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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수필]

윤 씨가 어디선가 금방 싼 쇠똥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코를 큼큼 거린지 얼마 안 되어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쇠 눈깔들을 보았다. 곧 뿔이 삐뚜름한 대가리 하나를 확인했다. 그 놈이 이 쪽 무리들의 대장이었다.

[김홍성 수필 25] 덕재 4 / 달밤에 소를 찾다

2020. 02. 13 by 김홍성 시인

 

뿔뿔이 흩어진 소들을 앞세우고 이 쪽 저 쪽에서 목동들이 모이기 시작한 때는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소들은 멀리까지 달아났으며 꽁꽁 숨어 있었기에 아직 많이 모자랐다. 박 씨가 한 떼의 소들을 몰고 합류한 후에도 보이지 않는 소들은 대부분 그 꼴통 소들이었다. 윤 씨와 나는 목장으로 넘어가는 고개 밑에 이르렀건만 다시 오던 길을 되짚어 사격장 안으로 돌아가야 했다.

 

보름달이 올라와 있었건만 산그늘 풀숲에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앞장선 윤 씨와는 달리 나는 칡넝쿨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칡넝쿨은 소들이 좋아하는 풀이었다. 윤 씨가 어디선가 금방 싼 쇠똥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코를 큼큼 거린지 얼마 안 되어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쇠 눈깔들을 보았다. 곧 뿔이 삐뚜름한 대가리 하나를 확인했다. 그 놈이 이 쪽 무리들의 대장이었다.

다행히 다른 소들도 모두 근처에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되새김질을 하며 앉아 있는 소들이 얄미워서 엉덩이를 내지르는 시늉을 하자 소들이 여기저기서 일어섰다. 안 보는 척하면서 다 보는, 눈치가 빤한 놈들이었다.

 

- 가자, 이 도깨비 같은 놈들아. 배고파 죽겠다.

 

윤 씨가 싸리 가지를 꺾어들고 달빛 속에 쳐들자 도깨비들이 걸음을 빨리했다. 나는 생각했다. 저 커다란 덩치에, 형형한 두 눈에, 뿔까지 달린 놈들이 사람에게 길들어서 고분고분 말 잘 듣는 가축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

 

자정이 다 될 무렵에야 우리는 목장으로 돌아왔다. 다들 걱정이 돼서 자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막걸리부터 벌컥벌컥 들이켰다. 먼저 온 박 씨가 여우 고개 마을에 가서 받아 온 막걸리였다. 형제지간이나 다를 바 없었던 목장 책임자 전 씨의 부인, 즉 형수가 따뜻하게 데워준 막걸리가 뱃속에 들어가자 그토록 볶아대던 허기가 달아나는 것 같았다.

 

형은 아직 몇 마리가 모자란다고 걱정했으나 박 씨는 걱정 말라고 했다. 내일 사격장에 나가면 저절로 찾아 올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다 돌아왔다. 그러나 새끼 밴 소가 사격장에서 유산했다. 형에 의하면 그 암소가 무언가 이상한 것을 씹고 있어서 자세히 보니 태였다고 했다. 형은 암소 주변을 살폈고, 피와 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송치를 발견했다고 했다.

 

너 댓 명에 달하는 목장 남자들은 그 때 겨우 스무 살 새댁이었던 형수가 해주는 밥을 먹었다. 형수는 양양 쪽 산골에서 자랐기에 산나물이나 버섯을 잘 알았다. 우리는 형수가 직접 캐 오는 산나물국에 산나물 반찬으로 고봉밥을 먹었으며, 항고에 꾹꾹 눌러 담아 주는 점심을 보자기에 싸서 둘러메고 사격장으로 나갔다.

 

밤에는 형네 방에 둘러 앉아 막걸리 내기 뽕을 치며 떠들썩하게 놀다 잤다. 뽕이요! 하면 웃음소리가 나고, 낙장불입이니 뭐니 해서 시끄럽기 마련이다. 그날도 그러다가 오줌을 누러 나왔는데 짙은 안개 속에 소 같은 것들이 뛰어 다니는 게 보였다.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어서 소 마당을 바라보니 소 마당이 텅 비어 있었다. 그제야 안개 속에서 꼬리를 빳빳이 쳐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들이 우리 소인 것을 알았다.

 

동이 트도록 안개 속을 헤매며 소를 찾았다. 일부의 소들은 마을까지 내려가서 남의 밭을 망쳐 놓아 변상해야 했다.

그날 밤 소들은 무언가에 쫒기고 있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호랑이나 표범이었을 거라는 얘기는 있었지만 믿어지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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