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식 감독의 ‘나와 함께한 녀석들’(25)


우리는 검수할 말에 대해서 장애물을 원하는 만큼 넘었다. 6두의 말 가운데 3두가 우리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그리고 3두의 말에 순번을 매기는 2차 기승을 했다. 2차 기승은 서로 말을 바꿔 타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난 멕시코 대표 선수가 타던 ‘오다밀도(Odamildo)’란 수말을 선택했고, 나와 함께 말 구입을 한 우리 선수단의 감독은 프랑스산 ‘저미널(Germinel)’란 이름의 말을 선택했다. 그리고 3순위로 지금의 ‘안톤100(Anton100)’ 녀석을 잠정 결정하고 돌아왔다. ‘안톤100’이란 이름에서 ‘100’이라는 숫자는 말 이름 등록 당시에 ‘안톤’이란 이름을 가진 말 가운데 100번째로 등록했다고 해서 ‘100’이 이름 뒤에 붙여졌다고 한다.

이제 남은 것은 녀석들이 혈액 속에 보균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EVA검사 결과만 남았다. 이 과정을 마치고 나면 모든 검수가 끝나게 된다. 이 검사는 보내진 혈액을 받은 시점으로부터 꼬박 열흘이 소요된다. 혈액 검사는 미국의 켄터키대학(Kentucky University)에서 하게 된다. 독일에도 보쉐(Böshe)라는 검사기관이 있지만 미국과는 검사의 기준치가 달라서 아주 드물지만 한국에 도착했던 말들이 되돌아가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검사 결과의 신뢰성이 높은 곳에서의 검사가 필요했고, 미국에서의 검사는 우리의 이런 바람을 충족시켜줬다. 독일에서의 검수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우리는 이제나 저제나 혈액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혈액 검사 결과가 도착했다. 그런데 받아본 혈액 검사의 결과는 최악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1, 2위의 말 모두가 불합격 판정이 된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한 대책 회의를 했고, 그 결과 3위인 ‘안톤100’이 내 말로 지정돼 수입하기로 결정을 했다. 감독은 재검수를 위해 다시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 번째 검수에서는 다행히 우수한 말인 ‘볼리바(Boliba)’를 수입할 수 있었다.

사건 이후 우리 회사는 검수를 가기 전 검수할 말에 대한 사전 서류 심사에서 독일 내에서의 혈액 검사 증빙서류를 제출받고 있다. 비록 미국에서의 혈액 검사는 아니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는 그와 같은 실패는 보지 않고 있다. 만약 독일이나 그 외의 유럽지역으로 말을 구매하기 위해서 방문한다면 반드시 혈액검사 증빙서류를 확인하고 검수를 가는 것이 낭패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혈액 검사 비용은 생각보다 아주 저렴하다. 만약 판매자가 이 금액에 대해 부담스러워 한다면 구매자가 부담을 해서라도 실패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국내로 들어온 ‘안톤100’은 썩 좋은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내 손을 떠난 지금도 내가 아끼는 후배들의 기량 향상을 위해서 경기에 참가하며, 건강하게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잘 생활하고 있다.

▲만약 독일이나 그 외의 유럽지역으로 말을 구매하기 위해서 방문한다면 반드시 혈액검사 증빙서류를 확인하고 검수를 가는 것이 낭패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2008년 `안톤`과 함께.





‘토마스 오말리’ 녀석은 내게 많은 새로운 경험을 쌓게 해주고, 내가 승마선수로서의 이력에 큰 획을 긋는 데 큰 역할을 한 녀석이다. 녀석과의 시간들은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2010년 초 KRA승마단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총 4명의 선수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종합마술 경기에 도전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독일 뮌헨(München)지역의 ‘Stainburg승마장’에 훈련 캠프를 차렸다. 서울올림픽 종합마술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고, 은퇴 후 수의사 공부를 통해 현역 수의사를 하면서 승마장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 ‘마티아스(Matias Baumann)코치’의 승마장이었다. 마티아스 코치는 우리가 말을 구입하는 과정부터 함께했고, 말 선택에도 많은 조언을 해줬다. 그 조언은 종합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었던 우리에게 좋은 말을 선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말 구매는 구입 금액이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더욱 능력 있는 말을 구입하지 못하는 점이 항상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더 많이 더 정확하게 말을 시승해보고 열심히 올바른 말 구입에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우리는 말 구입을 위해 독일 북쪽으로 향했다. 밤늦게 도착한 우리는 짐도 풀지 못한 상태로 한적한 외딴곳에 위치한 허름한 호텔에서 ‘돈가스(Schnitzel)’를 저녁으로 대충 때우고, 다음 날 말 구입을 위해 잠을 청했다. 이튿날이 밝자 우리는 아침 일찍 검수를 위해 근처에 있는 한 승마장으로 출발을 했다. 이른 아침이라서 기분도 상쾌했고, 밤늦은 이동으로 인해 푹 잠을 자서인지 차창 밖 풍경이 아름다워 보였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감탄하던 가운데 우리를 태운 차는 한 승마장에 도착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난 아시안게임에 임하는 마음 자세를 다잡으며 개인의 욕심을 부리지 않고 단체전에서의 메달 획득을 위해서 도움이 되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다 보면 개인전에서도 뜻밖의 좋은 결과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들은 말을 사는 과정에서도 반영됐다. 나 자신보다는 팀원들의 말들 구입에 더욱 신경을 썼고 팀원들에게 맞는 말들이 좀처럼 나오지 않아 불안하기만 했다. 이곳 승마장에서 우리는 3두의 말을 잠정 선택했다. 그중에 ‘토미(토마스 오말리의 애칭)’는 내 선택을 받은 말이 됐다. 우리에게 선보이기 위해서 마방에서 마주가 ‘토미’를 데리고 오는 모습이 마치 우리 회사의 명마 ‘웨이지 우드(Wage Wood)’와 흡사 비슷해 보였다. 난 녀석의 외모만 보고도 팀원들에게 “저 녀석은 내가 선택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검수 시승의 결과, 훌륭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장마술 걸음은 썩 좋지 않았고, 장애물 시승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크로스컨트리가 안정적이고 좋아서 팀에 보탬은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모든 말들을 결정하고 말들이 우리의 훈련 캠프로 하나둘씩 도착했다. 그러면서 훈련도 시작됐다.

우리가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려면 먼저 국제승마연맹(FEI)에서 정해놓은 최소 자격 요건 MER(Minimum Eligibility Requirement)을 획득해야만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 우리 앞에 마치 산처럼 버티고 막아선 느낌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 종합마술이 활성화되어있다면 결코 부담될 일이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크로스컨트리 코스가 없었기 때문에 막연했던 것이다. 나도 XC(Cross-Country)에 대해서는 아픈 기억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바로 앞에 열렸던 도하에서의 일이 그때까지도 내 기억 속에 생생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XC의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모든 일에 경험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하루하루 계속해서 이어지는 힘든 훈련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오면 가족 생각이 간절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생각이지만, 가족과 멀리 떨어져서 훈련하는 내게는 힘든 훈련보다도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그런 미안함 때문에 난 훈련에 더욱 매진했다. 거의 매일 훈련하는 모습을 캠코더로 촬영한 후에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서는 저녁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잠들기 전까지 촬영한 필름을 계속 재생해보면서 잘못된 점을 찾아내고, 그 문제점을 작은 노트에 기록을 했다. 그리고 노트를 항상 휴대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펼쳐봤다. 특히 운동하기 전 노트를 보면서 매일매일 그날의 훈련 목표를 확인하고 훈련을 했다. 그 결과는 내게 기대 이상의 효과로 돌아왔다.

가족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만약 집에 있으면서 훈련을 했다면 과연 이런 좋은 결과가 나왔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도 우리나라 엘리트 선수들의 요람인 태릉선수촌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운영을 하지 않나 생각된다. 최고봉에 오르려면 극한의 상황을 이겨내는 정신력이 다른 어떤 환경적 요인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완벽한 아니 편안한(?) 상황에서도 극한의 상황을 이겨내는 혜택도 주어지겠지만 환경적으로 주어지는 악조건에서 극한의 훈련을 소화해낸다면 그를 통해 얻어지는 정신력은 스포츠의 진한 드라마를 연출시키곤 한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훈련이 지루하고 단조롭고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당시 난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반대로 하루하루가 너무나 짧게만 느껴졌고 잠자리에 들기 전 다음날 운동할 생각을 하거나 아침에 일어나 그날 할 훈련을 생각하면서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고맙게도 난 지금도 회사로 출근하는 차 안에서 그날 훈련할 생각을 하면 훈련 과정과 결과에 대한 기대감에 심장이 힘차게 뛴다. 난 천생 말쟁이인 듯하다.

▲무슨 분야든 최고의 경지에 오르려면 극한의 상황을 이겨내는 정신력이 다른 어떤 환경적 요인보다 중요하다. 환경적으로 주어지는 악조건 속에서 극한의 훈련을 소화해낸다면 그를 통해 얻어지는 정신력은 스포츠의 진한 드라마를 연출시킬 수 있다. `토미`와 함께.


교정교열= 황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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