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잉글랜드 명문 사립 고등학교 베어드 스쿨에 다니는 모범생이 추수 감사절에 크리스마스 집에 갈 비행기 표를 구하기 위해 시각장애인인 퇴역한 육구 중령의 수발을 든다. 냉소적이고 까칠한 군인 프랭크는 삶에 희망을 잃고 자살을 계획은 냉소적이며 까칠한 군인 프랭크. 그전에 일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간을 보낼 계획을 세운다. 죽음을 각오한 늙은이답게 뉴욕의 최고급 호텔에서 머물며 보이지도 않으면서 페라리를 직감적으로 몰고 식당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인과 탱고를 추기도 한다. 이때 탱고 하면 절로 연상이 될 정도로 유명한 Por una Cabeza(말대가리 하나)가 연주된다. 알파치노 주연의 영화 <여인의 향기>다. 영화가 나온 지 30년이 넘은 지금까지 강렬한 인상을 남긴 최고의 명장면이다.

영화 여인의 향기 포스터

어느 뜨거운 여름 날, 자신의 삶에 지친 초라한 패배자가 유유상종의 애인을 등쳐먹어 3류 인생을 역전시켜보겠다는 망상에 빠져 뜯어낸 돈으로 경마장을 찾았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에 내가 이길 수 있어.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를 하는 순간 시작된 레이스, 손에 땀을 젓게 만드는 박빙의 순간에 이럴 수가.. 그가 배팅한 경주마가 아슬아슬하게도 패하고 만다. 말 그대로 말대가리 하나 차이(Por una cabeza)로 졌다. 일확천금의 허황된 꿈은 또다시 물거품이 되고 애인을 볼 면목이 없던 그는 몰래 남아메리카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는다. 내린 곳은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카 지역에 발을 딛는다. 192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의 3/4 이상이 유럽에서 이민 온 사람 또는 그들의 자손이었다. 그들이 돈이 많아서 남의 나라로 간 게 아니다. 도저히 자기 나라에선 살 수 없어 그저 먹고살려고, 새 인생을 펴려고 왔다. 삶의 유랑지가 부에노스아이레스였던 거뿐이다. 그들의 삶에 깃든 체념과 격정적인 남미의 기질이 만난 게 탱고다. 말대가리 하나 때문에 온 거다. 망할 말대가리... 이겼다면 인생역전으로 호화로운 저택과 맛있는 음식, 자신에게 밑천을 대준 애인을 행복하게 해주고 떵떵거리고 본국에서 살았을 텐데 이게 웬 고생이람..... 이민자들의 음악.... 말대가리 하나로 나뉜 탄식과 엇갈린 운명의 음악....

포르 우나 카페사(스페인어:Por una Cabeza)는 '머리 하나 차이로'라는 뜻의 경마 용어다. 이 제목으로 카를로스 가르델이 작곡한 노래가 영화 <여인의 향기>에 삽입되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가사의 내용은 경마와는 상관없긴 하다. 사랑의 밀고 당김에 관한 미묘한 감정과 사랑에 실패해도 다시 사랑을 찾을 수밖에 없는 심정을 경마에 비유한 노래다. 그렇다. 인생은 '말대가리 하나' 차이다. 지금의 루저(Loser)가 영원하지 않고 지금의 위너 (Winner) 또한 천년만년 승승장구하지 않는다. 승패는 병가지상사. 좌절하고 낙담할 필요 없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종 용어가 생길 정도로 사회가 침체되어 있고 일상생활의 단절이 지속되고 있다. 열기와 탄식, 희로애락이 공존해야 할 경마장도 22일까지 휴관이다. 유럽은 이동 제한령까지 내려지고 미국은 사람들이 불안감에 휩싸여 총과 탄약을 마구잡이로 구매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이 확산되고 있다. 언제 이 코로나 블루에서 빠져나올지 모르지만 <여인의 향기>에 나온 유명한 문구로 오늘도 힘을 얻는다.

''발이 꼬이더라도, 그냥 탱고를 계속 추면 됩니다.''
''if you get all tangled up, just tang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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