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 기수 부문 수상, 김용근 기수 인터뷰

제19회 말산업대상 릴레이 인터뷰 두 번째 주인공은 최우수 기수 부문 김용근 기수다. ‘파워블레이드’의 통합 삼관마 등극에 한 몫을 담당하며 5년 연속 최우수 기수 부문을 차지해온 문세영 기수의 아성을 깼다. 2006년 데뷔한 첫 해 23승을 거두며 화려한 데뷔를 했으며, 2012년에는 91승을 기록하며 시즌 최다승이라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올해부터 활동 무대를 렛츠런파크 부경에서 서울로 옮기면서 문세영 기수와 라이벌 매치도 경마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간 좋은 성적을 거둔 건 자신의 기량보다는 말의 능력이 좋은 덕분이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김용근 기수를 만나 말산업대상 시상과 인터뷰를 나눴다. -기자 말-

-기수가 된 계기는
특별한 계기보다는 우스운 과정일 수도 있다. 20살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다니면서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당시 피시방 사장님은 “너의 체격은 기수를 하면 딱이다”고 했다. 하지만 기수라는 직업을 몰랐다. 전라남도 함평 시골에서 자라서 경마가 있는지도 몰랐다.
대학교 적성도 안 맞았고 일을 해야 하는 나이 23살이 됐을 때,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체격이 작고 배운 것도 없고 그러다 보니 문득 예전에 피시방 아르바이트할 때 사장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기수라는 직업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우연히 기수협회 홈페이지를 알아냈다. 2003년 11월쯤인데 모집은 그다음 해 초라 급하게 준비를 했다. 사장님의 추천으로 그때 당시에 알아보진 않았지만 이렇게 나중에 생각이 나서 늦은 나이에 기수 후보생으로 들어갔다.

-‘파워블레이드’의 삼관마 탄생 과정은
‘파워블레이드’는 시대를 잘 만난 것 같다. 매년 경주 때마다 경쟁이 되고 수준이 비슷한 말들이 한두 마리씩은 있었다. 그리고 또 후반부나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배’ 때 수말들이 갑자기 힘이 차서 좋은 말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작년에는 ‘파워블레이드’가 뛸 때 뚜렷한 상대마가 없었다. 그나마 같은 조 ‘오뚝오뚝이’가 있었는데 단거리용 말이다. 최고의 관건은 ‘KRA컵마일’ 때이다. 우승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차이가 있었다. 그 당시엔 말 상태가 매우 안 좋았다. 안 좋은 상태에서도 우승했다. 이 말은 정말 능력이 있는 말이다. ‘코리안더비’ 때는 조교 시작과 동시에 무조건 우승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말 상태가 너무 좋았다.

-이전과 달리 성적이 좋아진 이유가 있다면
2005년에 데뷔해서 2012년 전까지 차츰차츰 조금씩 해마다 승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데뷔해서 2년을 타고 수습 기수를 마치고 군대에 갔다. 수습 기수 45승을 하고 군대를 2년을 갔다. 2009년에 복귀를 해 5개월을 탔다. 2009년에는 많이 안 탔지만 2010년에는 성적이 좋았다. 소속 조도 옮기고 2010년부터는 성적도 좋아지고 있는데 안 좋은 경마 관련된 일에 연루됐다. 일 년을 쉬고 다시 복귀했을 때 과거에 죄를 지었던 부분에 대해 사람들의 인식이 안 좋을까 봐 더 열심히 했다.
남들과 다른 스킬을 가지고 있어야 말을 더 태워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채찍을 가지고 나만의 스킬을 만들기 시작했다. 채찍질을 바꿨다. 엄청 강하고 인상 깊게 ‘회오리 채찍’이란 것을 만들었다. 남들은 한 대씩 연타로 때리는데 회오리 채찍은 팔을 돌리면서 때리는 형식이다. 타는 말마다 성적이 좋았다. 인기마는 인기마대로 비인기마는 비인기마대로 다 성적이 어느 정도 끌어 올렸다. 강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니 급부상하면서 인기도도 점점 높아졌다.

-무슨 일이든 항상 좋을 수만은 없는데
내가 경마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최고 위치에 오르고, 김영관 조교사님도 최고의 조교사이다 보니 안 좋은 소리들도 많이 들렸다. 19조 기수네, 19조와 레이스에서 만나면 봐주네 등등. 마주나 조교사분들도 직접 말씀은 안 하셨지만, 간접적으로 들었다. 사실 나는 아닌데 말이다. 내가 19조 말을 타지 않고, 상대편 말이 19조 말일 경우, 꼭 이기고 싶은 마음이고 이기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19조 말에게 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았다. 김영관 조교사님한테도 내가 이길 거라고 말하고. 이길 자신이 있다고 했는데 막상 경주에 나서면 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19조 말들이 단단하고 셌다. 그런 것들 때문에 안 좋았다가 ‘페르디도포머로이’ 사건이 터지면서 가장 안 좋았다.

-‘페르디도포머로이’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당시 ‘페르디도포머로이’를 타고 좋은 성적도 냈었고, 경마대회도 우승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19조 말들 중 안 타 본 말들이 없었고. 말들의 습성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선행마고 19조 말도 ‘오뚝오뚝이’를 선입마, 선추입하는 ‘메인스테이’를 내놨기 때문에 당연히 선행싸움을 시킬 거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선행을 가지 않고도 한 마리 두 마리 바깥으로 돌아서 우승한 경험이 두 번이나 있었기 때문에 ‘오뚝오뚝이’와 힘 싸움을 하며 굳이 손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선행을 가게 되면 가고, ‘오뚝오뚝이’가 마음먹고 나가려고 한다면 내주려고 했다. 따라가면서 견제를 해 ‘오뚝오뚝이’의 힘을 소진시키고, 난 힘을 아껴놨다가 ‘메인스테이’를 이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얼토당토않게 말이 3코너를 지나니 힘이 없었다. 이걸 보고 사람들은 선행을 안 가서 그렇다니 어쨌다니 말을 하는데 경주 동영상을 보면 다 알 수 있다. ‘페르디도포머로이’는 꼭 선행을 가서 이기는 말이 아니다.

-올해부터 활동 무대를 부경에서 서울로 옮겼는데
사실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부산에 가족이 있고, 부산에서 말도 잘 타고 돈도 많이 벌고 있는데 왜 굳이 서울에 가서 고생하느냐는 말도 많았다. 아내와 많이 얘기도 하고, 김영관 조교사님과도 상의를 많이 했다. 회사에서도 서울에 와 분위기를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가 있어 옮기게 됐다.
지금 한 달 정도 지났는데 재밌다. 처음 2주간은 몸이 적응이 안 되다 보니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응이 돼 괜찮다. 내 입장에서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것 같다. 부산보다 좀 덜 벌고, 가족들을 자주 못 보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아무래도 부경보다는 심적인 부담이 적다. 현재는 서울 생활이 흡족하다.

-앞으로 계획이라든지 목표는
작년에 대부분 이룬 것 같다. 19조 말들을 타기 전에는 경마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김영관 조교사와 인연이 돼 좋은 말을 타면서 기수로서 많은 것들을 이룬 것 같다. 한 해에 경마대회 9승을 한 기수도 흔치 않고, 이루고 싶은 건 대부분 다 이뤘다. 단지 꿈이 있다면 그랑프리와 대통령배에서 우승을 해보고 싶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의 꿈은 당연히 기수로 롱런하는 거다. 꼭 조교사를 해야겠단 마음은 없고, 몸 다치지 않고 롱런하고 싶다.

-끝으로 수상 소감은
2016년은 유독 운이 좋았던 해 같다. 삼관마 ‘파워블레이드’를 만나 좋은 한 해를 보냈다. 좋은 기회를 만들어준 마주와 조교사분에게도 감사드린다. 내가 항상 열심히 해도 경마팬에게는 좋게 보일 때도, 안 좋게 보일 때도 있을 거다. 하지만 모든 기수들이 경마팬을 위해 항상 열심히 한다는 사실은 알아줬으면 한다. 어느 기수도 열심히 안하려고 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웃는 날도, 슬픈 날도 있는데 모든 기수들을 응원해줬으면 좋겠고, 모든 분들이 대박나면 좋겠다.

▲국내 첫 통합 삼관마 탄생의 일등 공신인 김용근 기수는 5년 연속 최우수 기수 부문을 차지해온 문세영 기수의 아성을 깼고 제19회 말산업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2006년 데뷔한 김용근 기수는 데뷔 첫 해 23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데뷔했으며, 2012년에는 91승을 기록하며 시즌 최다승이라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황인성 기자(gomtiger@krj.co.kr)/박수민 기자(horse_zzang@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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