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주의 경마공원 산책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한다는 뜻의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는 한자가 있다. 더욱 정진하라는 뜻으로 쓰이곤 한다. 나는 이 단어만 생각하면 연상되는 사건이 있다.

1986년 뚝섬경마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신인기수였던 서대원 기수가 ‘비슬산’이라는 말을 타고 4코너를 돌아 결승선에서 1등으로 달리고 있었다. 우승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지 아니면 채찍으로 안 때리면 말이 전능력을 발휘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인지 그는 1위로 달리는 말에게 수없이 채찍질을 해댔다. 결국은 그것으로 인해 그의 운명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 벌어졌다. 계속되는 채찍질에 말이 짜증이 났던지 그만 결승선을 5미터 남겨두고 “비슬산”이 주로의 펜스를 뛰어넘었다. 갑자기 ‘비슬산’이 펜스를 뛰어 넘으면서 서대원 기수는 허공으로 날아갔고 결승선의 고속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쇠기둥에 머리를 박고 땅에 내동댕이 쳐 졌다. 곧바로 구급차에 싣고 뚝섬경마장 인근에 있는 한양대학병원으로 후송하였으나 그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오랫동안 슬픔에 잠겼던 기억이 난다. 그것을 보면서 경주마의 이름도 잘 짓고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비슬산은 전남여수의 영취산, 경남 창녕의 화왕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진달래의 3대 명산으로서, 대구 근교에 있으며 대구지역의 교도소에서 사형집행을 받게 되는 사형수들을 그 산에 묻곤 했다는 것을 박삼중 스님이 쓴 책(사형수들이 보낸 편지)을 읽고 알게 되었다. 사람도 작명을 잘해야 하는 것처럼 말 또한 작명을 잘해야 되는가 보다. 몇 년 전부터 경주중 과다채찍을 사용하게 되면 주의나 견책을 받기도 하고 너무 과했다고 생각하면 재결로부터 벌금통보를 받기도 한다. 이는 과다채찍이 경주마가 좋은 성적을 내는 데 별 효과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일부의 경마개최국에서는 연속해서 3번 이상 채찍질을 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는 나라도 있다. 그리고 경마에서 과다채찍은 동물학대라고 세계 동물보호단체에서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과거 내가 기수시절에는 경주중 고의로 채찍질을 더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미 말은 지치고 이길 수 없는 상황임에도 채찍질을 가하여 열심히 말을 타고 있다는 것을 경마팬이나 재결실에 보여주려고 했었던 적이 있었다. 이것은 나만이 생각이 아니고 그 당시 기수들의 생각이었다. 경마팬들은 열심히 말에게 채찍질을 가해야 최선을 다해 말을 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주마 중에는 소위 말해서 농땡이 피는 말이 가끔 있었다. 이런 말에게는 채찍질이 효과를 가져다주는 경우도 있다. 어느 기수는 채찍에다 삐삐선이라고 하는 전선을 감아서 채찍질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 말들은 경주 후 엉덩이를 보면 삐삐선에 맞은 자국이 선명하게 핏자국으로 남아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국산마들도 어릴 때부터 순치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마필들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채찍의 효과 면에서 보더라도 과다채찍이 별 효과를 내지 못한다. 채찍의 효과는 사행(좌우로 왔다갔다하는 행위)하는 말에게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많은 기수들이 채찍은 암말보다는 수말에게 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말이 암말보다 성격적으로 거칠고 농땡이 치는 말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각의 일부는 동의하지만 전체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암말이건 수말이건 채찍에 민감하게 작용하는 말이 있다. 이런 말들은 채찍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주에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마들의 경우 채찍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주에 익숙하지 않은 말에게 채찍을 많이 사용하다보면 사행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경우 채찍을 사용하기 보다는 재갈을 잘 물리고 똑바로 달리게 하는 것이 그 말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선진외국 경마의 경우 4코너를 돌아 결승선에서 끊임없이 채찍질을 하는 기수들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보다 채찍사용에 더욱 엄격할뿐더러 기수들도 과다채찍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의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는 단어는 잘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 가한다는 뜻으로 더욱 정진하라는 의미보다는 잘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하게 되면 반항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현세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생각이다. 주로를 달리는 경주마들의 생각도 현재의 젊은이들의 생각과 같다고 경마팬들이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두 마리가 결승선에서 경합을 벌일 때 채찍질을 계속 하는 기수가 채찍질을 하지 않고 열심히 말을 모는 기수보다 열심히 타고 있다는 생각은 이제 버렸으면 한다. 채찍질을 계속해도 질 거라는 것을 알고도 열심히 채찍질하는 기수들의 생각도 바꾸었으면 한다. 이제는 경마팬에게 보이기위한 말몰이보다는 실리적인 말몰이의 기승방법을 선택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작 성 자 : 권승주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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