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식 감독의 DEAR MY CLASSIC GIRL(5)

마장마술과의 인연
마장마술로 전향하기 전에도 마장마술 속보와 장애물 속보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마장마술 속보는 앞다리의 움직임이 화려해야 하며, 보폭은 더욱 크고 일정하게 움직여야 하는 등 이런 여러 가지가 장애물 말들의 속보와는 달라야 한다고 스쳐지나가듯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장애물 선수 시절인 2004년과 2005년 사이에 마장마술을 전문으로 하는 여학생이 우리 선수단의 학생 선수로 지원을 했다. 당시에 우리 선수단에는 마장마술을 전문으로 하는 선수나 코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 선수는 우리 선수단에서 함께 운동하고 싶어서 지원했고, 그 학생의 말에 대한 사랑과 노력을 인정받아 우리와 함께하게 됐다.

그 학생은 말을 사랑하는 마음과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하는 모습이 보여 보기 좋았다. 그렇지만 마장마술을 지도해줄 코치가 없었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당시 나는 비록 마장마술 선수가 아니었지만, 그 학생을 지도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 학생에게는 2두의 마장마술 마필이 있었다. 한 마리는 수준급의 말이었고, 다른 한 마리는 별다른 특성이 없는 보통의 말이었다. 수준급에 있는 말은 그 학생이 매일매일 기승했고, 나는 두 번째 보통 수준의 말을 가끔 기승을 했다.

두 번째 말을 잠시 표현하자면 마치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평원 나무그늘에 한가로이 앉아 먹은 풀을 되새김질 하는 젖소를 연상케 할 만큼 덩치가 크고, 무겁고, 움직임이 게으른 말이었다. 그 당시는 내가 마장마술에 대해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때라 그 말을 기승하는 게 귀찮다고 느껴지곤 했다. 실제로도 그 녀석을 타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들었다. 녀석에게 별다른 기대 없이 운동했지만, 내 성격상 안일한 운동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언제나 녀석을 타고나면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을 만큼 열심히 훈련했다.



호기심을 갖게 된 Elevate Step
그러던 어느 날 그 게으른 녀석이 Elevate Step을 아주 짧게 서너 발걸음을 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태껏 말을 타면서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Elevate Step을 경험했고, 적지 않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어! 이 말도 이런 속보를 할 수 있네!’

그 후 나는 게으른 그놈을 기승할 때마다 매번 Elevate Step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놈은 절대로 호락호락하게 허락하지 않았다. 가물에 콩 나듯 가끔만 Elevate Step을 보여줘 나를 감질나게 했다. 녀석과의 일이 계기가 돼 나는 Elevate Step을 좀 더 알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Elevate Step은 내 몸으로 리듬을 체감하고, 방법을 터득해야만 더 정확한 Elevate Step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회사 부근에서 작은 승마장을 운영하고 있던 S선배를 찾아가서 Elevate Step을 잘하는 놈을 좀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마장마술 종목에서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종목에서 금메달 5개를 보유하고 있는 선배는 고맙게도 내 부탁을 흔쾌히 허락해줬다. 당시에 선배가 러시아에서 수입해온 말을 갖고 있었는데 그 말은 Elevate Step을 정말 잘하는 말이었다. 그 말 기승을 허락받은 나는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이후 회사에서 모든 훈련을 마치고 선배 승마장을 찾아 Elevate Step을 배우기 시작했다. 새로운 느낌이었다. 마치 커다란 물풍선 위를 걸어가는 느낌이랄까?

러시아에서 온 말에게서 배운 느낌을 게으른 놈에게 접목해봤다. 게으른 놈도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전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참 재미있게 운동을 하던 중에 그 학생 선수가 학교 졸업과 동시에 다른 승마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우리 회사 규정상 학생 선수는 우리와 함께 훈련할 수 있지만, 학교를 졸업해 일반 선수가 되면 선수단의 일원이 되지 못하는 한 우리와 함께 훈련하지 못하게 돼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 학생은 우리와 헤어져 다른 곳에서 운동하게 됐고, 짧은 나의 Elevate Step 배우기 과정은 끝나고 말았다. 그래도 Elevate Step이 어떤 건지, 어떤 느낌으로 가르치고 훈련해야 하는지 희미하게 내 몸 속에 각인됐다.

CG에게 Elevate Step 가르치기
나는 CG(Classic Girl, 이하 CG)를 처음 기승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Elevate Step을 추구하고 있다. 낮은 클래스 경기에 출전할 때는 화려한 걸음이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높은 클래스 경기에 출전하면 화려한 걸음이 경기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CG와의 탐색전이 끝나갈 무렵, Elevate Step에 대한 나의 욕망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채찍을 사용해 후구와 뒷다리의 움직임을 활성화시키고, 내가 원하는 속보의 리듬에 맞춰 규칙적이고 지속해서 CG가 내 요구를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장애물만 넘던 늦깎이 말이 늦깎이 마장마술 전향선수의 미숙한 욕심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생겼지만 그럴 때마다 최대한 노력을 해보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내 요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CG를 채찍을 사용해 때로는 강하게 훈련시켰다. 그런 훈련을 한 날이면 내 마음은 언제나 흔들렸다. ‘과연 될까?’ ‘내가 되지도 않는 일에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닐까?’ ‘좋은 마장마술 말들은 Elevate Step을 아주 쉽게 한다던데, 정말 선천적인 능력 아니면 도달할 수 없는 걸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 즈음해서 나는 ‘만약 CG가 Elevate Step을 하지 못한다면 굳이 애써서 고생하며 가르치고 배울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더 높은 클래스 경기에 출전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지쳐버린 나의 신념과 간절한 기다림의 한계점에 다다르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Elevate Step을 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끊임없는 훈련을 통한 노력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훈련하던 어느 날, 드디어 CG가 감동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CG가 반응을 보이자 나는 신이 나서 훈련 시간을 한참 늘려 한 번이라도 더 Elevate Step을 해보려고 했다. 욕심이 과하긴 했지만, 훈련 후에는 칭찬도 아끼지 않고 많이 하며 그 시간을 즐겼다.

Elevate Step을 할 때는 고삐의 연결이 강해야만 했다. 주먹의 움직임도 리듬에 맞춰야 하는데 CG의 입과 강하게 연결돼있는 주먹을 위쪽으로 들어 올리듯 움직여 도와줘야 했다. 그 이유 때문인지 오른쪽으로 Tilt가 생기고 오른쪽 Bending이 되지 않았다. 다른 많은 부분이 엉망이 됐었지만, Elevate Step을 읽히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고, 다른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은 작은 문제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말을 훈련시킬 때는 어디까지 어떤 용도로 가르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그 용도만큼 잠재 능력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잠재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데 욕심만 부려 높은 수준의 움직임을 요구하면 성과 없이 말과 기수 모두 마음에 상처만 입게 된다.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훈련 중에 우선해 가르쳐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 나는 처음 마장마술 훈련을 시작할 때 모습과는 달리 열정이 퇴색돼 하루하루를 간신히 넘기던 시기였다. 나의 불분명하고 불안한 믿음 속에서도 CG는 나의 과도한 요구에 최고의 인내력을 발휘해줬다. 훈련은 계속 이어졌고, 가끔 내 훈련 모습을 지켜보던 선후배가 나에게 부드럽게 타라고 조언을 해줬지만 그렇게 타야만 하는 내 마음도 답답하기만 했다. ‘나도 부드럽고 우아하게 타고 싶다고요’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CG는 얼마 전부터 Elevate Step을 조금은 능숙하게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보란 듯이 멋지게 속보를 하고 있다. 내가 좋은 말들의 움직임을 보고 부러워했듯이 그 누군가도 CG의 속보를 보고 부러워할 것이다.

멋지게 Elevate Step을 하는 CG 등에 앉아 있는 느낌은 솔솔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한적하고 아담한 공원에 있는 작게 흔들리는 그네 위에 앉아 있는 것 같다. 한없이 편안하고 오래도록 앉아있고 싶은 기분이 든다. 가끔은 기름칠이 충분치 않아서 삐걱 소리도 들리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 소리에 별로 개의치 않고 그 시간을 즐기고 있다.


▲낮은 클래스 경기에 출전할 때는 화려한 걸음이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높은 클래스 경기에 출전하면 화려한 걸음이 경기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능숙하게 Elevate Step을 하는 CG 등에 앉아 있는 느낌은 솔솔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한적하고 아담한 공원에 있는 작게 흔들리는 그네 위에 앉아 있는 것 같다.


교정교열= 황인성 기자


작 성 자 : 황인성 gomtiger@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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