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식 감독의 ‘나와 함께한 녀석들’(18)



틈을 주지 않는 녀석과의 기 싸움
난 이런 성향의 녀석들은 첫 번째 시도에서 성공하지 못 하면 당해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녀석의 덩치는 일반 국산마의 크기가 아니었고, ‘웜블러드’만 했다. 덩치 값을 하는지 힘도 장사였다. 그리고 녀석은 처음 기 싸움에서 승리하는 법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난 녀석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게 집중했다. 녀석을 수송차에 태우기 위한 시도를 시작한 것이다. 처음 한두 번 도피하려는 미세한 움직임이 있긴 했지만, 나는 녀석에게 절대로 틈을 주지 않았다. 결국 난 녀석에게 승리했다. 녀석이 아주 순한 한 마리 양처럼 순순히 말차에 올라탄 것이다.

뒤따라오던 관리사는 허둥지둥 뛰어 칸막이를 닫으려고 했다. 난 관리사분께 잠시만 다시 나가달라고 했다. 녀석을 말차에서 천천히 돌려서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 녀석에게 많은 칭찬을 해줬다. 그걸 지켜보던 관리사분은 왜 간신히 태웠는데 내렸느냐고 성화였다. 난 웃으면서 “이제는 몇 번이고 말차에 다시 쉽게 올라탈 거예요”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녀석을 다시 말차로 끌고 가서 처음보다 더 안정적으로 태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리사분들 중에는 박수치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렇게 녀석은 두미울 목장으로 살림을 옮기게 됐다.

‘두미울’에서 이어진 신경전
녀석과의 전쟁은 두미울 목장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이제부터는 녀석을 운동시켜야겠기에 녀석에게 맞는 마장구를 갖춰 마장으로 데리고 갔다. 기승하려고 하자 거부했다. 조금은 예상했지만 녀석의 저항은 예상보다 심했다.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다시 마음을 바꿔 조마삭을 돌렸다. 조마삭을 돌리는 방법은 글로 표현하기가 부담스러워 아주 강하고 짧게 조마삭을 돌렸다고만 표현한다. 조마삭을 어느 정도 돌리고 다시 기승을 시도했다. 조금은 반항하는 듯했지만 크게 어렵지 않게 녀석에게 올라탈 수 있었다. 이후부터는 계속되어지는 훈련을 큰 반항 없이 잘 따라줬다.

교배를 위한 새로운 미션
녀석과 지낸 지 수개월이 지났다. 목장주가 사장님께 전화를 해서 내년에 교배를 받을 수 있도록 교육시켜달라고 했다. 이제 녀석에게 교배 시 해야 하는 것들을 교육시키는 일도 추가가 됐다.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바로 보정 틀에 아무 저항 없이 들어가고 보정 틀에 들어가서도 안정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 보정 틀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조마삭 끈을 길게 하고, 내가 먼저 보정 틀로 들어가 무사히 통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녀석은 처음에 코를 벌렁거리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며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난 녀석의 모습을 아랑곳하지 않고 수차례에 걸쳐 보정 틀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녀석에게 당근을 먹여가며 보정 틀로 유인했다. 당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점차 보정 틀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첫날은 여기까지 훈련을 했고, 다음 날도 마찬가지로 운동을 마치고 보정 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둘째 날에는 반드시 보정 틀을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압력을 가했다. 잔뜩 긴장하며 도망갈 기회를 엿보는 녀석을 보자 나도 긴장감이 들었다. 녀석은 경계하는 자세로 코를 벌렁거리며 엉덩이를 한껏 낮추고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 뒤를 따랐다. 아니 끌려서 왔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어려워 보였지만, 그런대로 잘 통과했다. 셋째 날부터는 일사천리로 훈련이 진행됐다. 이젠 보정 틀 통과는 아무런 경계심을 갖지 않고 했다. 그런 식으로 보정 틀 안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조금씩 늘렸다. 이런 훈련을 시킨 지 닷새 만에 보정 틀 안에서 한동안 머무르며 당근을 먹고 앞뒤 문을 모두 걸고 이곳저곳 녀석의 몸을 검사해도 녀석은 잘 기다려줬다. 더 이상 녀석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 보정 틀 훈련은 여기서 마쳤다.

아쉬운 이별과 결심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칠 무렵, 녀석의 원주인이 사장님에게 전화를 해서 녀석을 데려가겠다고 했다. 함께 고생하며 정이 들어서인지 헤어지기가 못내 섭섭했다. 하지만 녀석이 가야 하는 길을 잘 알고 있기에 기쁘게 녀석과 작별했다. 그리고 부디 녀석이 건강하기만을 빌었다. 난 헤어지는 날 녀석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싫어 자리를 피했다. 녀석도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말 수송 차량에 올라타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난 썩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녀석을 끌고 차량에 태우고는 자리를 피했다. 고맙게도 다음 해에 교배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물론 누구한테도 고맙다는 인사는 듣지 못했다. 많이 섭섭했다. 참 정성을 많이 들였는데. 그 이후 결심을 하나 했다. 내 일이 아니면 괜히 나서서 잘난 척하지 말자고.


▲다음 해에 ‘이화령’ 녀석이 교배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듣지 못했다. 그때 ‘내 일이 아니면 괜히 나서서 잘난 척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1987년 한국마사회에서 열린 한일승마대회 때 ’서울2호‘와 함께.



조랑말보다 잘생긴 ‘마동이’ 시정마 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참 불쌍했던 녀석이었다. 보통 경주마 생산 목장에서는 씨암말을 시정할 때 조랑말 수놈을 이용한다. 그런데 두미울 목장에서는 녀석이 수놈이었고, 외모도 흠이 될 만한 구석이 없어 녀석을 ‘시정마’로 사용하기로 했다. 녀석이 수말이기 때문에 굳이 다른 시정마를 구할 필요가 없었고, 조랑말보다는 훨씬 매력 있게 생긴 녀석이기 때문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조랑말보다는 조금 위험 요소가 있긴 하겠지만, 모든 시정은 내가 직접 하거나 내입회 하에 시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큰 걱정 없이 녀석을 시정마로 쓰기로 했다.

순진한 얼굴의 ‘마동이’
처음 이곳에 올 때의 녀석은 많은 암말을 보고도 시큰둥한 모습을 보이는 순진하고 착한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가끔은 녀석의 성 정체성을 의심하기도 했다. 혹시 녀석에게 거세가 아닌 또 다른 방법으로 거세를 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을 정도로 순진했다. 그런 녀석에게 불행의 시간은 겨울이 지나면서 시작됐다. 이제까지 순진하게만 살아온 녀석에게 시정이란 극도로 강제된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녀석이 해야 하는 일은 많은 씨암말을 발정시키거나 발정 정도를 확인하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얌전한 말(?)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다
시정을 시작한 첫째 날, 녀석의 어리둥절한 모습과 세련되지 않은 행동은 씨암말들에게 겁을 먹게 했다. 씨암말들은 놈이 시도 때도 없이 설치는 바람에 마방 구석에서 몸을 움츠리기 일쑤였다. 씨암말들이 녀석에게 다가오면 관심을 갖고 냄새를 맡으며 교태 섞인 소리를 내거나 엉덩이를 시정마에게 향하게 하며 호감 행동을 보여야 하는데 녀석의 터프한 행동으로 인해서 모두가 겁을 집어먹었던 것이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했던가! 녀석은 얌전한 고양이었다. 녀석의 나이 8세. 8년간 절제되거나 숨겨져 있던 녀석의 성적 욕구는 오랜만에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갈피를 잡지 못했다. 시정 시간이 지나자 목장은 다시 고요 속으로 돌아왔다. 녀석은 오늘 있었던 일을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을까? 녀석도 오늘 일에 많이 당황했으리라!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솔질뿐
그러나 녀석의 불행은 여기 있는 모든 씨암말이 수태가 되거나 교배 지원이 마쳐지는 날 고통이 끝나게 될 것이었다. 우리가 불쌍한 녀석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료를 조금 더 주고 마방을 조금 더 깨끗하게 해주는 등의 일이었다. 매일 매일 가볍게 운동을 시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녀석의 외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온몸을 솔로 비벼주는 일이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얄궂은 시정마의 운명
녀석의 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성과를 올리기 시작했다. 녀석 스스로 씨암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절제된 행동을 보였고, 그런 모습에 대부분의 씨암말들이 교태 섞인 목소리로 관심을 보였다. 몇몇 적극적인 씨암말들은 녀석의 울음소리만으로도 몸이 달아오르는 듯 양 뒷다리를 엉거주춤하게 벌리고 서서 나오지도 않는 소변을 애써 누는 듯한 행동도 보였다. 그러나 씨암말들이 이런 모습을 보인들 녀석에게는 어느 암말 하나 차지할 수 없는 운명이었으니 녀석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을까? 아마 인간이었다면 틀림없이 통제 불가능한 정신병을 앓게 됐을 것이다.


▲시정마의 운명은 얄궂다. 씨암말들이 녀석에게 관심을 보여도 어느 암말 하나 차지할 수 없는 운명이니 말이다. 2002년 ‘웁스’와 함께.


황인성 기자 gomtiger@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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