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인류역사에서 인간과 삶을 함께 해온 동물이다. 때로는 농경 수단으로 또 때로는 교통수단으로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의 선봉장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인류사에는 수많은 명마들이 탄생했다.

우선 동양에서는 삼국지에 나오는 명마 적토마(赤免馬)를 꼽을 수 있다. 온 몸이 선혈처럼 붉은 적토마는 삼국시대의 명장인 여포와 관우를 태우고 30여 년이나 전장을 누볐다. 하루에 천리를 가도 지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천리마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또한 유비가 탔던 적로마(的盧馬)는 유비의 인품을 드높이는 일종의 도구로 설정된다.

말(馬)로 세계를 제패했던 징기스칸이 탔던 말들도 유명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징기스칸이 탔던 말의 이름은 기록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징기스칸은 몽골의 야생마들 중에서 가장 힘이 세고 날쌘 말을 골라 전장을 누볐다. 수시로 말을 바꿔 타면서 전쟁을 치렀다. 징기스칸과 그 일행들은 한겨울에 군량미가 떨어질 경우 말린 말고기 육포를 씹으며 전쟁을 치렀다. 어떤 때는 징기스칸이 탔던 말을 잡아 군사들의 배를 채웠다는 야사도 전해 온다. 징기스칸은 말위에서 음식을 먹고 말 위에서 잠을 자면서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아무래도 나폴레옹이 탔던 말들이 관심을 모은다. 르 비지르가 가장 유명하다. 백마인 르 비지르는 특히 눈 밭을 쏜살같이 잘 달렸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외에도 나폴레옹이 탔던 말은 르 사하라, 르 마조르, 르 쉐이크, 르 파밀리에, 르 디스탱게, 르 트리옴판 등이 있다.

인류사가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명마의 패턴이 바뀌게 된다. 영국에서 경마가 창시되자 가장 잘뛰는 말이 명마가 되고 있다. 경주마의 계보는 고돌핀아라비안, 달리아라비안, 바이얼리터키 등 3대 시조에서 비롯된다. 1999년에 사망한 미스터프로스펙터의 경우 1회 교배료가 100만 달러(한화 11억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대한민국 경마 93년의 역사에서 독특한 이력의 경주마는 ‘아침해’다. 신설동 경성경마장에서 활동하던 아침해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민가에서 지내게 되었다. 미 해병에게 발탁되어 군마로 팔려갔다. 미 해병대는 이 말의 이름을 레클리스(Reckless)로 바꿨다. 1953년 경기도 연천의 소위 네바다전투에서 5일 간 51차례의 탄약을 실어나르며 혁혁한 공을 세워 미 해병대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영웅 대접을 받으로 안락한 노후를 보냈다.

순수 경주마로 오랫동안 회자되는 명마는 단연코 ‘에이원’이다. 1969년에 도입된 호주산마로 71년 25전 25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신화적 존재다. 공식 기록으로만 50전 46승, 홍수가 일어나 뚝섬경마장이 물에 휩쓸려 기록이 없어진 기간까지 포함하면 무려 72승이라는 불멸의 성적을 냈다. ‘에이원’의 뒤를 잇는 명마는 80년대의 전설 ‘포경선’이다. 84년에만 경마대회에서 5승을 하며 이름을 떨친 ‘포경선’은 85년 9월부터 87년 7월까지 지용철 기수와 김명국 기수, 김귀배 기수 등을 태우며 15연승이라는 대기록으로 뚝섬을 점령했다. 그랑프리 2연패를 포함, 통산 전적 25전 20승 2착 1회를 기록했다.

더 이상 적수가 없어서 씨암말로 화려하게 은퇴한 ‘가속도’는 90년 6월에 데뷔, 91년 12월에 은퇴할 때까지 13전 12승을 기록했으며, 암말임에도 불구하고 ‘포경선’ 이후 그랑프리 2연패를 차지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더 이상 적수가 없다고 판단되어 강제로 씨암말로 변경된‘가속도’는 6마리의 자마를 생산해 한국경마 발전에 기여했다. 이후 한국경마는 대견, 샛강자, 당대불패, 무패강자, 미스터파크, 경부대로 등이 명마계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작 성 자 : 김문영 kmyoung@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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