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주의 경마공원 산책
기수의 조건을 갖추는데 있어 뭐니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체중조절이다. 기수로서 성공하려면 성실성을 바탕으로 유연성과 민첩성, 그리고 레이스운영 능력과 평형감각 등이 뛰어나야 하지만 이 모두가 좋아도 기수로서의 적정체중을 유지하지 못하고는 기수로서 대성하거나 롱런할 수 없다. 여러 스포츠 중 체중조절을 해야 하는 종목들이 있다. 권투와 역도 그리고 유도와 레슬링 등은 체중에 따른 체급별 경기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종목과 달리 경마는 매주 경주를 하기 때문에 매일 매일 체중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 경마의 기수들 중 체중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먹을 것 다 먹어가면서 경주에 임하는 기수들도 일부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기수들이 먹을 것 못 먹고, 먹고 싶은 것 참아 가면서 체중조절을 해야 한다. 필자는 기수시절 먹을 것 다 먹고도 체중이 미달되어 납을 올려놓고 타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체중조절을 위해 거의 먹지 않고 있는 기수들을 볼 때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현재 조교사들 중 현역시절 체중과의 싸움을 벌였던 조교사들은 많다. 그중 기수훈련원 1기 이후에서만 보면 2기 양재철, 6기 김명국, 7기 배휴준, 9기 최영주,임금만 그리고 10기 황영원, 11기 유재길 조교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체중은 현재 적게는 65킬로그램에서 많게는 75킬로그램까지 나간다. 그런데 기수시절 53킬로그램을 유지해야 했으니 이들의 고통은 짐작이 갈 것이다. 1986년 나는 양재철 조교사와 함께 현재 8조인 김춘근 조교사 소속으로 같이 있었다. 양재철 조교사는 선임기수였고 나는 후임기수였다. 양재철 기수는 비경마일에는 새벽훈련을 실시하곤 했지만 경마일 하루 전 부터는 새벽훈련을 나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양재철 기수는 고참기수이면서 일류기수였고 결혼을 하여 아이가 둘이나 있었다. 당시엔 결혼한 기수와 조교사들은 뚝섬경마장 안에 있는 사택인 아파트에서 살았다. 나는 경마일 전부터 새벽훈련을 나오지 못하는 양재철 기수를 깨우기 위해 그가 사는 아파트의 초인종을 눌러대곤 했다. 그러나 초인종을 눌러도 새벽훈련을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새벽훈련을 나오지 못하는 이유와 고통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이해해주는 조교사들은 많지 않았다. 나는 김춘근 조교사와 양재철 기수 사이가 문제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계단을 열심히 오르내렸다. 선배기수가 새벽훈련을 나오지 못한 날은 선배기수가 훈련해야 할 말까지 조교보와 내가 나누어 훈련을 시키곤 하였다. 그 당시 조교보가 현재의 고옥봉 조교사다. 그때 고옥봉 조교보는 나에게 기수로서의 정신무장과 승부정신을 길러야 한다고 무척이나 엄하게 하였다. 새벽훈련중 심하게 끄는 말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 야단을 치곤했다. 그것이 그 당시는 싫기도 하였지만 분명 나에게는 말을 타는데 도움이 되었다.
지난 5월 경매가 끝나고 김춘근, 고옥봉, 김순근 조교사와 함께 경매 장소였던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있는 한국마사회 경주마 육성목장에서 제주시내까지 같은 차를 탄 적이 있다. 4명 모두가 1986년에 김춘근 조교사 밑에서 함께 있던 멤버였다. 고옥봉조교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옛날 한조에 있을 때 내가 많이 힘들게 했던 것 마음에 담아 두지는 말게나” “그때는 다 잘되어 보자고 한일이니까” 그렇다. 그때는 내가 잘되도록 하기 위하여 야단도 친 것이기에 나는 전혀 마음에 담아 둔적이 없었다. 그러나 고옥봉조교사는 그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양재철조교사는 그 이듬해에 신규조교사가 되어 나를 선임기수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형처럼 나에게 대해주었다. 평일에는 양재철조교사 부부와 교제 중이던 지금의 나의 부인과 함께 휴가도 다녀오곤 했다. 나는 1990년 과천경마장에서 경주중 낙마사고로 인하여 크게 다쳐 병원생활을 오래 한 적이 있다. 그때 양재철조교사의 아버님께서 자연에서 얻은 약을 조교사를 통해 나에게 가져다 준적이 있다. 늘 고마운 분들이다. 김명국 조교사는 기수시절 늘 사우나에서 살았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사우나에서 땀을 빼곤 했다. 최영주 조교사는 거의 식사를 하지 않고 치즈 한두 개로 식사를 대신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잠을 자지 않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체중감량을 하였다. 잠을 청하지 않으면 체중감량에는 도움이 되지만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황영원 기수는 땀복을 입고 주로를 달리다가 졸도하여 새벽조교 중에 발견하여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고, 유재길조교사는 런닝과 사우나를 번갈아가며 체중과의 전쟁을 펼쳤다. 기수에게 체중조절은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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