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주의 경마공원 산책
북한과 포르투갈의 월드컵경기가 열리는 날 저녁 6시 기수11기가 경기도 수원근교 발안면의 한 주택에 모여들었다. 옛날 선배기수에게 쿠데타를 일으킨 기수11기가 모임의 장소로 선택한 곳이 시골 한적한 주택이었으니 다시 쿠데타의 음모를 꾸미자는 것인가. 그러나 육사11기가 주축이 되어 일으킨 쿠데타가 이제 누군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는다 해도 성공한 쿠데타로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기수세계도 마찬가지다. 이제 선후배의 군기도 무너진지 오래인데 무슨 명목으로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인가. 기수11기는 현역 선수시절에 이런저런 구실을 가지고 야외에서 자주 단체모임을 가졌다. 승합차를 빌려 남이섬 등 야외로 놀러갈 때 박태종기수가 가끔 운전을 해주곤 했다. 휴일에도 숙소에 있는 박태종기수를 불러 운전을 부탁해도 그는 거절을 하지 않았다. 선배기수에 대한 두려움에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성실성에서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11기 기수들은 알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성실성이 오늘의 박태종기수를 만들어 놓았다고 본다. 야외모임이 있을 때면 각자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들을 대동하고 모임을 갖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여자친구네 애경사까지 동기생들이 단체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11기생의 단합을 선배기수들이 부러워하면서도 시기를 하곤 했다. 필자의 약혼식이 대전에서 있었는데 그곳에 동기생과 여자친구들이 모두 참석해주는 의리를 발휘했다. 약혼식 후 동기생전체가 부여 백마강에 가서 건아하게 놀면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약혼식 사진을 찍기 위해 함께 참석했던 애마사진관 사장님도 우리 동기생들만 보면 그때의 추억을 말하곤 할 정도였다. 그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들과 모두들 결혼을 했으니 11기 동기생들은 순정파이기도 했다. 그러나 각자 가정을 갖고 살아가면서부터 동기생들의 결집력이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 예전처럼 동기생들이 모임을 갖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서로간의 서운함들이 생기기도 하고 오해도 발생하는 일들이 있다 보니 더욱 모임의 응집력이 희석되어갔다. 그런 세월이 약 20년간 흘렀다. 이제 기수11기생들도 50대의 나이줄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다보니 조교사협회의 간부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유재길조교사가 총무이사가 되었고 서범석조교사가 홍보이사가 되었다. 20년 만의 재모임을 갖게 된 것도 이들 두 조교사가 조교사협회 임원이 되면서 사석에서 예전의 11기생처럼 모임을 한번 가져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홍대유조교사 부친의 장례식장에서 동기생들이 만나 모임을 구체화 하게 되었다. 장소는 유재길조교사가 멋들어지게 지어놓은 발안의 주택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약속 날짜가 되어 나는 학교가 있는 경주에서 올라가 도착해보니 부산에서 먼저 올라온 이정표조교사가 유재길조교사와 함께 정원에서 요리준비를 하고 있었다. 곧이어 11기동기생들이 모여들었다. 손영표조교사가 11기 기수후보생시절 담당직원이었던 김병효교관(현 마사회장 비서실장)과 장일기교관(현 핸디캡퍼위원)을 모시고 왔다. 마지막으로 부산에서 올라온 김창옥조교사가 도착하였다. 석양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옛날이야기로 꽃을 피었다. 동기생들 중 늦장가를 간 부산의 이정표조교사가 낳은 공주가 이제 8개월이 되어 모임의 한 인원이 되어 있었다. 과거 동기생들 모임에서 자주해먹던 업진과 서해안에서 막 잡아온 자연산회와 대합을 먹으면서 다음의 모임은 이정표조교사가 살고 있는 부산 아파트에서 딸의 돌날에 모이기로 하였다. 이날 밤늦게 까지 술을 곁들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손영표조교사는 동기생부인들의 자리에 합석해서 조금 진한 농담까지 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승부세계에서 각자가 열심히 달려온 세월이 아른거렸다. 총각의 나이에서 이제는 아이들이 대학에 다니고 군대에 가있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기수 시절 홀쭉했던 배는 이제 제법 튀어 나오고 흰머리가 자리를 잡고 있다. 다음날 새벽 마필훈련 때문에 부산에 내려간다는 두 조교사를 보면서 조교사란 직업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동기생들이 자랑스러웠다. 앞으로 20년 후에도 이번과 같이 모두가 모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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