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제주에서 작은 조랑말이 내게 준 큰 사랑
[교육] 제주에서 작은 조랑말이 내게 준 큰 사랑
  • 박수민
    박수민 webmaster@horsebiz.co.kr
  • 승인 2017.09.1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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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세준 제주한림중학교 학생은 또래에 비해 키가 작다는 이유로 놀림당하고 학습에도 흥미를 잃어 하위권에서만 맴돌았다. 우연히 제주에서 만난 말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느껴 육지에서 제주도 승마장 옆으로 이사가 조랑말과 사랑을 나누게 됐다.
대중에게 진솔한 승마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국마사회는 올해 ‘유소년승마사례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공모 결과 최우수상부터 장려상까지 총 19편이 선정됐습니다. 은 19편을 연재합니다. 그 열다섯 번째 순서로 제주도지사상을 받은 동세준 제주한림중학교 학생의 ‘작은 조랑말이 내게 준 큰 사랑’을 소개합니다. 수상자들에게 축하와 함께 한국마사회 말산업진흥처에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 편집자 주

“키가 작다는 이유로 놀림당하고
학습에도 흥미를 잃어 하위권이었던 내가
제주에서 만난 말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느껴
육지에서 제주의 승마장까지 천릿길을 혼자 달려갔다.”

1. 나의 콤플렉스

“야, 학생, 너는 안 돼, 더 크면 그때 와.”

빨간 모자를 쓴 아저씨가 두 손을 저으면서 타지 말라고 했다. 모처럼 방학을 맞아 몇 달이나 별러서 찾아온 놀이체험장에서 나는 또다시 쫓겨 나와야 했다. 키가 140cm를 넘어야만 혼자 탈 수 있는데 기둥에 새겨진 키 높이 눈금에서 몇 cm가 모자랐다. 파란 하늘 위엔 점점이 하얀 구름이 더없이 좋았던 어린이날, 나는 시끌벅적한 아이들 소리를 뒤로하고 어깨를 축 늘인 채 놀이동산을 돌아 나와야 했다.

누구든 사람에겐 콤플렉스가 한 가지씩은 있겠지만 나의 경우 키가 작고 체격이 왜소한 것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 때가 많다. 중학교 3학년의 같은 반 아이들보다 10cm 이상 작다 보니 친구들이 ‘초딩’이라고 놀려대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줄 설 때면 당연히 맨 앞에 서야 했고, 그러다 보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맨 앞자리에 앉아야 하며, 새로 학기가 시작된 때면 선생님들이 맨 앞자리의 나에게 질문을 자주 던지니 항상 긴장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참을 만했다.

“얘한테 맞는 건 주니어용이 아니라 아동복 코너에 있어요.”

이마트나 백화점에서 마음에 맞는 티셔츠나 바지를 하나 고를라치면 판매하시는 분들이 하나같이 ‘내 키가 작다면서 아동복 코너로 가라’고 했다. 그럴 때면 중학생이라고 항변해봤지만 결국엔 아동복 코너에서 초등학생용 옷을 살 수밖에 없었다. 키가 작아서 겪는 설움은 한둘이 아녔고, 결국엔 모든 일에 자신감도 잃게 돼 난 어느새 친구들로부터 왕따가 되고 있었다. 이렇게 난쟁이처럼 살 바엔 차라리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싶은 마음마저 자주 들었다.

2. 작은 조랑말과 만남

그러던 어느 날, 가족과 함께 ‘더마파크’라는 곳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제주에선 많이 알려진 곳인데 수십 마리의 말들이 나와 TV에서 보던 사극을 공연하고 있었다. 둥글게 만들어진 공연장에서 그 수십 마리의 말들이 뿜어내는 열기는 정말 대단했다. 천둥이 치듯 우르릉하는 말발굽 소리는 키가 작다는 설움만 받고 살아온 내 작은 가슴을 울려 마치 둥둥둥 큰북을 치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나는 눈을 감았다. 그날도 난 맨 앞줄에 앉아 있었는데 1m도 안 될 만큼 가까이서 내 앞을 스쳐 질주하던 말이 쉭 하고 내뿜은 거친 숨에 내가 정통으로 맞았다. 나는 한동안 눈을 뜰 수 없었다. 마치 비행기가 이륙할 때 내는 제트엔진의 섬광 같은 불덩어리 에너지가 내 가슴 속을 용광로처럼 달구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속에서 무언가 용암 같은 것들이 꿈틀거리며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내 설움은 작은 키만 있는 게 아니었다. 키가 작다 보니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고, 그런 탓에 왕따가 되다 보니 아이들은 일부러 나를 조롱했고 무시했다. 특히 중학교에 들어와서 갑자기 어려워진 영어와 수학 과목 때문에 공부는 손을 놓은 지 오래였다. 선생님조차 간단한 숙제마저 못 해오는 나를 언제나 구박하셨고, 성적은 내놓기 부끄러울 정도로 끝없이 밑바닥만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키가 작다는 이유로, 그리고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내가 그동안 겪어온 오랜 설움이 그 말발굽 소리와 숨소리에 마구마구 밟혀 조각조각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중3이 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겪은 그 어떤 감동도 그날 그 말의 에너지만큼 나를 감동하게 한 적은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다 보니 좀체 울지 않았지만 그날만큼은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눈물이 범벅됐다. 말은 단순히 가축의 한 종류가 아니라 나같이 설움 받고 소외된 사람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신비한 에너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아빠가 밖에서 한참을 찾았을 정도로 나는 공연이 끝나고도 넋이 빠진 채 그대로 있었다.

3. 천릿길을 달려와서

지난겨울은 나에게 참으로 길었다. 육지에서 태어나고 자라왔던 내가 처음으로 육지를 떠날 결심을 했을 만큼 고민했고 밤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이제 내년이면 고등학교로 진학해야 하는 중3이 되는데, 이대로 언제까지나 아웃사이더나 좀비처럼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놀려대면 속으로만 꾹꾹 참아야 했는데 언제까지나 이렇게 소심하게 피하고, 참으며, 놀림당하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밤새 고민하다가 또 아침이 되면 엄연한 현실이 나를 향해 조롱했다. 공부도, 그 무엇도 뚜렷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내가 지금의 상황을 바꿀 아무런 능력도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난겨울 내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제주도로 전학을 가고 싶다. 눈을 감아도 자꾸만 다가오는 그 말의 둥둥둥 하는 심장 고동 소리가 갈수록 커지기만 한다. 그리고 이젠 정말 나도 그날 나를 울게 한 그 말처럼 씩씩하고 당당하게 마구 질주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2월 27일이었다. 내가 태어나 자라온 육지의 정든 집을 떠났다. 부모님은 몇 번이나 다시 생각해보자고 하셨지만 이미 내 머릿속엔 오로지 그 말과 만남, 그리고 그때 받은 감동과 에너지밖엔 없었다. 4백 킬로미터가 넘는 먼 거리를 나와 함께 해줄 친구는 자전거였다.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와 부산까지 달렸다. 만나는 사람마다 초등학생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냥 씩 웃었다. 그리고 부산항에서 밤에 떠나는 카페리에 올랐다.

2월 28일 아침, 제주시 건입동에 위치한 제주항 터미널에 도착했다. 곁에는 아무도 없이 오직 자전거를 탄 채 지도 한 장에 의지한 채 길을 물었다. 그리곤 더마파크를 목적지로 잡아 50킬로미터 가까운 거리를 자전거로 달려왔다. 눈물이 또다시 쏟아졌지만 더 이상 설움의 눈물이 아니라 제주 중산간의 고갯길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었다. 금악을 지나 상명리로 접어들 때 쯤, 내리막에선 마구 질주했다. 나 또한 한 마리의 말이 된 기분…. 그 자유로움 그대로 나는 날고 있었다.

4. 작은 조랑말이 내게 준 큰사랑

제주엔 새봄이 일찌감치 다가왔다. 이제 제주시 한림읍으로 내 주소를 옮겼고 나는 당당한 제주도민이 됐다. 그리고 제주 한림중학교 3학년생이 됐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변화가 있었다. 부모님이 나의 애절한 소망을 받아들이신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내가 그토록 그리던 말들을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더마파크 바로 옆에서 살게 된 것이다. 앞으로 나의 변화된 모습은 상상만 해도….

새봄에 나는 해묵은 습관을 바꿔버렸다. 아이들에게 놀림당하고 선생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을 때마다 오로지 스마트폰의 게임에만 빠져들곤 했는데 이제 그 어두침침한 게임의 동굴에서 과감히 빠져나왔다.

그 대신, 햇살이 눈부신 더마파크 승마장과 서광 승마장에서 승마를 즐기게 됐고, 이웃 동네의 말 사육 농가 아이와 친구가 돼 말에게 먹이를 주며 조금씩 말을 내 친구로 맞이하게 됐다. 키가 훨씬 크지만, 말은 과거 나를 괴롭힌 친구들과는 달리 내 손에다 자신의 긴 얼굴을 맡기기도 하고, 때론 내가 주는 먹이에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기도 하면서 진한 우정을 다지는 중이다. 말은 거만하지도 않고 부드러우며 솜사탕 같은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아직 초보에 불과하지만 이 승마의 기쁨은 아마 나의 앞으로 인생길에 가장 큰 행복감이 될 것이다.

나는 그간의 눈물 자국을 씻어내고 이제 봄이 오는 제주에서 큰소리로 외치고 싶다. “키 작다고 ‘초딩’이란 부끄러운 별명을 들어온 나, 또한 자신감도 없고 누군가의 눈을 피하고만 싶어라 했던 내가 그 멀리 육지에서 천릿길을 혼자 달려올 만큼 변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고….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바로 공연장에서 우연히 만난 조랑말, 그 발굽으로 내 서러운 가슴을 마구 쿵쿵 울려댄 그 친구 덕분”이라고…. 나와 작은 조랑말 친구의 큰 사랑이여, 영원하리라.

▲동세준 제주한림중학교 학생은 또래에 비해 키가 작다는 이유로 놀림당하고 학습에도 흥미를 잃어 하위권에서만 맴돌았다. 우연히 제주에서 만난 말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느껴 육지에서 제주도 승마장 옆으로 이사가 조랑말과 사랑을 나누게 됐다.

교정·교열= 박수민 기자 horse_zzang@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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