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식 감독의 DEAR MY CLASSIC GIRL(24)

CG와의 추억을 돌이켜보며
참 급하게 달려왔다. 훈련하는 동안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아 답답할 때도 종종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를 이겨내기 위해 막무가내로 밀고 달려온 것 같아 CG에게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답보변환을 가르칠 때와 tense를 없애기 위한 과정, Grand prix에 출전하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최면을 걸던 이기적인 나만의 욕심들까지 돌이켜 생각하면 아쉬운 생각도 든다. 평화롭고 잔잔한 바다 위에서 바람이 시키는 대로 돛을 맡기면 되었을 것을 종잡을 수 없이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을 우격다짐으로 헤집고 들어간 것 같기도 하다. 사선에서 살아 돌아온 기분이 들기도 하고, 살아 돌아온 영웅담을 미화시켜 어쭙잖은 글솜씨로 옮긴 듯한 기분이라 창피하기도 하다.

공언이 허언이 되지 않기를
처음 시작할 때 아무런 계획도 없이 CG를 가르쳤다. 가르치면서 이곳저곳 벽에 부딪혀 무참히 부서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선천적으로 강하고 끈질긴 천성 덕분에 힘든 고비를 여러 번 넘겨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훈련시키는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거리며 반신반의하는 승마인도 여럿 있을 것이다. 혹여 그렇더라도 승마인을 만나면 꼭 Grand prix까지 가르쳐 보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했었다. 혹시라도 내 공언이 허언이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방편으로 삼기도 했다. 그들과의 약속 아닌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무감이 나 스스로를 만들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더욱 훈련에 매진을 하는 채찍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수없이 많은 대립과 갈등들은 어떠한 말로도 대신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 많았던 대립과 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단정하면서 훈련해왔는지도 모른다.


최고 난도에 도전
어찌됐거나 나와 CG는 비록 늦깎이로 시작을 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해왔고, 최고의 성적은 아니지만 최고 난도의 경기에 참가했다.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최고 난도에 도전했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이렇게 CG를 Grand prix까지 가르칠 수 있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포기하지 않았던 강한 인내력이라고 생각한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인내력만으로 가능했었을까? 물음표를 달지 않을 수 없다. 이른 아침 회사에 출근을 하기 위해서 운전을 하는 동안 거의 매일 같이 그날그날 훈련할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아직까지도 이렇게 훈련을 구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으로 인해 마음이 설레 인다. 또한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지는가 싶다가도 양 어금니를 꽉 깨물어 어떤 다짐을 해 보기도 한다.

즐기는 법
‘知之者 不如 好之者, 好之者 不如 樂之者‘
이 말은 논어 옹야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아는 것은 좋아하느니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아마도 나는 CG와의 훈련을 이 글의 마지막 구절처럼 즐기면서 훈련을 해왔지 않나 싶다. 즐기면서 해오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훈련을 시키면서 심한 대립과 갈등, 싸움으로 길을 잃고 벼랑 끝에 섰었던 날은 마음 아파하고 후회도 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숱한 다짐도 해보았다. 또한 극심한 대립을 했던 날은 훈련을 하고도 그 열이 풀리지 않아서 하마 후에 또 다른 방법으로 화풀이도 했다. 그런 날은 밀려오는 자책감 때문에 퇴근 후에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었고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지우려고 애써 일찍 잠을 청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서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출근을 하면서 전날의 기억을 잊고 훈련할 모습을 상상해본다. 기대감 속에 우려가 뒤섞여서 한 쪽이 찌그러진 안정감이 떨어지는 모습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심신이 지쳐있는 우리는 이어지는 며칠간의 훈련에 격렬한 대립을 자제하며 서로 조금씩 양보해가며 활력을 되찾을 때까지 높은 기술을 요하는 운동을 자제했고 CG가 자신 있어 하는 운동 위주로 훈련해 빠른 회복을 기대했다. 때때로 그 격한 대립에서 벗어나면 CG는 한동안 훈련의 높은 습득력을 보였고, 나도 이에 걸맞게 집중력을 발휘하여 기승했다. 격한 대립으로 서로 마음에 상처를 줬지만 반면 한걸음 아니 여러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오랜 벗 같은 CG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면 못다 한 회포를 풀기 위해 술을 거나하게 마시곤 한다. 그렇게 마치 술과 싸움을 하듯이 미친 듯이 술을 마시고 나면 다음 날 술병이 나서 많은 고생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술병이 났을 때는 그 메스꺼움과 속 쓰림으로 인해 여지없이 후회하며 다시는 그렇게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을 하곤 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다음에 또다시 친구를 만나면 전보다 더욱 술을 많이 마시게 된다. 왜냐하면 전에 술병이 난 이야기 안줏거리가 하나 더 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CG와의 추억은 이렇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같이 반갑고 허물이 없고 언제나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때로는 말다툼도 있지만 다시 만나면 반가워서 밤을 지새워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헤어지면 아쉽고 못다 푼 회포가 생각이 나서 다음 약속이 기다려지고 술병으로 앓아누울 정도로 피곤하지만 알지 못할 즐거움 때문에 다시 만나 술을 같이 마시고 싶어지는 그런 오래된 친구 같은 추억이 있다.


때론 연인처럼
그뿐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는 것 같은 야릇한 기대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약속장소에서 멋진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노라면 가슴이 설레고 입가에는 함박웃음이 피어오른다. 아침에 회사에 출근을 하면서 CG와의 훈련을 상상하면 설래 이고 입가에 엷은 웃음꽃이 핀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 같이.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억지로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나타났고 기다려지고 한결같이 즐거움을 느낀다.

내 사전의 ‘열정’
‘열정’ 백과사전에는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CG에 대한 내 열정은 다른 말로 고쳐 말하고 싶다. ‘억지로 의도하지 않지만 애정이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훈련에 열중하는 소중한 나의 마음’이라고.

감사합니다.

▲CG와 함께한 시간을 즐기면서 해오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CG에 대한 내 열정은 ‘억지로 의도하지 않지만 애정이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훈련에 열중하는 소중한 나의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제24회 연재를 끝으로 전재식 감독과 클래식걸의 일화를 담은 DEAR MY CLASSIC GIRL의 연재를 마감한다. 새해부터는 전재식 감독과 클래식걸이 아닌 다른 말들과의 스토리를 담은 새로운 연재물이 실릴 예정이다.

교정교열= 황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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