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걸’은 당나귀 신사를 왜 오빠라고 부르는가

우영창(소설가, 시인)
당나귀 신사 백팔만 씨가 칠성테크 주식을 천만 원 어치 산 것은 지난 주에 얘기한 그대로다. 그런데 한 칼에 15만 주 사자 주문이 척 들어오면서 백팔만 씨의 심장은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사실은 뛸 이유가 없었다. 15만 주 사자가 실시간으로 물량을 쓸어가는 것도 아니고, 한 단계 낮은 호가에 깔아놓은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작전하는 아이들이 ‘내가 여기 있다’고 광고하는 효과는 있었다. 경마로 치면 어떤 자가 복승식 3번, 7번 말에다 사인펜으로 칠해 넣은 종이 천 장을 마권과 교환하지 않고 손에 들고만 있는 것과 같다. 내가 왕창 사려고 하니 그대들도 따라 붙어라, 뭐 그런 시시한 수작이었다.

“오빠, 뭘 그렇게 긴장된 표정이야? 좋은 종목 있나 봐.” 백팔만 씨 뒤에 서서 진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옥구슬 같은 목소리를 굴리는 이 여자는 ‘마돈걸’이라는 30대 후반 여자로 마돈나처럼 섹시하기도 할 뿐더러 주말에는 말에다 돈을 걸고 다닌다 해서 ‘마돈걸’이라고 불렸다.
당나귀 신사처럼 주 중에는 주식, 주말에는 경마를 하고 있어 둘 사이는 오누이보다 더 돈독하다, 고 여자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백팔만 씨도 마돈걸이, 쓸모는 없지만 온갖 정보를 주어오는 데다 돈 까먹는 데는 트레이딩 룸의 뭇 남성을 능가하고 있어 항상 애틋하게는 여기고 있었다. “허수네. 15만 주 확 때려버릴까 보다.”하고 마돈걸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말을 했다. 그러더니, “오빠, 요번 토요일에 과천에 안 올래? 정보가 하나 있는데.”하고 바람을 넣었다. 마돈걸이 그렇게 물을 필요도 없었다. 당나귀 신사가 토요일 오후에 과천에 있지 않으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마돈걸로부터 정보를 얻어들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녀의 정보라는 게 정확하게, 말이 11마리 뛰면 11분 1확률, 14마리 뛰면 14분의 1확률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경마가 끝나고 그녀와 한 잔 하는 게 즐거움인데 그 뒤가 과연 어느 선까지 가능할 것인지는 아직 실험해보지 못했다.
갑자기 15만 주가 없어졌다. 마돈걸이 그 보라는 듯 입을 삐죽거리더니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시세는 지금부터였다. 씩씩하구나! 어떤 자가 호가 무시하며 마구잡이로 주식을 사들이고 있었다. 뛴다! 3400원에 산 주식이 순식간에 3530원으로 치솟았다. 이 맛이야, 당나귀 신사는 컴퓨터에 대고 당나귀의 키스를 날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인생은 이렇게 풀려야 하는 것이다. 신사는 마돈걸을 뒤돌아보았다. 어깨까지 구불구불 내려온 검은 머리가 탐스럽다. 저 새하얀 목덜미는 또 무슨 말을 하는 듯하구나. 저녁이나 먹자고 해볼까?


작 성 자 : 이용준 cromlee21@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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