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브리더즈컵
브리더즈컵(Breeders` Cup)을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생산자협회배(杯)”쯤 된다. 「한국마사회장배」,「마주협회장배」등에 익숙해있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대회명칭이라 할 수 있겠지만, 미국 내에서의 생산자(Breeder)들의 위상이란 상상이상이다.
올초 美경마 유력지 “서러브레드 타임즈”(Thoroughbred Times)가 선정한 세계 경마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위에 마주 겸 생산자인 프랭크 스트로나크 씨를 선정한 바 있다. 미국내 최대목장 중 하나인 어데나 스프링스(Adena Springs)의 대표를 맡고 있는 그를 선정한데에는 마주 뿐 아니라 특히 생산자로서의 영향력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으로, 북미는 물론 선진 경마국에서는 생산자들이 이미 “경주마산업의 꽃”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말해준다.
“브리더즈컵 25년.. 그 아련한 추억들” 그 마지막 회로, 브리더즈컵을 빛낸 생산자, 씨수말의 활약상 그리고 각종 화제들을 중심으로 마무리 짓는다. (편집자주)

생산자는 북미와 중동세가 양분
최근 몇 년간 북미 경마산업의 최대 사건은 매그너(Magna) 엔터테인먼트社의 파산 소식일 것이다. 미국 경제는 지난해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의 부실로 인해 급속하게 후퇴를 맞았고, 이는 경주마 산업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생산자 겸 마주인 프랭크 스트로나크가 설립한 매그너 엔터테인먼트는 올해 브리더즈컵 대회를 개최하는 산타아니타 파크를 포함해 5개의 경마장과 경주마 생산시설 그리고 장내 카지노 등을 보유한 미국내 최대 경마투자 회사다. 그러나 누적된 적자와 지난해 몰아닥친 경제한파로 인해 결국 파산을 맞았고, 현재 경마장과 시설매각 절차를 밟고 있으며 산타 아니타 파크도 내년 초까지 매각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록 설립사의 파산으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는 프랭크 스트로나크 이지만, 여전히 북미에서는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생산자다. 특히 브리더즈컵 통산 수득상금 생산자 부분에서 단연 1위를 달리고 있다. 2004년 브리더즈컵 클래식 우승마 ‘고스트재퍼’, 1998년 클래식 우승마 ‘오섬 어게인’, 2000년 쥬브나일에서 우승한 ‘마초 우노’ 등 브리더즈컵 대회를 통해 4두의 우승마를 배출하고 있다.
이에 못지않게 브리더즈컵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생산자로 앨런 E.폴슨 씨가 있다. 앨런 E.폴슨은 켄터키 브룩사이드(Brookside) 목장을 중심으로 미국과 프랑스에서 생산자 겸 마주로 활약 중인 경마계의 거물이다. 우리에게 “무(無)정자”로 잘 알려진 희대의 명마 ‘시가’는 그가 길러낸 대표 챔피언마로, 브리더즈컵 통산 6두의 우승자마를 배출하며 생산자 다승부문 1위를 기록 중이다.
브리더즈컵이 대회 출범 초기 북미 생산자 중심의 무대였다면, 1990년대 후반부터 유럽 활동마들의 우승횟수가 점차 늘어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여기에는 중동세, 특히 두바이 막툼(maktoum) 왕가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 없다.
세계 각국에 거점을 마련하고 있는 다알리(Darley) 목장과 아가 칸(Aga Khan)을 소유하고 있는 두바이 막툼 왕가의 맏형 셰이크 모하메드는 브리더즈컵에서 ‘데이라미’와 ‘카라니시’ 등 통산 5두의 우승마를 배출하고 있다. 특히 우승마들이 대부분 잔디주로에서 배출되었던 점을 감안할 때, 잔디주로 경주수를 점차 늘려가고 있는 브리더즈컵에서 향후 더욱 강세가 예상되고 있다.
이외에도 사우디 아라비아의 칼리드 압둘라 왕자가 소유한 아일랜드 주드몬트(Juddmonte) 목장도 브리더즈컵 대회에서 2두의 우승마를 배출하며 생산자 부문에서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브리더즈컵 리딩사이어는
현존하는 북미 최고의 리딩사이어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에이피 인디’(A.P. Indy)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GⅠ우승마 25두를 포함해 통산 127두의 스테익스 우승마를 배출한 ‘에이피 인디’는 교배료만도 현재 세계최고인 25만불을 기록중이다.
하지만 브리더즈컵에서의 ‘에이피 인디’ 자마들의 성적은 이름값에 비해 초라하기만 하다. 정작 ‘에이피 인디’ 자신은 1992년 클래식 경주에서 우승한 바 있지만, 씨수말로서는 2001년 ‘템페라’(쥬브나일 필리스 우승) 외에는 우승마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기만 하다. ‘에이피 인디’의 자마성향이 대부분 모래주로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이다.
정작 브리더즈컵에서 빛난 리딩사이어는 바로 ‘오섬 어게인’(Awesome Again)이다. 현역시절 1998년 클래식을 우승한 ‘오섬 어게인’은 2004년 클래식 우승마 ‘고스트재퍼’를 비롯해 2007년 레이디스클래식의 ‘진저 펀치’, ‘윌코’, ‘라운드 판드’ 등 모두 4두의 우승마를 배출하며, 역대 가장 많은 우승자마를 기록 중이다. 또한 자마들이 모래와 잔디주로에서 고루 우승을 기록한 점도 “브리더즈컵 리딩사이어”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미스터 프로스펙터의 손자 ‘언브라이들드’(Unbridled)도 브리더즈컵에서 3두의 우승자마 배출로 뒤를 잇고 있다. 특히 그의 우승자마인 ‘언브라이들드 송’(Unbridled`s Song)은 씨수말로 전향 이후 2두의 우승자마를 배출하며 명문혈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희비가 교차했던 브리더즈컵
역대 브리더즈컵 194개 경주의 통계를 살펴보면, 인기순위 1위마의 우승 사례는 모두 67회로 34.5%의 승률을 보이고 있다. 이는 켄터키 더비 등의 여타 큰 대회와 비교할 때 그리 낮지않은 수치로 인기 1위마들이 나름의 선전을 펼쳤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브리더즈컵에서도 이변은 매년 등장했다. 특히 1993년 클래식 대회에서 단승식 배당 “134.6배”를 기록했던 ‘알캔구스’(Arcangues)의 우승은 역대 최고의 이변으로 꼽힌다. 당시 13두의 출전마 가운데 인기순위 최하위를 기록했던 ‘알캔구스’는 경주종반 누구도 우승을 의심치 않았던 ‘버트란드’를 2마신차로 따돌리며 생애 최고의 역전승을 일구어냈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질퍽했던 경주로의 상태도 이변연출의 한 몫을 담당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씨수말로 활동중인 ‘볼포니’(Volponi)도 브리더즈컵 이변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담당하고 있다. 2002년 클래식 경주를 우승한 ‘볼포니’의 당시 단승식 배당은 44.5배로, 역시 출전마중 가장 주목받지 못했던 경우다. 특히 ‘볼포니’의 6과1/2마신차 우승은 지금도 클래식 경주사상 가장 많은 착차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같이 겨루었던 ‘메다글리아 도로’, ‘마초 우노’, ‘이 두바이’ 등은 지금도 씨수말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마필들로 ‘볼포니’의 우승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2002년 ‘볼포니’의 우승으로 인해 자칫 완전범죄로 끝날 수 있었던 범행이 덜미가 잡히는 일도 있었다. 바로 2002년에 터져나온 “베팅 스캔들”로 브리더즈컵 사상 최대의 오점으로 기록되는 사건이다.
“베팅 스캔들”의 사건전말은 이렇다. 오토 토트(마권 자판기) 제조사에 근무하던 컴퓨터 프로그래머 크리스 한은 당시 교차투표로 이루어지던 북미내 마권발매 전산현황이 시간차를 두고 합산되는 약점을 발견, 미리 결과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의 친구들을 동원해 “픽 식스”(Pick-Six, 지정된 6개경주의 우승마를 적중하는 승식) 마권을 구매, 총 3백만불 상당의 이익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오토 토트사는 물론 해당 경마장 측에서도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이지만, 당시 클래식 경주에서 우승한 ‘볼포니’를 지목한 픽 식스 마권의 적중자가 크리스 한 단, 1명으로 밝혀지자 수상하게 여긴 경찰의 집요한 추적 끝에 사건 전말이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후 미국 내에서 교차투표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보안강화가 이루어졌지만, 워낙 많은 수의 경마장이 교차투표로 이루어지는 관계로 최근에도 전산 오류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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