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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의 음악 통신]

[성용원 음악통신 129] 장인(匠人)의 죽음으로 다시 불붙은 강사법 논란

2019. 12. 16 by 성용원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의 전 겸임교수이자 동해안별신굿 전수교육조교인 김정희(58) 씨의 지난 13일 죽음은 유족 및 관계자들에 발언을 종합해 보건데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시행을 앞두고 더는 출강할 수 없다는 학교 측 통보를 받은 김 씨가 신변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82-1호인 동해안별신굿 악사이자 전수교육조교인 김정희 씨는 4대째 무업을 계승하고 있는 뿌리 깊은 예술인 가문의 후예이다. 어릴 때부터 악기와 노래, 춤을 자연스레 배우고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체계에서 보유자 전 단계를 지칭하는 전수교육조교로서 살아 있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였다. 전통예술 분야에서의 전문성와 예술성을 인정받아 1998년 한예종 전통예술원이 설립된 직후부터 후학들을 양성해 온 장인이자 교육자이기도 하다. 20여 년간 직장으로 삼았던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강사 임용규정을 재정비하면서 강사 채용 자격을 '석사 학위 이상 소지자'로 일괄적으로 세우고 집행하면서 미 학위 소지자인 김 씨는 더는 연희과에 출강하지 못하게 되었고 강사 자리를 잃으면서 전공생들을 대상으로 한 개인, 단체 레슨도 못하게 되어 이후 공연 몇 건 외에는 수입이 달리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1학기까지는 학위가 없어도 예술 활동 경력을 참작해 강사 자격이 부여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강사법 시행령에 따르면 해당 분야 경력자는 초빙교원이나 그에 준하는 다른 교원 직위로 얼마든지 채용이 가능하며 김 씨의 고용은 학교 측의 채용의지에 달린 것이지 강사법과는 무관하다"라고 해명했다. 한마디로 그냥 학교에서 예산절감과 긴축 행정, 구조조정을 위해 강사법을 적용하면서 학교에 출강 중인 예술가들의 업적과 기량, 공로, 예술성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줄 세워놓고 자기들이 기준에 미 충족되는 사람들은 자른 거에 불과하다. 강사법 어디에도 강사의 자격기준을 '석사 학위 소지 이상'이라고 한 부분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다.

조선대학교에 걸려 있는 현수막

학교나 기관에서 상급기관에서 하달된(하명이라고 쓰고 싶다) 법 해석을 놓고 알아서 먼저 설설기는 태도는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법과 제도의 가장 우선된 취지는 보호와 안전이다. 그게 국가의 존속 이유이기도 하며 법이 없다면 우리는 동물처럼 그저 힘이 센 자가 다른 이를 지배하고 약탈하는 약육강식의 원시적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약자를 보호하고 권익을 증대시키려는 좋은 취지로 시행된 법이 도리어 부메랑으로 다가와 목을 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이는 각 구성원들과 부분에서 적용되었던 논리가 합인 전체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은 걸 지칭하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학교나 기관 등에서는 문화예술인, 아니 사람에 대한 존중과 존경 따윈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베토벤이 와도 대한민국에서 강사나 교수가 될 수 없다. 백남준이 환생해도 백건우가 말년에 조국에 봉사하고 싶어도 자격 미달이다. 왜? 학위가 없으니까. 예술 창작 분야에서는 학위 없이도 해당 분야 경력으로 교수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강사법이 시행되자 각 대학들은 '이때다' 싶어 강사들을 잘랐다. 그들에겐 학자도, 예술가도, 모두 돈으로 환산된다. 물론 행정을 집행해야 하는 일선 실무자들의 노고와 고충을 헤아리지 못하는 바가 아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갈수록 심화되는 우리 사회의 하향평준화와 제도적 평등 그리고 분배에 우선을 둔 정책 지향성과 천민 자본주의에 원인이 있다. 

무죄! 사진 갈무리: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
무죄! 사진 갈무리: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

각 기관마다 개개인과 지역의 특성에 맞춘 고유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신 다수를 위한 획일적인 교육과 포퓰리즘식의 접근이 심화된다. 기금의 투명한 집행과 정당한 사용을 증명하기 위해 기관에서 요구하는 서류들의 작성부터 제출, 영수증 첨부, 간담회 참석 등의 과도한 잡일과 요식적인 절차들로 인해 정작 수업의 질과 교육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즉 수업의 질적 고려보다 행정적인 절차와 집행에 중점을 두어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것이다. 그건 지금 노소, 직업의 귀천, 젠더, 권위 등의 타파와 기존 사회질서의 붕괴로 인해 봇물 터지듯 만연하고 있는 우리나라 특유의 평등 의식의 삐딱한 발현이다. 우리나라 전통 유교사상으로 유지되던 기존의 사회질서와 구조가 이미 심각할 정도로 붕괴되었다.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에게 다가가 선생님이 뭐라고 하고 신체 접촉을 하면 "폭행"으로 신고해 버리고 담배 피워서 옆 사람에게 피해 간다고 항의하면 자신은 금연구역에서 1m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이죽거린다. 불쌍한 사람을 돕고 정의 구현을 하였더니 내가 가해자가 된다. 어른이 뭐라고 하면 꼰대라고 매장시켜 버린다. 그러니 울분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집단행동을 하고 자신의 목소리와 이권만 챙기려고 외치는 일방통행 식의 사회 분위기가 고조되고 세대, 계층 간의 갈등만 심해진다. 나보다 잘 된 사람은 어떻게든 끌어내려야 한다. 그게 한국식 평등이다. 그 사람의 지금까지의 수고와 노력은 존중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람의 성공에 편승하고 숟가락 올려야 한다. 유아독존식의 사고방식 확대로 자기 목소리만 크게 하고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불이익이나 피해가 오면 그걸 잠시도 못 참고 바르르 떨며 들이 받아야 한다. 정당한 노력과 수고로 얻은 가치와 권위에 대한 존중과 수용, 배려 그런 것이 없이 무조건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외치는 것이 무섭다. 일선 교육 현장에선 재미와 대중성이 가장 우선시 되니 교육적 성과보다 참여자의 만족이 목적이 되어버렸다. 지나친 대중성과 평등의 추구는 문화적 토양을 척박하게 만들고 열정과 사명을 가지고 열심을 다하는 자의 의욕을 꺾는다. 균형과 견제는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데 필수다.

고학력 인플레이션, 전공 불일치! 대한민국의 민낯, 사진갈무리: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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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면서: 강사법이 시행 후 가장 많은 강사를 해촉한 학교가 어디인지 아는가? 바로 강사법을 촉발시킨 서정민 선생님의 학교, 조선대학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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