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식 감독의 DEAR MY CLASSIC GIRL(7)

CG(Classic Girl, 이하 CG)가 어려서부터 마장마술을 배웠던 말이거나 내가 어려서부터 마장마술을 전문으로 한 선수였다면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장애물을 해오던 CG와 나는 마장마술에 대한 기초 지식은 고사하고, 마장마술에 걸맞지 않은 차분하지 못함으로 인해 힘들고 먼 여정을 거쳐 왔다. 그 당시는 훈련할 때마다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처음에 CG를 만나서 마장마술을 시작할 때는 Grand prix까지 소화할 수 있을 거란 상상은 할 수조차 없었다. CG는 그저 Ricco의 훈련을 보충하기 위한 마장마술 연습용 말로써의 기능만 수행해도 고맙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승마 경력이 결코 짧지 않았지만 수십 년 만에 접한 마장마술은 내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Ricco에게 뺨 맞고 Classic Girl에게 눈 흘긴다?
당시 내가 느끼는 중압감은 상당했던 듯했다. 마장마술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 경기에 출전해야만 했고, 경기에서 좋은 결과도 내야 했다. Ricco와 함께 근근이 버텨가고 있던 차에 만난 CG는 그 중압감에서 오는 내 스트레스를 모두 받아줘야만 했다. Ricco와 경기에 출전해 뜻대로 되지 않는 과목에 대한 해답을 Ricco가 아닌 연습용 말인 CG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Ricco의 부족한 움직임도 CG와의 연습을 통해 좋은 감각을 얻으려고 했다. CG는 나와 Ricco의 욕심을 채워줘야 하는 가엽고 고달픈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런 고달픈 하루하루가 계속돼도 CG는 묵묵히 시키는 대로 잘 따라왔다. CG는 Ricco의 모자란 훈련을 채워주는 것 외에도 종종 나와 호흡을 맞춰 대회를 출전하기도 했다. 내 부족한 훈련을 채워주는 일 외에도 직접 대회 출전까지 해야 하는 CG의 이중고가 시작된 것이다.


양보 없는 전쟁 같은 훈련
끝없는 내 욕심을 채워주면서도 CG가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내가 계속해서 요구하는 Elevate Step이었다. 이를 요구할 때는 강한 주먹이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강한 고삐의 연결이 없으면 Elevate Step을 하는 것을 너무나 힘들어했다. 때로는 내 알량한 아량을 베풀어서 주먹을 양보해 편안하게 해주려고 하면 ‘그런 알량한 아량 필요 없어’라고 대답하듯이 혜택을 거부한다. 이런 CG의 급한 성격은 여전히 큰 문제이지만 당시에는 내게는 너무나도 어렵고 심각한 문제로 여겨졌다. 고삐를 편안하게 해줘 평보를 시켜줘도 고삐가 길어진 만큼 목을 길게 늘이고 재갈을 물고는 금방이라도 속보하려는 듯이 급한 평보를 했다. 이렇게 되니 나 또한 쉴 틈이 없다. 이따금 이런 CG의 행동에 화가 난 나는 CG가 급하게 평보를 하려고 하면 급작스럽게 고삐를 강하게 당겨 정지시키고 다시 평보를 시켰다. 이에 CG도 절대 양보하는 경우가 없었다. 내가 다시 평보를 시키면 또다시 급한 걸음을 가려고 재갈을 꽉 물고는 앞으로 전진하려 했다. 나는 이에 더욱 화가 나서 고삐를 잡아채듯이 당기기도 했지만, 그것은 오로지 나의 화풀이였고, CG의 훈련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쯤까지 오면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뻗친 나와 반항이 극에 달한 CG 사이에는 어떠한 조화로움이 존재할 수 없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는 대립·긴장 관계가 남을 뿐이다.

강해지는 Draw-rain의 사용
이때부터는 보조 고삐로 사용돼야 할 Draw-rain의 사용이 점점 강해진다. 이미 보조 고삐의 도를 넘어선 상태가 되며 재갈과 직접 연결이 된 고삐의 사용보다 더 강하게 사용이 되며 움켜지고 있는 길이 또한 짧아진다. 서서히 둘 사이에 Training은 없고 전운만이 감돌뿐이다. 서로 밀고 당기는 싸움의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면 고삐를 움켜잡은 내 손아귀의 힘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한다. ‘이제 그만할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어’라는 격한 감정은 어쭙잖은 자존심과 합심해 다시 고삐를 움켜잡는다. 마침내는 고삐는 길게 늘여주고 Draw-rain만을 잡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훈련. 훈련이 잘되어질 리 만무하다. 둘 중에 어느 누가 항복을 하지 않으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쟁은 계속된다.

내게, 아니 내 손아귀가 침묵으로 일관하는 CG의 대항에 힘을 잃기 시작하면 최후의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끝까지 CG를 이겨보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Draw-rain을 양손에 한 바퀴 감아서 잡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한다. CG의 모든 걸음은 망가지고 CG의 Frame은 처참한 모양으로 엉망이 된다. 이제 둘은 서서히 지쳐간다. 그제야 처절한 싸움은 끝이 난다. 타협이나 양보가 아닌 포기를 하며 마무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오랜 전쟁 끝에 찾아온 냉전의 여운은 계속 이어진다.



적정선을 유지하는 오후 훈련
전쟁 같은 훈련에 지친 내 마음도 약해지기 시작하며 운동을 마치고 평보 하는 동안 머릿속이 복잡하다. 내가 너무 CG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는지 걱정이 든다. 솔직히 말하면 소모적인 싸움으로 CG가 우리 여정을 포기해 버릴까 봐 더 걱정이었다.

100여분가량의 오전 훈련을 마치고 나면 점심시간 동안은 잠시나마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2차 전쟁을 치를 준비에 돌입한다. 오전 훈련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으니 오후 훈련은 더욱 조급한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다. 잠깐의 휴식으로 일정 부분 체력이 회복됐다고는 하나, 둘은 이미 지치고 의욕이 떨어져 있다. 그리고 오전 훈련이 마음에 걸린다. 오후 훈련은 소모적인 공방을 최대한 피하고 서로 마음 상하지 않는 적정선에서 훈련을 진행한다.

나와 CG와의 거칠고 고단한 훈련은 그 후에도 한참을 더 이어졌다. 가끔 우리의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되겠어?”라며 한마디씩 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될 거야. 반드시!”


▲당시 나는 CG가 그저 Ricco의 훈련을 보충하기 위한 마장마술 연습용 말로써의 기능만 수행해줘도 충분하겠단 생각을 갖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는 대립·긴장 관계가 남을 뿐이다.
▲나와 CG의 싸움을 지켜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되겠어?”라며 우리의 여정에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반드시 해낼 거라고 믿었다.



교정교열= 황인성 기자

작 성 자 : 황인성 gomtiger@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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