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가 사람잡는다’는 말(言)이 있다. 지금 경마장 풍경이 꼭 그 꼴이다. 지난주 일요일 전국의 3개 경마장과 30여 장외발매소를 찾은 20여만명의 경마팬들은 ‘경주로 결빙으로 경주가 지연되고 있다’는 경마방송을 들으면서도 ‘설마 경주가 취소되랴’라는 생각을 하고 차분하게 경주가 속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하는 마음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서울경마 3경주만을 시행한 한국마사회는 잔여경주 모두를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 참혹한 경마장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비애감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과거에는 영하 15도가 넘는 맹추위에도 경마가 정상시행 되었는데 겨우 영하 5도의 추위에 경주를 취소하다니 누구도 이 어이없는 현실을 믿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경주취소 사태는 오래전부터 예견돼온 상황이긴 하다. 경마취소의 원인을 찾다보면 한국경마가 안고 있는 각종 경마시행제도의 후진성과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경마는 역사적으로 일본의 한반도 강점의 원할한 통치수단의 하나로 태동한 불행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해방이후에도 선진화의 길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해왔다. 지난 93년 개인마주제라는 선진화한 제도를 탄생시켰지만 구호만 마주제일뿐 모든 제도와 틀은 시행체마주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절름발이식 경마를 시행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신분전환이 이뤄진지 벌써 15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조교사나 기수, 마필관리사들이 한국마사회의 직원인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경마시행 계획은 경마팬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과의 약속이다. 그동안 몇 번에 걸쳐 경마시행을 담보로 한국마사회와 경마창출 단체간 협상이 결렬돼 경마가 중단된 사태가 있었다. 물론 그만큼 절실한 상황이라는 것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더 이상 경마팬이 경마관련 단체간에 ‘경마를 한다 못한다’는 협상 테이블의 볼모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 상황에서 경마 단체간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논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에는 더 추운 날씨에도 경마를 시행했었는데 영하 5도의 날씨에도 경마를 시행할 수 없다면 그것이 바로 문제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파악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현재의 상주경마 체제를 순회경마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미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영토가 넓은 나라들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순회경마를 시행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다. 즉 날씨가 따뜻한 계절에는 케나다의 토론토나 퀘백 등 북극에 가까운 도시들에서도 경마를 시행하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점점 남하하여 한 겨울에는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성황을 이룬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순회경마를 실시한다. 결국 우리도 한겨울에는 서울경마공원은 장외발매소 개념으로 운영하고 부산경마와 제주경마 위주로 경마를 시행하는 것을 적극 검토할 시기가 되었다.

두 번째는 서울경마공원을 그대로 운영할 때의 대책이다. 서울경마공원을 그대로 운영하려면 경주로를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관리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툭하면 경주로를 핑계로 경마를 중단한다면 이러한 불행과 악순환을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속한다. 이미 경마선진국들은 모래주로는 물론이고 잔디주로를 함께 갖추고 있는 경마장이 많으며 그것도 모자라 최근 몇 년 사이이에는 인공주로까지 만들어 경마를 정상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런 상황에 비해 한국경마는 너무 안이하게 시행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저 판만 돌리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은 경마의 부정적인 면만 더 크게 부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번 경주취소를 계기로 하루속히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


작 성 자 : 김문영 kmyoung@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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