면 어느새 작은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이놈들을 잘 감시해야만 했다. 혹시라도 한눈을 팔다가 목장에 거의 다 와서 그 놈들이 없는 것을 알게 되면 다시 고개를 넘어 사격장 구석구석 놈들을 찾아 헤매야 했다. 해가 능선으로 넘어가 버린 스산한 길을 되짚어 걸으며 우리는 심한 욕을 해대곤 했다.

 

통제를 따르지 않는 이 고약한 놈들은 하나같이 다 사연이 있는 놈들이었다. 뿔이 삐뚤어진 놈은 난산으로 태어나 어미 없이 자란 놈이었고, 앞 다리를 조금 저는 놈은 풀 베러 온 동네 애들이 장난으로 던진 낫에 발목 인대를 다쳤던 놈이며, 그도 저도 아닌 놈들도 최소한 먼 고장에서 자라다 트럭으로 실려 온 지 얼마 안 되는 놈들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놈들이었다. 그들은 주류에서 소외되었고, 유유상종으로 작당이 된 놈들이었다놈들의 성격과 얼굴을 나를 포함한 내 주변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눈에 익혔다. 그러면서 그 미운 놈들과 특별한 정이 들었다. 그 도깨비 같은 놈들을 찾는 일에 내가 자주 나섰던 것은 그런 이유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김홍성. 2019년 가을, 포천 평화나무 농장의 한우.   

 

 

한밤중에야 이놈들을 간신히 찾았던 날이 떠오른다. 그 날은 더럽게 재수 없는 날이었다. 소들을 새 풀밭으로 이동 시키느라 사격장 한가운데로 난 길로 소들을 몰고 가는 중이었다.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나더니 목장 쪽 고개 마루 위로 두 대의 헬리콥터가 나타났다.

 

사격 훈련이 있기 전에 이처럼 헬리콥터나 비행기가 나타나 정찰을 하고 가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그래서 특별히 신경을 안 썼다. 그런데 그 헬리콥터들이 우리를 향해 낮게 접근하더니 우리의 머리 위에 굉음을 쏟으면서 벼락같이 스쳐갔다.

 

이 바람에 소들이 놀라서 양쪽 비탈로 갈라져 냅다 뛰기 시작했는데, 건너편 하늘에서 선회한 헬리콥터 두 대가 다시 돌아오면서 우리 소들을 향해 기관총을 쏴댔다. 한순간 아찔했지만 그것은 실탄이 아니라 공포탄이었다. 헬리콥터의 굉음만 들어도 놀라는 소들은 머리 위에서 쏴대는 공포탄 소리에 기겁하여 꼬랑지를 바싹 치켜들고 이리 저리 제멋대로 갈라져서 뛰었다.

 

나는 그 때 헬리콥터들의 뻥 뚫린 문턱에 거치된 기관총을 붙들고 선 미군들의 얼굴을 봤다. 한 놈은 뭔가 씹고 있었고, 한 놈은 시거를 물고 있었다. 우리는 그 미친 미군 놈들이 손오공처럼 유유히 사라지는 하늘을 향해 욕설과 팔뚝질을 해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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