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고대부터 조공 및 무역에 활용
말을 얻기 위해 전쟁도 불사
한국마사회, 남북 관계 개선 위한 ‘말 선물’ 이색제안도



[말산업저널] 황인성 기자= 중국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8일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말(馬)’을 선물했다. 지난 2013년 중국 정부가 양국 우호를 기념해 판다 한 쌍을 임대했던 것에 대한 화답으로 ‘말 외교’를 선보인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물을 통한 외교는 계속 있어왔다. 특히, 유용한 이동수단이자 전쟁물자로 활용됐으며, 고귀함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말은 훌륭한 동물 외교 자원이었다.

‘말’, 고대부터 조공 및 무역에 활용

연맹왕국 시대부터 동아시아에서는 말을 주고받던 사례가 정례화 또는 일상화됐었다. 권30 위지 동이전에는 동예의 과하마가 한나라 환제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사람을 태우고 과실나무 가지 밑으로 지나갈 수 있는 말’로 불리는 과하마는 동예의 특산물 중 하나로 고구려 등 주변 강국에 바쳐왔던 걸로 알려져 있다. 와 에는 백제와 신라에서 당에 과하마를 사신을 통해 바쳤다고 기록도 남겨져 있다.

고대시대에 들어와서도 ‘말’을 통한 외교는 계속됐다. 대륙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전통적인 외교체계가 구축되기 시작하면서 한반도와 만주 등의 국가들이 대륙의 종주국에게 정치적 독립을 인정받은 조공­책봉이 정례화 또는 일상화됐다. 표면적으로 조공을 바치는 국가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공에 상응해 3배 값어치에 해당하는 하사품을 내려야 했고, 조공국에 변란이 생기면 군사적 지원에 나서야 했기 때문에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전략적으로 조공 무역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이익을 볼 수도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이때 가장 인기를 끌었던 품목은 단연 ‘말’이었다. 중요한 전략 자원인 말은 군사력을 강화하고, 국방력을 키우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고대시대에도 ‘말’을 통한 외교는 계속돼 왔다. 중요한 전략 자원인 말은 군사력을 강화하고, 국방력을 키우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과하마와 동일 품종으로 여겨지는 천연기념물 제주마 모습.

조선시대에는 말을 통한 조공 외교로 이득을 본 사례도 있었다. 조선 세종 때에 명은 조공품으로 금과 은을 요구했으나, 세종은 말과 포로 대체하는 전략을 세웠다. 당시 명은 몽골 등 북방민족과의 잦은 교전으로 말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여진과의 직접적인 교역로가 없던 걸 활용해 여진으로부터 말을 싸게 사서 명에게 비싸게 판 것이었다. 게다가, 조공품에 상응하는 말값을 조선이 정했으며, 값을 먼저 받고 나서야 말을 보내주기도 했다.

말을 얻기 위한 전쟁

실크로드를 개척으로 유명한 한 무제(BC 156~187)는 말을 얻기 위해 전쟁도 불사한 인물로 유명하다. 여기에 등장하는 말이 ‘한혈마’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적토마가 한혈마가 아니었나 하는 추정도 있다. 흉노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던 한 무제는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서역으로 ‘장건’을 파견하고,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장건으로부터 ‘대완국’에 천 리를 달리는 말이 있단 사실을 듣게 된다. 한 무제는 한혈마를 얻기 위해 특사도 파견하지만 대완국은 제의를 거절하고 결국 말을 얻기 위한 전쟁이 펼쳐졌다. 결국 기원전 104년 ‘이광리(李廣利)’가 이끈 원정군이 대완국을 정벌하면서 한 무제는 한혈마 3000여 마리를 얻게 됐다.

▲실크로드로 유명한 한 무제는 한혈마를 얻기 위해 대완국을 정벌하기까지 했다. 한혈마는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바레인의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국왕에게 한혈마를 선물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

말을 통한 외교는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있어왔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이 원산지인 ‘안달루시안’ 말 품종은 유럽판 한혈마로 이름을 떨치며, 중세 유럽에서 단연 인기마였다. 전쟁 말로의 탁월함은 물론, 승용마로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15C 초 ‘안달루시안’은 지중해 전역에 분포돼 있었으며, 북유럽 국가에서는 값비싼 말로 인식됐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유럽 전역에서 좋은 말로 맹위를 떨쳤으며, 프랑수아 1세부터 루이 16세까지 모든 프랑스 왕들의 초상화에 ‘안달루시안’이 등장했을 정도였다.

16C 영국의 헨리 8세가 아르곤의 캐서린과 결혼할 당시, 프랑스의 샤를 5세, 아르곤의 페르디난드 2세, 사보이 지방 공작 등은 ‘안달루시안’을 결혼 선물로 건네기도 했으며, 17C에는 왕실 간 선물로 자연스럽게 교환되다가 영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현대에 와서는 ‘말’은 세계 각국 정상 간의 외교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말 외교’ 국가는 칭기즈칸의 후예 ‘몽골’이다. 몽골은 자국을 방문하는 외국 주요 인사들에게 말을 선물하는 관례가 있으며, 국내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할 당시 선물로 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인 2005년 몽골을 방문해 울란바토르 시장으로부터 말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몽골은 자국을 방문하는 외국 주요 인사들에게 말을 선물하는 관례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6년 5월 미니 나담축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현지 주민으로부터 한 쌍의 몽골 조랑말을 선물로 받았다(사진 출처= 노무현 사료관).

한국마사회, 남북 관계 개선 위한 ‘말 선물’ 제의도

지난 2006년에는 이우재 한국마사회장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승마용 말 두 마리를 선물하겠단 말을 전했다고 밝혀 비난을 산적이 있다. 2005년 북한을 방문한 이봉수 전 한국마사회 부회장 편을 통해 말 선물 의사를 전한 것인데 “김 위원장이 승마를 즐긴다는 얘기를 듣고 남북 화해와 승마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 제고를 위해 말 선물 제의를 한 것”이라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상납(?)’이란 비판도 있었지만, 이색적인 제안임은 분명해 보인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말 한 마리를 선물한 것은 단순히 외교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비춰진다. ‘동물 외교’를 통해 상대국에 건네지는 동물은 한 국가에서 의미 있는 동물인 경우가 일반적인데 특히 말을 선물했다는 사실은 프랑스가 얼마나 자국의 말산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도 간접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다른 해외 정상에게 국내 명마를 통해 동물 외교를 펼칠 수 있는 날을 고대해본다.


▲중국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8일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말(馬)’을 선물했다. 유용한 이동수단이자 전쟁물자로 활용됐돈 말을 통한 ‘동물 외교’ 사례를 살펴봤다.

황인성 기자 gomtiger@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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