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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의 음악 통신]

포노에서 출판된 20세기 미국의 작곡가 아론 코플란드의 음악입문서 서평

[성용원 음악통신 132] 이 한 권의 책: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2019. 12. 18 by 성용원 작곡가

클래식 길라잡이란 명목으로 마구잡이 발간된 음악애호가, 칼럼니스트들의 가벼운 저서에 비해 깊이와 진중함 그리고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생산자가 자신의 생산품을 어떻게 하면 다른 이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참되게 느끼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애정 그리고 열정이 살아 숨쉬는, 같은 작곡가로서 그리고 클래식음악의 볼모지에서 비슷한 고민과 사명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동지애를 느낄 정도의 명저. 미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시민, 연주가, 지휘자, 음악교육자, 연사, 위원회 회원, 문화행정가 등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능하는 예술가의 이상적 존재를 표상하는 아론 코플란드(Aaron Copland 1900-1990)가 ‘지적인 음악 감상의 기초를 최대한 뚜렷하게 정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집필한 음악을 듣는 법에 대해 적은 음악 감상 입문서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PHONO에서 좋은 책이 많이 나온다. 아론 코플란드 저 PHONO출판 세계적 작곡가의 음악 사용 설명서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
PHONO에서 좋은 책이 많이 나온다. 아론 코플란드 저 PHONO출판 세계적 작곡가의 음악 사용 설명서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

몇 가지 매끄럽지 못한 번역상의 오류가 옥의 티다. 인명과 작품명 등의 외국어 표기는 국립국어원의 외국어 표기 저작을 따르고 있다고 명시하였으나 음악계 내에서 계속 통용되는 인명과 제목이 바뀌어져 나와 읽기에 거북하고 헷갈린다. 예를 들어 저자 이름은 오랜 시간 아론 코플란드로 배웠고 발음되며 음악인들은 그렇게 칭하는데 외국어 표기를 따랐다고 에런 코플런드로 변모되었으며 그런 식으로 바르토크가 버르톡이 되어버렸다.(이건 독일 유학시절, 필자의 이름이 독일어 발음대로 용본숭이 되어 버린 것과 일치한다. 난 용본숭이 아니니 내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라고 독일인들에게 요구했다.) '발자욱'이 '발자취'로 되는 등의 곡 음악계 내에서 통용되던 곡 제목이 번역상의 바뀜은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관점에서 별 문제가 없으나 인명은 수십년간 사용되고 익숙한게 갑자기 바뀌니 혼란스러웠다. 번역가가 이론이나 음악학 등의 음악전공자가 아닌 경영학도 음악애호가이다보니 학계에서 쓰는 표현과 용어 대신 번역가가 선택한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점도 아쉬웠다. 예를 들어 176쪽의 구획적 형식이란 표현은 한참동안이나 무엇을 뜻하는지 고민해야 했다. 책을 읽어가면서 형식론에서의 이미 사용되는 단락, 도막이란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깨달았는바 이런 점들은 앞서 언급한데로 음악전공자가 아닌 애호가가 번역한 데서 온 문제라고 보며 번역가 수급이 용의치 않았다면 전공자에게 감수라도 한번 받았으면 어떨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능하는 예술가의 이상적 존재를 표상한 코플란드, 이정도로 우리는 음악인으로서 사회적 역할과 책무에 충실하고 있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능하는 예술가의 이상적 존재를 표상한 코플란드, 이정도로 우리는 음악인으로서 사회적 역할과 책무에 충실하고 있는가?

순수예술계 전체가 자본에 예속되어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전공자도 줄어들고 그 고급예술을 향유하는 층도 얇아져 모두가 힘든 지경이다. 출판사가 번성하려면 우선 그 책들을 읽고 공부하는 일차적인 수급자인 학교와 학생들이 많아야 하는데 이제 음악대학은 갈수록 폐쇄에 몰리고 있으며 순수음악 전공자들의 수도 급격히 줄어들고 엘리트음악교육은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래서 평생교육원, 컨서바토리 등의 다른 대체 교육기관에서 한정된 인원이 아닌 일반인,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교양차원에서 음악감상법과 교육이 행해지고 있어 <음악과 감상> 같은 교양수업에 교재로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를 교재로, 음악을 사랑하고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로 강력하게 추천한다.

유럽음악의 영향에 있던 미국에 찰스 아이브즈를 이어 미국에, 미국을 위한, 미국만의 음악과 체제를 세운 아론 코플란드와 레너드 번스타인
유럽음악의 영향에 있던 미국에 찰스 아이브즈를 이어 미국에, 미국을 위한, 미국만의 음악과 체제를 세운 아론 코플란드와 레너드 번스타인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경험과 배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기술이다. 알면 더 많이 즐길 수 있다. 음악감상의 첫째 전제 조건은 정신을 집중하고 음악에 주의를 기울이는 적극적인 청취자세이다.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듣는 이가 최소한의 노력만 기울여도 쉽사리 만족감을 느끼는 대중음악과의 차이가 거기에 있다. 하지만 이해에 앞서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사랑이다. 청자가 듣고 있는 음악에 스스로를 완전히 내맡길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작곡가와 연주자의 공통된 바람이다. 감상자들이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때만이 음악 역시도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집중해서 듣고, 의식적으로 듣고, 우리 지성을 모두 동원해 듣자. 그리하여 인류가 남긴 영광된 유산인 음악 예술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데 기여하자!

​어찌이리 낱말 하나 안 바뀌고 아론 코플란드가 미국의 청중들에게 신신당부한 6-70년전의 잔소리와 21세기를 살아가는 작곡가 성용원이 2019년 대한민국에서 외치는 포효가 똑같은지......아론 코플란드의 그 음악을 사랑하고 전달하려는 마음이 너무나 고스란히 전달되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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