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88주년을 맞이한 한국경마는 한해 7조원을 넘어서는 매출액을 기록하고, 단일기업으로는 최대 세수제공자로 국가 재정에 막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경마산업은 2004년에야 파트Ⅲ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 경마가 산업으로 불리울 수 있는 것은 경주마 생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 경마산업이 세계와 비교할 때 88년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후진국의 멍에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것은 경주마 생산 시스템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한국경마가 세계 경마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선 국산마가 외국경마에서 세계 유명마와 동등한 실력을 보여야 한다.

현재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파트Ⅰ국가인 일본이 국제적인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선데이사일런스’라는 걸출한 마필을 가질 수 있어서다. 국산마 수적 증대에 힘써온 국내 경주마 생산계는 이제 과잉생산을 염려해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면서 질적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아직 넘어야할 산이 높기만 하다.

일제강점기에 군수물자 수송을 위한 방편으로 시작된 한국경마는 일제 패망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70년대까지 마필 생산자가 전무한 가운데 경주마 생산이 중단된 시기를 보냈다. 국내에서 경주마 생산이 태동된 것은 경주마 생산의 전초기지가 된 원당목장이 1984년 개장되면서 부터다. 한국경마에 국산마 생산을 계획하고 지원하게 되는 원당목장이 생기면서, 1980년 1개소에 불과하던 민간생산자도 1989년에는 8개소로 증가하면서 경주마생산의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1991년 국산마의 생산과 육성을 통해 국적있는 경마를 시행하고 우수한 경주마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국산마 중장기 10개년 발전계획’을 시도하게 된다. 최종적으로 경주마 자급 확대 중장기 기본계획은 `94년에 농림부장관의 승인을 받게 되지만, 한국경마는 도약을 위한 국산마 생산 계획을 `90초부터 적극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사회의 국산마 중장기 발전계획에 의한 목표는 국산마 자급률 75% 달성이었는데, 이는 양적인 성장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우수한 경주마의 생산과 원활한 마필 교체를 의미했다. 90년대 중하반기에 접어들면서 국산마 생산은 대대적인 여건 개선은 물론 양적인 증가세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93년 시행체 마주제에서 개인마주제 전환, `95년 제주목장 개설, `98년 국산마 경매 시행, `98년 한국 혈통서 발간 및 국제공인 등을 거치면서 국산마의 양적 팽창이 이뤄질 수 있는 제반 여건을 튼실하게 갖추었다.

2005년 한국경마는 두 번째 아시아경마회의를 개최하면서 한국경마의 선진화에 적극 나서게 된다. 한국마사회에서는 경마산업도 세계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국제화의 초석을 준비하고 한국경마와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자 아시아경마회의 유치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또한 매출액 감소와 정체된 모습을 보이는 경마산업에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자 하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다.

국산마의 양적 팽창은 자연스럽게 생산자간 질적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거 생산농가가 씨수말을 마사회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것에서 `01년부터 생산농가가 직접 씨수말을 도입하는 과정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또한 `91년 146두에 불과했던 씨암말은 현재 2,300여두에 달할 정도이며, 우수 씨암말 확보를 위한 생산농가들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한국경마가 빠르게 선진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세계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우수 경주마 생산이라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이 도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경마산업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규제로 인해 선진화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작 성 자 : 김문영 kmyoung@krj.co.kr
저작권자 © 말산업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