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식 감독의 DEAR MY CLASSIC GIRL(8)

서로 감정 조절의 한계선을 넘지 않다
CG(Classic Girl, 이하 CG)와의 대립의 칼날이 조금씩 무뎌지면서 우리는 서로 조금씩 신뢰를 쌓아 갔다. 격렬하고 고단하게 이어져 온 대립은 결국 서로에게 상처와 불신만을 줬지만, 그 격렬한 싸움이 상처만을 남긴 것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포기할 생각으로 대립했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겠지만, 커다란 꿈을 향한 목표가 있는 대립이었기 때문에 남는 것이 있었다. 서로의 좋고 싫음, 서로의 장점과 약점. 격렬했던 대립의 크기에 비해 아주 미미한 결과물이긴 했지만 나름 의미가 있는 수확물이었다.

그동안 이어지던 싸움은 어떤 계기로 인한 건지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잔잔한 갈등 관계로 축소됐다. 이 시기에는 감정이 격해지지 않는 선에서 서로 양보를 하곤 했다. 나는 CG에게 내 감정 조절의 한계선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CG도 어지간하면 내 부조를 못 이기는 척하며 받아줬다. 나는 이런 상태가 부족하다고 느꼈지만 서두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급하게 달려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이후부터는 작은 실수에 연연하지 않고 모른 척 넘어가곤 했다. 예를 들면, Half-pass할 때 CG가 스스로 균형을 잡지 못해 내가 바라는 완전한 Bending이 되지 않더라도 나는 그것을 전처럼 깐깐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조금 더 훈련해서 이해하면 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이런 너그러운(?) 마음 덕분인지 Half-pass뿐만 아니라 훈련을 하는 모든 과목에서 조금씩 좋은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너무 게으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태까지 힘차게 달려왔으니까 좀 쉬엄쉬엄 가도 되지 않겠나 싶었다. 한동안은 조금 한가로운 훈련이 지속됐다.

내가 뭐 하고 있지?
나는 일상생활에서도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하지 못한다. 전화를 하면 전화만 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전화 받으면서 글을 쓰기도 하고 신문도 읽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가끔 한가롭고 빈둥거릴 때는 신문을 펴놓고 전화를 받기도 하는데, 둘 다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전화 통화가 끝나면 그제야 ‘어디까지 읽었지?’하며 눈에 힘을 주고 다시 신문을 읽어 내려간다.

이런 비슷한 태도로 한가롭게 훈련을 하던 중간마다 ‘내가 뭐 하고 있지?’라고 자성하며 헐거워진 마음을 다잡고 훈련을 재정립하곤 한다. 그때 되면 내 조급증은 재발하며, 평소보다 도가 넘는 요구한다. 이때가 되면 서로 간에 계약된 건 없지만 불안하게 유지되던 평화협정은 다시 금이 가기 시작한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가 감정 조절의 끈을 놓으면 CG를 대하는 게 여간 깐깐해지는 것이 아니다. 급기야 체벌에까지 이어진다. CG의 성격은 내 감정을 자극한다. 대부분 말들은 훈련할 때 잡고 있던 고삐를 양보하면 같이 양보해 자신도 편안하고 기승자도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CG에게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 자신의 목이 최대한 편해질 때까지 양보를 해주지 않으면 절대 선심을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 주먹은 항상 긴장돼있고, 연결도 최대한 긴장이 풀어진 상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CG를 기승하는 동안 잠시도 쉬지 못하는 형편이다. CG의 성격을 고쳐보려고 많은 노력을 해봤다. 하지만 만만지가 않았다. 천성은 바꿀 수 없다고 했던가. 워낙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더욱 쉽지 않았다. 급한 성격을 개선하기 위해 출발 후 바로 정지하고, 또다시 출발과 정지를 반복해 CG가 출발하라는 부조를 강하게 받아들이는 것보다 정지하라는 부조를 더 잘 받아들이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CG는 내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했다. 난 CG에게 무척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화는 급기야 극한 감정으로 치닫고, 체벌까지 이른다. 그간 아슬아슬 이어오던 상호 신뢰는 산산조각 나고 만다.



양보와 체벌의 딜레마
훈련을 마친 후 훈련 과정을 되돌아보면 그 순간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한 나 자신을 질책한다.
다음 훈련부터는 그러지 않겠다며 스스로 다짐하지만 나 혼자만 자책하고 다짐한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렇다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쉽사리 넘어갈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가장 기본이 되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기술 습득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 완성도가 10이라면 CG의 완성도는 6~7정도밖에 기대할 수가 없을 것이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이해하기 싫은 건지 알 길이 없는 CG의 속마음이 야속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속없이 매일매일 좋은 감정으로 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내게 CG는 특별한 말이다. 멍청하게 감정 조절 실패로 인한 체벌 때문에 내 목표, CG와의 신뢰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 양보가 우리 사이의 신뢰를 쌓는 거란 사실을 되새기며 훈련에 임하겠지만 올바른 훈련을 위해 체벌 또한 버릴 수 없으니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정지(Halt)
명성이 자자한 유명 마장마술 선수를 찾아간 한 리포터가 “특별한 훈련 방법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라고 물었다. 그 선수는 “저는 일 년 동안 정지 연습을 만 번 이상 합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만 번 이상. 어마어마한 횟수다. 매일매일 운동하면서 30회 정도 정지 연습을 하면 우리도 잘할 가능성이 있다. 거기에 1회씩만 더 횟수를 늘려 연습한다면 아마도 확실히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 이야기를 듣고 정지 연습을 참 많이 한다. 그러나 매번 연습할 때마다 다르고 정지 하나만도 정말 어렵게 느껴진다. 특히 CG의 성격은 오로지 전진하려고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이런 급한 성격을 지닌 말들은 성격적 특성으로 인해 체중이 언제나 앞쪽으로 쏠린다. 그래서 정지에서 더욱 실수할 확률이 높다. 말이 정지할 때에는 체중이 후구로 옮겨지면서 후구에 의해서 정지를 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했을 때 후구가 뒤쪽으로 빠지지 않는 상태의 좋은 모습으로 정지할 수 있게 된다.

대회에 참가해 경기장 입장이 허락하는 종이 울린 후 입장해 정지 전까지는 실수할 확률이 가장 적다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말이 한동안 움직이다가 하는 게 아니라 시작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반의 준비를 다 마치고 정지 상태에서 시작을 하거나 연속된 동작이더라도 좋은 입장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충분한 연습이 없거나 기승하는 말의 습성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다면 결코 쉽지 않다. CG의 성격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나도 실수할 때가 종종 있다. 입장해 처음 해야 하는 게 정지하고 부동의 상태에서 심판장에게 예의를 갖추고 다시 속보로 경기를 진행하는 것이다. 경기를 시작하기 위한 정지의 첫인상과 좋은 출발은 심판을 기쁘게 만들 것이다. 정지를 잘하기 위한 연습은 항상 충분치 않다고 느껴진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CG의 훈련을 돌이켜보니 나 또한 정지 훈련을 게을리하고 있다고 새삼 느껴진다.



CG의 급한 성격과 좌 구보를 할 때 왼쪽 후구의 움직임이 우 구보할 때 후구의 움직임보다 직진성이 떨어져서 나는 입장 할 때 언제나 우측 구보로 입장한다. 난도가 낮은 종목에서는 속보로 입장하기 때문에 왼쪽에서 입장을 하는 게 경쾌해 보여서 왼쪽에서 하지만 구보로 입장할 때는 우측으로 할 때가 좀 더 uphill tendence가 보인다. 직진성 또한 더 우수하기 때문에 가능한 우측 구보로 입장을 한다. 좌측 구보를 하면 수축시킬 때 Short-neck이 되며 이로 인해 어깨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아서 좌측 구보 입장을 자제한다. 아니면 내가 오른쪽 구보를 더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승하는 다른 말도 항상 오른쪽 구보로 입장을 하는 것을 보면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이유가 있을 거다. Ricco와 CG 두 녀석 모두 오른쪽 구보가 훨씬 안정감 있다고 느껴진다. 이렇게 우측 구보로 입장을 하는 연습을 하고 이제는 X지점에서 정지하는 연습을 한다. 정지를 할 때 CG는 완전히 수축이 이루어지지 않고 체중이 앞쪽으로 이동돼있는 상태에서 정지해서인지 정지 후에 균형을 잃고 부동이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정지하는 순간에 수축이 잘 이뤄지면 정지도 안정감 있고, 정지 후에도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다. 하지만 CG는 수축을 시키기가 여간 힘이든 게 아니다. 수축을 시키려고 하면 목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재갈을 물고 순간적으로 반항하며 이때 스스로 몸의 균형을 잃으면서 잠시 동안 리듬이 흐트러지기도 한다. 때로는 3절도의 구보가 아닌 4절도의 구보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완전히 수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지를 하며 동시에 평보의 걸음 수가 많아진다. 이는 수축이 부족해서 신속하고 올바르게 균형을 잡지 못하는 걸 의미한다.

다른 운동할 때도 재갈을 꽉 물고 양보하지 않아서 CG의 체중은 언제나 앞쪽으로 치우쳐있다.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CG의 앞쪽으로 치우쳐있는 중심을 후구 쪽으로 옮겨야 한다. 이 사실을 잘 알지만 중심을 이동시켜 놓기가 쉽지 않다. 구보하던 중 극도의 수축 구보를 두 세 걸음하고 다시 보통 구보하고 다시 수축하는 동작을 여러 번 반복했다. 이러면 대부분의 말들은 그날 하루 정도는 어느 정도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다음날 다시 하면 조금 어려워하다 전날보다 조금 빠르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보통 이런 식으로 훈련의 성과가 점차 나타나는데 CG는 아직까지도 이 훈련이 잘되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정지하고 나면 네 발을 직사각형으로 모아 정확하게 서 있도록 해야 한다. 거울이 설치된 마장에서 정지 연습을 했다. 정지하는 마지막 순간에 양쪽 박차를 약하게 양쪽 배에 가져다 놓고 좌우로 비뚤어지는 실수에 미리 대비하거나 비뚤어지는 것을 막아줬다. CG는 정지 마지막 순간에 왼쪽으로 후구가 틀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정지를 할 때 왼쪽 기좌를 뒤로 조금 더 빼서 이를 미리 막아줬다. 이렇게 한쪽으로 틀어지는 현상 또한 정지하는 순간에 수축이 잘 이뤄지지 않아서 일어난다. 만약 네 발을 모으려고 하는데 CG가 이해하지 못해서 시간이 지체되면 두 세 걸음 앞으로 움직이게 해 다시 맞췄다. 그래도 잘 되지 않는다면 다시 원운동을 한 바퀴 한 후에 같은 자리에서 정지하는 방법으로 훈련을 했다. 정지가 잘 됐다면 곧바로 앞뒤, 어깨와 엉덩이를 톡톡 두들겨 칭찬을 듬뿍 해줬다. 이렇게 부동자세를 유지한 채 몇 초가량 서있게 한다. 이때 다시 훈련을 위해 움직이기 전에 칭찬을 해줘 CG가 올바른 정지와 참을성 있는 부동을 함으로 칭찬받고 있다는 것을 구분해 이해할 수 있게끔 칭찬의 순간도 적절히 조절했다. 이때 조심했던 것은 칭찬하는 동안에 CG가 스스로 움직이지 않도록 했다. 기승자는 이를 면밀히 판단해 기승자의 의지에 의해서 말이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만일 정지 후에 속보로 출발하는 훈련을 한다면 출발하기 전에 말이 다음 동작 준비를 할 시간을 줘야 한다. 출발 시에는 첫발부터 속보로 갈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정지하는 동안에도 수축이 이뤄져 있으면 더욱 쉽게 할 수 있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이후부터는 작은 실수에 연연하지 않고 모른 척 넘어가곤 했다
▲양보가 우리 사이의 신뢰를 쌓는 거란 사실을 되새기며 훈련에 임한다. 하지만 올바른 훈련을 위해 체벌 또한 버릴 수 없으니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명성이 자자한 유명 마장마술 선수를 찾아간 한 리포터가 “특별한 훈련 방법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라고 물었다. 그 선수는 “저는 일 년 동안 정지 연습을 만 번 이상 합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훈련이 중요하다.

교정교열= 황인성 기자

작 성 자 : 황인성 gomtiger@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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