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호랑이는 물러나고 토끼의 해가 밝았습니다.
토끼가 원래 꾀가 많은 동물이라 토끼에 대한 이야기는 대체로 지혜로운 임기응변에 대한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음에 대한 고사도 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고 과거의 관습에 얽매이는 사람들은 수주대토(守株待兎)하는 농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토끼해에는 의외로 큰 기회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고 과거의 행운이 계속될 거라고 믿는 사람에게 토끼는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한국마사회에 온지 벌써 삼년 째 해를 맞았습니다. 큰 의욕을 가지고 시작한 일들을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에서 여러 가지 생각하지 못했던 장애물들을 만나 조금 지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마사회와 한국경마의 미래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것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한국의 공직사회에는 책임감에 대한 공포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열 가지 공을 세워도 한 가지 실수로 비난받고 옷을 벗는 것이 한국의 풍토입니다. 사고가 터지면 평가를 하고 대안을 모색할 시간은커녕 뒷수습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쫓아내는 것이 대한민국입니다. 그래서 모든 공직자들이 비전을 세우기보다 얄팍한 처세와 보신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과없이 물러나려면 말산업이나 승마보급 같은 것은 손 안 대는 편이 옳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복지부동하면서 날짜만 세기에는 남은 열정이 아직 뜨거웠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큰 꿈을 가지고 시작한 일들이 헛고생이 되지 않도록 여러분들의 이해와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말 산업 육성법이 지난해 국회 사정으로 본회의 통과가 지연됐지만 올해는 무난하게 통과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말 산업 육성법 제정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말 산업 연구소의 설립을 우선과제로 꼽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산업이든 국가에서 정책적인 지원이 뒤따르려면 학문적인 연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근거 법률의 미비로 미뤄왔던 말산업연구소 설립은 올해 핵심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마의 질 향상은 절대적 당위성을 가지고 있지만 오랫동안 미진한 부분입니다. 혈통의 문제, 후기육성의 문제, 규제의 문제, 생산규모의 문제가 얽혀 있어서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부분은 아닙니다. 제조업에서 제품의 품질을 높이려면 설비투자가 필요하듯이 경마의 질을 높이려면 그에 상응하는 투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적정한 수준의 투자 없이 한국경마가 저절로 선진화될 걸로 믿는 것은 너무 안이한 생각입니다. 한국경마의 선진화를 바란다면 미래에 대한 투자에 뜻을 모아주십시오.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장외발매소는 지정좌석제와 정원제를 예외 없이 도입해서 과밀화를 해소하고 관람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또 이를 위해서는 임대보다는 자기건물을 소유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봅니다. 경마를 몇 년 하다 접을 것도 아니고 마사회의 반영구적인 핵심주력사업으로서 계속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영업의 근거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마사회와 경마의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회공헌 방법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홍콩자키클럽처럼 마사회의 이름을 걸고 대학이나 연구기관을 지원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보다 나은 투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일도 중요한 일이지만 이는 국가가 할 일이지 기업이 할 일은 아닙니다. 기업의 일차적 책임은 소비자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고 세금을 납부하면 완수됩니다. 그 이상의 일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할 일은 사회환원을 하되 보다 의미 있고 미래에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사회환원을 하자는 것입니다.
한국마사회에게 토끼해는 무척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특히 말 산업은 말 산업 육성법의 통과와 맞물려서 올해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대한민국 말 산업이 어엿한 기간산업으로 자리 잡을 것인지, 아니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미미한 존재로 남을 것인지는 여러분의 손에 달렸습니다. 올 한해 토끼처럼 부지런히 일합시다. 감사합니다.
2011년 1월 1일 KRA한국마사회 회장 김광원
작 성 자 : 권순옥 marg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