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년 승마사례 공모전’ 시상식에 참여한 7명의 수상자들 모습.
대중에게 진솔한 승마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국마사회는 올해 ‘유소년승마사례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공모 결과 최우수상부터 장려상까지 총 19편이 선정됐습니다. 은 19편을 연재합니다. 그 다섯 번째 순서로 장려상을 받은 진헌경 교관(청학승마클럽)의 ‘소소한 행복을 함께 하고 싶어 시작한 새로운 길’을 소개합니다. 수상자들에게 축하와 함께 한국마사회 말산업진흥처에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 편집자 주

“강아지의 죽음을 승마로 극복하고
내성적이던 성격이 변하고 몸도 건강해졌다.
발달장애아 TH를 만나
웹디자이너에서 승마지도자의 길로 가다.”

승마를 처음 시작 했을 때 내 인생에 있어 승마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놀이와도 같았다.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두려움과 부담감을 갖고 있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사람과의 관계보다 강아지나 고양이, 고슴도치 같은 동물과의 교감을 맺는 것이 나에게는 더 큰 즐거움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승마는 대인운동이나 단체운동과는 다르게 나와 말, 둘만이 함께 하며 교감하는 운동이었고 그렇기에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승마를 접하게 됐고 또 승마를 통해 시작된 한 아이와의 만남은 승마지도자라는 지금의 길을 찾게 된 계기가 됐다.

내가 승마를 시작한건 2008년 말 겨울쯤이다.

승마를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10년 넘게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고, 그로인해 많이 힘들어 하던 나에게 사실 승마라는 운동의 시작이 그리 즐겁지는 않았다.

처음엔 그랬다.

그저 미리 선불로 낸 강습비가 아까웠고, 쌀쌀한 겨울 날씨에 따뜻한 체온을 가지고 있는 말 등에 올라가면 많이 아꼈던 강아지가 생각나 눈물만 날 뿐이었다. 그때 승마를 그만두지 않았던 건 그 마저 하지 않으면 더욱 깊은 슬픔에 빠져 헤어 나오기가 힘들 것 같아서 ‘이거라도 하자’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변한 건 2009년 TH이라는 아이를 만나면서 부터다. 그 아이와의 만남을 통해 나의 삶의 방향까지 달라진 것이다.

처음 승마를 시작한 것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주말에 취미 생활로 승마 동호회를 들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첫 달은 내성적인 나의 성격과 강아지의 죽음으로 사람들과 더 어울리지 못 했는데 그 때문에 다른 주변상황에 신경 쓰지 않고 더욱 나와 말과 교감하는 시간에 더 집중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두 번째 달부터는 차츰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때까지도 사람들과의 어울림은 나에게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중 다니던 승마장의 교관이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면서 승마장 분위기가 바뀌게 됐다. 함께 같이 배우던 동기들은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다며 새로운 승마장을 물색하게 됐고 2009년 용인에 있는 승마장으로 바꾸면서 TH이를 만나게 됐다.

TH이는 발달장애를 가진 7세 남자 아이였다. 말도 거의 하지 않았고 사람과 눈 마주치는 일 조차 극히 드물었다. 고개는 비딱하게 숙인 채 땅을 많이 보고 다니는 반면 행동은 항상 부산스럽고 뛰어다니는 걸 좋아했다.

다니던 승마장은 대기업의 연수원 안에 있던 시설이었고, TH이는 그 연수원 연구실의 상무님 아들이었다. 그래서 일반 회사원 아이였다면 타기 어려웠을 기업 연수원의 승마장이었지만 TH이는 주말마다 말을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데다가 장애까지 있어 사람들과 어울려 기승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매주 승마장을 빠지지 않고 나가던 나는 교관님을 도와드리는 일이 많았고 주말마다 종종 TH를 돌보면서 자연스럽게 그 아이의 담당이 됐다. 함께 승마를 배우는 회원이었지만 아이를 돌보면서 차츰 가르치는 입장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TH이는 말 타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 표현은 서툴렀다. 말을 좋아하는 것은 분명해 보였지만, 말 위에 오르면 말을 때리기도 했고 때로는 침을 뱉을 때도 있었다. 그런 TH이를 말 위에서 집중 시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말 타는 것을 좋아 했기 때문에 그를 바탕으로 소통하며 위험한 상황을 피하고 통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TH이를 돌봄에 있어 아쉬움은 있다. 그 시절 나는 경험이 없고 방법도 미흡해 지도하기보다는 돌본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러던 중에 마사회에서 재활승마지도자 교육 과정 모집 소식을 듣고 이제까지 배우기만 했던 나였지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지도하는 입장이 되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운 좋게 재활승마지도자 교육과정에 선발됐고 많은 사례들을 접하고 재활승마에 대해, 말에 대해, 승마운동의 효과에 대해 많은 부분을 보다 체계적으로 배우게 되면서 점점 더 승마 운동의 매력에 깊게 빠져들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웹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실내에서 독립적으로 작업을 하는 웹디자이너는 나의 성격에도 잘 맞는 일이었다. 하지만 승마를 익히고 지도과정을 배움으로서 이제까지 나에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이 직업이 나를 더욱 가두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의 성향은 나에게 상처와도 같았고, 그 상처를 자꾸 건드리며 사람을 만나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편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처럼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이다. 3살 때 심한 열병과 함께 홍역을 앓았고 아직도 나의 피부엔 그 상흔들이 남아있다.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그리고 체질도 특이하게 바뀌었는데, 아마 시골에 살던 그 시절 40도를 넘나든 고열에 빠른 조치를 받지 못한 후유증이라고 생각된다. 다행히 학교 안에서의 생활은 우등생이었던 탓인지 따돌림은 당하지 않았지만, 등하교 시간에는 모르는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손가락질은 일상이었고, 돌멩이나 침 세례까지 받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헤드폰을 끼고 다녔고, 솔직히 말하면 사람이 무서웠다. 말을 처음 타던 시절 경험삼아 이제 막 구보를 배웠을 때 초보자들끼리 조를 짜서 릴레이 시합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같은 조의 한살 어린 친구로부터 ‘못생겨서 밥도 같이 먹기 싫은데 같은 조를 하라니!! 교관님의 조 편성 진짜 마음에 안 들어!!’라는 말을 듣기도 했으니 내가 사람을 숙제로 생각하는 데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승마 운동을 함에 있어 어려움은 신체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때는 방학 때마다 대학병원에서의 장기 입원이 일상이었고, 승마를 시작하기 직전에 왼쪽 허벅지 뒷부분의 제1근육과 제2근육에 칼슘, 인등의 석화 물질 침착으로 3kg가 넘는 근육 절제하기도 했다. 그로 인한 두 달 넘는 입원생활과 결국 장기입원으로 인해 생긴 우울증으로 퇴원하게 됐으니 정신적, 신체적으로 어려움이 있던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승마를 하면서 남들보다 실력이 좋지는 못했지만 점점 내 몸이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혈소판 감소증으로 인해 스트로이드제 약을 맞고 보험이 되지 않아 백만 원이 넘는 주사를 맞고도 응급실 가서 수혈을 받곤 했던 나였지만,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정상 수치가 되어 의사도 놀라워했을 정도로 승마가 내 몸에 엄청난 도움을 준건 사실이다. 혈소판 감소증에 승마가 도움이 된다는 나의 사례일 뿐,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내 왼쪽 허벅지 근육은 영원히 오른쪽에 비해 1/3이 없을 것이고, 유난히 굳은 몸과 둔한 운동신경은 사실 말 위에서는 큰 장애물이다. 남들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일들이 나에겐 왜 안 되지? 하는 의문의 과정을 거치며 노력해야 비로소 비슷한 수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말을 아직 능숙하게 타지 못하는 사람, 장애 아동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또 그에 따른 해법을 누구보다 공감되게 찾아낼 수 있었다.

나에게 승마는 신체적으로 긍정적적인 변화를 줬고, 또 그 변화는 정신건강에도 도움을 줘 혼자만의 일을 좋아 했던 내가 다른 사람과 함께하며 누군가를 직접 마주하고 가르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영향을 준 것이다.

세월이 흘러 TH이는 승마장이 문을 닫으면서 자연스레 승마를 그만두게 됐지만 승마를 시작할 때 발달장애 1급이었던 TH이가 그만둘 때쯤에는 3급으로 좋아지기도 했으니 ‘TH이 역시 승마 운동의 수혜자가 아닐까?’ 사람들과 눈 마주치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았던 아이가 뽀뽀를 해주겠다고 달려들 정도로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나에 대한 애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에 고마움을 느꼈고, TH이의 행복과 또 그 모습을 보면서 느끼게 된 감사함과 경험을 더욱 많은 사람과 진심으로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대인관계가 숙제와도 같았던 내가 대인관계를 필수적으로 맺어야 하는 승마지도자의 길로 들게 된 것이다.

내가 승마지도자로서 목표하는 것,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나의 지도로 인해 대상자가 커다란 변화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작더라도 내가 누렸고, 누리고 있는 승마를 통해 얻는 행복을 보다 많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 또 그 행복의 소중함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전할 수 있는 것 바로 이것이 승마지도자로서 이루고자 하는 나의 바람이다.

▲‘유소년 승마사례 공모전’ 시상식에 참여한 7명의 수상자들 모습.

교정·교열= 박수민 기자 horse_zzang@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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